음 오늘 든 생각
'난 어떨 때 후회를 하는가'
난 지나간 거에 후회 잘 안 한다.
뭐 해봤자 버스 놓쳤을 때 '아까 뛸걸' 정도?
괜히 후회하는 감정이 드는 게 싫기 때문이다.
아니 뭐 후회만 하면 괜찮을 수도 있는데
얘는 항상 혼자 오는 게 아니라, 친구들을 데려온다.
절망, 자괴감, 슬픔, 분노, 실망 등등 부정적인 감정들
어느 정도의 후회를 해야 성장하는 것도 맞지만,
성찰 수준을 넘어가는 후회는 독이다.
인간을 두려움 속으로 빠뜨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1순위가 바로 후회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한텐 그럼.
정말 몇 안 되는 내 후회 썰 중 하나가 바로 수능인데,
순간의 편안함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이겼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육사 붙은 상태에서 수능 쳤다.
그러니 제대로 칠 리가 없지. 수능 열흘 전 책을 다 버리고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다가온 수능. 치러 갈지 말지도 고민했었는데, 그래도 앞으로 수능 칠 일은 없을 테니까 한 번 해보자는 생각해 고사장으로 갔다.
국어 열심히 풀고 나니까 너무 기 빨려서 든 생각.
'나 어차피 대학 붙었는데 지금 이 문제 하나 풀겠다고 최선을 다해야 하나?'
그래서 다음 과목이었던 수학에서, 킬러 문항 아무것도 안 품.
문제 읽지도 않고, 번호 보고 잤다. 몇 번이었더라 15,16,29,30이었나? 여튼 아예 안 풀었음.
그래도 점심은 먹고, 영어 한국사까진 잘 쳤지만,,,
사탐 두 과목 걍 안 치고 나옴.
왜냐? 다 치고 나오면 집까지 가는데 차 막힐 것 같아서.
그렇게 받은 성적표는, 뭐 나쁘진 않았다. 수학 빼고는 다 1등급이긴 했으니까.
근데, 후회된다.
내가 아무리 육사만 보고 수험생활을 했어도, 수능 공부에 다 갈아 넣었는데, 제대로 붙어보지도 않은 것.
그냥 그 순간의 편안함이 우선이어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것.
만약 정말 최선을 다해서 풀었는데 죄다 2등급 3등급 이랬다? 후회는 안 할 거다.
근데 결과가 나쁘지 않음에도, 후회스럽다.
반대의 예시.
23년 4월, 육사 2학년 생도 때 샌드허스트 대회에 나갔을 때다.
대회 직전 한 달간,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막 그렇게 두렵진 않았다. 그전까지 내가 7개월간 굴렀던 게 어디 가진 않을 테니까.
진짜 매일같이 무게 치고, 스트렝스 훈련하고, 업힐 인터벌에, 400m 꼬리 잡기, 불암산 완전군장 뜀걸음 ...
아니 이건 다 열거할 수도 없음. 단 하루도 목에서 피 맛이 안 난 적이 없다. 하루도 편했던 날이 없다.
이런 노력들이 있었으니까, '한 달 동안 이걸 안 해도 내 실력이 눈에 보이게 뒤처지진 않겠지'라는 믿음이 있었다.
드디어 대회 1일차. 훈련 무게의 절반밖에 안 되는 군장을 멨다. 12kg.
한 달 만에 처음 뛰는 사람치고는 컨디션이 좋았다. 군장 무게도 1도 무겁게 안 느껴졌다.
그래서 내 컨디션 걱정은 그만하자고. 나는 한 달 전의 정라원이라며 최면을 걸고,
모든 과제에서 100%를 쏟아냈다.
그런데.. 하루 종일 과제를 하며 물에 젖고, 근육이 털리고, 넘어지고 하니까 점점 그 체력은 바닥나는데
내 상태가 전과 같다고 생각하고 하다 보니 사건이 발생했다.
1일차 마지막 과제인 10마일(16km) 산악 군장 뜀걸음에서, 다리가 풀려버렸다.
그래도 팀원들의 도움으로 넘어질 때마다 계속 일어서면서 결승선 바로 앞까지 갔는데,
기절했다.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깨어나 보니 몸에 뭐 이상한 게 많이 붙어있고, 근육이 녹고 있다고 한다.
몸이 재산인데, 몸이 망가졌다. 그리고 이틀차 대회에 함께 참가하지 못하게 됐다.
우리 팀은 이런저런 페널티를 받았고, 우리가 예상했던 순위보다 낮은 순위를 받게 되었다.
팀원들에게 미안했다. 괜히 나 때문에 다들 더 힘들어지고, 순위도 낮아진 것 같아서.
근데, 그 순간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 알고 돌아갔어도 나는 똑같이 할 듯.
내 몸이 망가져도, 팀 순위가 예상보다 낮아져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나는 그 이상으로 똑똑하게 할 수도, 열심히 잘 할 수도 없었으니까.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봐도 한순간에서도 후회는 전혀 없다.
그렇다. 후회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 생긴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내가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쏟아부었다면 그게 유종의 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생각난다. 후회된다.
지금의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나를 뒤로 끌어내리는 존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 선택에 잡혀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발판 삼아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 현재는 언젠간 과거가 되어 또 다른 현재를 살아갈 거니까.
지금을 잘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