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순간은 없다.

by 이만희

아침 시종이 울리기 전, 교무실 한쪽 자리에 앉는다. 창밖으로 학생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향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업을 준비하기 전, 몇 줄이라도 써 내려가는 순간은 내 하루를 정리하고 열어주는 의식과 같다. 그 짧은 순간조차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다.

교사는 늘 시간을 빼앗기는 직업이다. 학생들의 질문, 행정 업무, 동료 교사와의 협의, 부모의 전화. 하루는 금세 소모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글을 쓰며 나를 붙잡는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결국 고독을 선택하게 했고, 그 고독 속에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줄 수 있었다. 작은 문장 하나라도 써야 마음이 건조하지 않고, 눈앞의 지루함을 견딜 수 있다. 점 하나가 이어져 선이 되듯이, 매일의 기록이 나를 재구성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순간은 없다.

A학생이 무심코 던진 농담 속에서, B학생이 힘겹게 꺼낸 고민 속에서, 나는 언어의 온도를 느낀다. 수업이 끝난 빈 교실에 홀로 남아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을 바라볼 때, 나는 다시 노트북을 열고 몇 문장을 적는다. 가르치는 일과 쓰는 일은 결국 같은 뿌리를 가진다. 둘 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몸짓이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호흡이다.

세상에서 나보다 중요한 존재는 없으며,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도 건강해졌다. 이기적이라는 말은 어쩌면 용기 있는 선택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일지 모른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글을 쓰고, 학교에 도착해서 조회를 마치기 전 짧은 시간에도 글을 쓴다. 점심 식사 후 운동장을 돌며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수업과 수업 사이, 학생들이 떠난 교실에서, 혹은 집에 돌아와 가족들이 잠든 밤에도 나는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는다. 잘 쓰려는 마음보다 일단 쓰겠다는 다짐이 더 크다. 오늘의 기쁨과 분노, 혹은 아무런 감정조차 없는 순간까지 기록한다. 그렇게 하루가 모이고, 글은 언젠가 나의 성전(聖殿)이 된다. 언어의 성전에서 나는 내 영혼을 받쳐 글을 쓴다.

가르치는 일은 타인을 위한 노동이지만, 쓰는 일은 나를 위한 고백이다. 그러나 두 일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글쓰기를 통해 성장한 교사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글은 나를 정직하게 마주하게 하고, 동시에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언어의 성전에서 치열하게 다듬은 문장이, 교실에서 학생들의 눈빛을 마주할 때 다시 살아난다.

나는 오늘도 쓴다. 내 글이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내 마음, 어제보다 조금 더 깊어진 사유다. 꾸준히 쓰는 동안 나는 나의 길을 달린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내 자리에서, 나만의 속도로. 그 속에서 나는 교사로서, 작가로서 성장할 것이다.

삶은 결국 선택한 대로 흐른다. 나는 글쓰기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래서 다시 다짐한다. 오늘도 나는 멈추지 않고 쓸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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