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라는 나이테를 넘어서며,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눌린 어깨의 뻐근함이 먼저 나를 반긴다.
젊은 날, 나는 행복을 먼발치의 산봉우리처럼 여겼다. 언젠가 저 봉우리에 오르면, 모든 고생이 끝나고 찬란한 행복이 펼쳐지리라 믿었다. '아이가 대학에 가면', '이 집의 대출이 끝나면', '승진을 하면'… 그렇게 나는 수많은 '그러면' 뒤로 행복을 유예했다. 행복을 마치 전염병 환자 다루듯, 지금의 고단한 현실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흔드는 글귀를 만났다. "우리는 행복을 격리해서는 안 된다. 절대 미뤄서도 안 된다."
우리는 행복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특히나 오늘이 유난히 버겁고, 내일이 불안한 '어려운 시기'일수록 행복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삶이라는 스펙트럼, 그 모든 순간에 행복은 존재한다.
인간이 겪는 경험의 스펙트럼은 실로 광활하다. 한쪽 끝에는 고통과 불행이라는 시린 어둠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기쁨과 만족이라는 따스한 빛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 '그럭저럭 괜찮아'라고 말하는 무채색의 중립 지대가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행복이란 저 빛나는 긍정의 영역에만 속한다고 오해한다. 그래서 삶이 춥고 어두운 부정의 골짜기를 지날 때, 행복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사치라 여긴다. 슬픔과 불안에 잠식된 이에게 '행복하세요'라는 말은 공허한 위로, 혹은 잔인한 기만처럼 들린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심리 치료나 약물 치료이지, 뜬구름 잡는 행복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복은 인간의 모든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행복은 맑은 날에만 피는 꽃이 아니다. 그것은 긍정의 영역에서 우리를 더 충만하게 만들고, 중립의 영역에서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며, 심지어 저 절망적인 부정의 영역에서조차 우리가 주저앉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생명의 동아줄이다.
힘들 때, 우리는 행복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어둠을 견뎌내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40대 가장의 삶은 투박한 굳은살과 같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를 견디며 손바닥에, 또 마음 한구석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그것. 이 굳은살은 고통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삶을 지탱해 온 훈장이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먼 산봉우리의 거대한 행복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 굳은살 박인 손으로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복을 붙잡을 것이다.
퇴근길, 현관문을 열었을 때 훅 끼쳐오는 저녁밥 냄새.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다. 늦은 밤, 모두가 잠든 거실에서 홀로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의 청량감. "난 괜찮아"라는 영점을 겨우 회복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주말, 아내와 함께 시장에 나가서 먹는 어묵 하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밀어내고 긍정의 빛 한 줄기를 비추는 순간이다.
이것들은 '언젠가' 올 행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행복이다. 고된 하루의 마침표처럼, 작지만 선명하게 찍히는 삶의 위로이다.
삶의 역경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를 더 강하게 빚어내기도 한다. 19세기 철학자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가장이라는 무게, 중년이라는 터널,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삶의 트라우마.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약하게도, 강하게도 만든다. 우리를 주저앉힐 수도, 혹은 더 높이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되돌아보면, 내 삶의 가장 처절했던 순간들이 나를 가장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고난을 이겨낸 경험은 내 삶의 궤적을 바꿨고, 행복의 역치를 낮췄으며,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었다. 역경 이후에 우리는 더 성장한다. 그 굳은살은, 더 큰 행복을 단단히 붙잡는 힘이 된다.
행복을 격리하지 말라. 행복을 미래의 담보물로 잡히지 말라.
당신의 오늘이 설령 부정의 스펙트럼 위에 놓여 있을지라도, 그 어둠 속에서 더 절실하게 행복을 이야기해야 한다. 당신의 어깨가 무겁고 손이 거칠수록, 지금, 이 순간 스며드는 작은 온기를 느껴야 한다.
그 고난은 분명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으며, 당신은 그 누구보다 행복할 자격이 충분하다. 당신의 굳은살은 그 숭고한 증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