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가르치는 마음속에서 피어난다.

by 이만희

행복은 가르치는 마음속에서 피어난다 – 신춘문예 산문 형식

아침의 교실은 언제나 조금 먼저 깨어 있다. 창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손가락 끝을 스치며 들어온다. 책상을 닦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얇게 퍼져오면, 나는 비로소 하루의 호흡을 찾아 나아간다. 이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내가 교사로 살아가는 리듬을 만든다.

어느 날, 수업을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나는 무심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너를 행복하게 하니?”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맛있는 점심, 친구와의 장난, 새로 깐 과자봉지. 그들의 대답은 단순했지만 단단했고, 솔직했지만 깊었다. 그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정작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던진 적이 언제였던가. 교사가 된 뒤 삶은 일정하게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어느새 ‘행복을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행복을 외부에서 찾았다. 승진, 성과,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 그러나 그것들은 잠시 반짝일 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하루를 견디는 힘은 더 소박한 곳에 있었다. 점자를 더듬는 학생의 손끝에서, “선생님, 이거 맞나요?” 하고 낮게 묻는 목소리에서, 수업을 준비하며 외롭다 느낄 때 문득 떠오르는 아이들의 웃음에서. 그 작은 순간들이 나를 서서히 되살리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의 90%는 건강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그는 단순히 육체적 건강만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몸이 흐려지면 마음이 따라 눌리고, 마음이 어두워지면 세상이 한 톤 낮아진다. 건강은 생각의 밝기를 지키는 일이며, 생각의 밝기는 사랑의 온도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걷기 시작했다. 햇살이 운동장 바닥에 길게 눕는 시간, 나는 그 위를 천천히 걸었다. 걷는 사이, 어제의 피로가 먼지처럼 가라앉고 내면의 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오늘도 아이들과 웃을 수 있을까?”

그 물음은 걱정이 아니라 다짐이었다. 웃을 수 있다는 믿음이, 그날 하루의 방향을 정해주었다.

교사는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보다, 우리가 보여주는 태도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을. 때로는 잘 짜인 수업보다 선생님의 눈빛 하나,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하루를 바꾼다. 내가 명랑한 표정으로 교실에 서면, 아이들은 하루를 밝게 받아들이고, 그 밝음은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다. 행복은 이렇게 순환하며 가르치는 마음속에서 자란다.

그래서 나는 매일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웃을 수 있는 교사인가?”

이 물음은 나를 단정하게 세우고, 내가 교단에 서 있는 이유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명랑함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며, 책임이지만 또한 나를 지탱하는 기쁨이 된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다. 태도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 자신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 몸을 돌보는 일은 곧 마음을 가꾸는 일이고, 마음을 가꾸는 일은 결국 가르침의 근원을 지키는 일이다. 내가 건강해야 아이들에게 더 넓은 마음으로 서 있을 수 있다. 내가 명랑해야 그 명랑함이 아이들의 마음에 작은 불빛처럼 남는다.

교단에서 보낸 세월 동안, 나는 가르치며 배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것은 특별한 성취의 이름으로 오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이 내 앞에서 환하게 웃는 순간,

그 웃음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되는 순간,

그 짧은 찰나 속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오늘도 나는 교실 문을 연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한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는 이 순간,

교사인 나의 삶이 아름답게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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