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우리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다.

by 이만희

아침 햇살이 느리게 교실 바닥을 훑어갈 때, 나는 문득 생각한다.

우리가 하루 동안 마주치는 수많은 감정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아이들의 얼굴에 스치는 희미한 주름들, 긴 침묵 끝에 겨우 건네는 말 한마디, 이유 없이 무겁게 내려앉은 그들의 눈빛.

그 속에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감정의 결이 숨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말한다.

“감정은 잘못이 아니야. 감정은 그저 자연의 힘이야.”

바람을 멈출 수 없듯, 감정도 거부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람을 두려워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삶의 돛을 조정하는 일이다.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른 비행기처럼, 감정도 이해하고 다루는 순간 새로운 날개가 생긴다.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면 가끔 투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 저 똑같은 이야기만 계속 쓰는 것 같아요.”

그 말속에는 지루함보다는, 자기감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괜찮아. 피아노도 같은 곡을 수십 번 연습해야 완성되잖아. 감정도 똑같아. 반복은 멈추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야.”

하루의 감정을 글로 비추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감정의 모양과 무게와 온도가 선명해진다.

어둠 속에 있던 마음을 햇빛 아래 펼쳐놓는 일.

그 과정을 지나면 “나는 화났다”가 아닌

“나는 지금 화가 나는 감정을 느끼는 중이다”

라고 말하게 된다.

주어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삶이 훨씬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감정의 주인이 ‘나’에서 ‘감정’으로 옮겨가며, 마음은 비로소 스스로 설 자리를 찾는다.

감정의 바람이 거칠게 부는 날이면, 나는 아이들에게 감사 일기를 권한다.

감사는 기분이 좋아서 쓰는 기록이 아니다.

쓰다 보면 마음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기록이다.

처음엔 억지처럼 적히던 한 줄이

“점심시간에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햇살이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졌다.”

“오늘 나는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와 같은 문장으로 바뀌어 간다.

감사의 기록은 감정의 무게를 바꾸고, 마음의 방향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오늘을 버틴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잘한 거야.”

그 말이 닿는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하게 밝아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 작은 변화는 마치 긴 터널 끝에서 아주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마음 온도를 바꿔놓는다.

나는 믿는다.

행복은 감기처럼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빛처럼 퍼지는 것이라고.

누군가의 감사 한 줄이 두 사람의 미소를 만들고, 두 사람의 미소는 또 다른 여러 사람의 분위기를 바꾼다.

교실에서 시작된 이 상향 나선은 집으로, 거리로, 우리가 닿는 모든 곳으로 번져간다.

교사의 역할은 어쩌면 이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마음 안에서 흔들리는 작은 바람을 읽고, 방향을 살짝 바꿔주는 일.

감정 조절은 감정을 억누르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그 위에 새로운 삶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일기 속의 짧은 문장들,

숨처럼 쉬운 성찰,

조금의 감사,

그런 작은 움직임들 속에서 자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다시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오늘의 언어로 직접 만들어가는 거야.”

감정을 관찰하고, 감사를 기록하며, 마음이 행동을 이끌어가는 삶.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교육이고,

나 또한 매일의 교실에서 배우는 가장 큰 기쁨이다.

감정은 바람이고, 감사는 그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다.

그 힘을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살아가는 일이,

내가 교사로 존재한다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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