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안내자의 도움을 받으며 무대로 입장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학생들도 무대에 올라갔다. 15명의 학생들은 커다란 북 앞에 서고, 1명의 학생은 징 앞에 앉았다. 무대 뒷면에는 우리 아이들을 소개하는 잔잔한 영상이 나왔다. 천천히 조명이 켜지고 우리 아이들을 비추었다. 관객들의 시선은 우리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변함이 없이 앞만 바라본다. 아이들의 북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채를 잡은 학생들의 손은 북의 가운데와 테를 번갈아 때리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저시력인 병인이는 북에 얼굴을 거의 대다시피 한 자세로 채를 휘둘렀다. 공연이 중반을 넘어설 때쯤, 서영이를 비롯한 4명의 아이들이 앞으로 나오더니 꽹과리와 북, 장구를 잡고 한바탕 사물놀이를 연주했다. 아이들의 북소리가 무대 천장을 뚫을 듯이 치솟았다. 세상을 향한 외침이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틈에 사물놀이 장단이 관객들의 신명을 불러일으켜 모두 기립하며 박수를 쳤다. 함께 동행한 아이들의 어머님들은 박수를 치며 두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얼씨구 좋다" 취임새를 할 때마다 부모님들은 같이 소리치며 응원했다. 무대는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제2회 사람, 사랑 세로토닌 드럼 페스티벌’이었다. 이날 우리 아이들이 축제의 주인공이었다.
11개 팀 가운데 6번째로 무대에 오른 우리 아이들은 3월부터 북을 치기 시작했다. 대회 예선을 앞두고는 하루 5시간씩 연습을 했다. 같은 동작이라도 정안인 아이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연주와 몸짓을 맞추는 것은 오직 연습으로 극복해야 했다. 우리 학생들은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였다. 평소 1시간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하던 아이들은 5시간 넘는 연습도 버텨냈다. 손바닥에서 굳은살이 갈라져 피가 났다. 쓰라린 상처에 새살이 생기듯이 아이들에게도 꿈이 생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해외로 나가 사람 많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예선 심사에서 특별 배려 없이 본선 무대 진출권을 따냈다. 그리고 이날 기적 같은 은상을 수상했다. 결과가 발표되고 같이 간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고 한쪽에서는 너무나 기뻐 펑펑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객석에서 자녀들에 공연을 본 부모님들도 같이 웃고 울며 기쁨을 나누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가 지도했던 세로토닌 드럼클럽 아이들이다. 중고등학교 시각장애아이들을 대상으로 모둠북 동아리를 만들었다. 함께 연습하고 같이 공연을 다녔다. 복지관, 특수학교, 소년원, 삼성전자 본사 사옥, 요양병원 등 정말 많은 곳을 찾아가서 공연을 했다. 모둠북 동아리 운영으로 아이들의 잠재력은 폭발했다. 무대에 서면서 아이들이 느꼈던 성취감은 일상을 살아가는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 아이들은 특수교사, 안마원 원장, 사회복지사, 헬스키퍼가 되었다. 가끔은 그 아이들이 보고 싶고 그 추억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