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피어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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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만희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 앞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말의 뉘앙스와 마음의 결이 자연스레 닿는다.

그런 순간, 나는 안다.

‘아, 이 사람에게는 말이 귀하게 전달되는구나.’

진심이 닿는 대화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더 깊게 만든다.

시각장애인으로로 살아오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말이 단지 소리의 연속이 아니라

살아온 환경, 생각의 깊이, 마음의 품이

고스란히 담긴 그 사람의 풍경이라는 사실이다.

언어의 수준이 달라지면

우리가 머무는 공간도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삶의 방향마저 달라진다.

말은 결국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주는 배와 같다.

그래서 나는 말하기보다

먼저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마음이 꽉 찼을 때는

말이 흘러넘치기 마련이지만,

마음이 단단해질수록

말은 아껴 쓰게 된다.

알지 못하는 것 앞에서는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문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순간,

말은 공허해지고 마음은 얕아진다.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그 빈 자리에서부터

우리는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침묵은 결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침묵은 말을 정제하는 시간이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며,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와 약속하는 시간이다.

말은 결국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더 적게 말하고, 더 깊게 듣고,

더 천천히 내 마음을 건너는 중이다.

침묵 속에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꼭 필요한 말,

누군가에게 닿을 만한 말이

천천히 내 안에서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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