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걷기까지 1년이 걸리고, 한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20년이 걸린다. 하지만 마음이 자라는 데는 정해진 시간표가 없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스스로 성숙하지 않기에, 매일 책을 읽고 매일 걸으며 매일 자신을 돌보고 단련해야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춘다.
나는 공원을 걸을 때 눈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귀와 코, 피부가 먼저 깨어난다. 바람이 건네는 속삭임, 나뭇잎이 내는 얇은 떨림, 자작나무의 매끄러운 결과 소나무의 거친 주름을 손끝으로 더듬으면 세상은 또렷하게 느껴진다. 봄이면 어린 새순의 숨결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슬프지 않다. 다른 감각들이 충분히 내 삶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늘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성경의 한 구절은 따뜻하게 말한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나는 이 말을 오래 붙잡아왔다. 고통은 내가 움켜쥐고 있을 때 더 커지고, 만족은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젊은 날의 나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살았다. 인정받고 싶어서, 앞에 서고 싶어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집중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자리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다.
배경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배경이 있어야 중심도 존재할 수 있다. 가족을 받쳐주는 배경, 누군가가 기대어 쉴 수 있는 배경. 그 조용한 뒤편의 자리가 지금은 내게 가장 귀한 자리다. 행복은 그 배경에서 지켜야 하는 사람을 지켜낼 때 깊어진다.
사람은 감정으로 선택하고, 이성으로 그 선택을 합리화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뇌는 늘 익숙한 방식으로 해석한다. 뇌가 그리 정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비로소 겸손이 싹트고 통찰이 열린다.
통찰은 복잡한 것을 꿰뚫어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다. 단순하지만 허전하지 않고, 차분하지만 비어 있지 않은 '꽉 찬 단순함'.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힘이다.
행복도 그렇다.
행복의 조건을 갖춘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면 되고, 해가 뜨거우면 그늘에 서면 된다. 상황이 즐거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행복을 결정한다.
행복의 가장 큰 적은 '나만을 향한 시선'이다. 내 마음이 여유로울 때 배려는 행동이 되고, 행동이 여유를 다시 키운다. 빵을 둘이 나누면 양은 줄어들지만, 나누는 마음은 오히려 하나로 커진다.
천 원을 나누든 천만 원을 나누든, 나눔의 가치는 금액이 아니라 마음의 폭에서 결정된다.
행복은 될 것'이 아니라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열린다. 행복을 향해 걷기 시작하면, 세상은 그 걸음을 돕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가슴이 답답하면 바다를 만나러 간다고 해 질 녘의 백사장을 맨발로 천천히 걸으면, 모래알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작은 모래알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듯, 별것 아닌 기쁨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백사장을 만든다. 큰 행복은 언제나 작은 행복의 모음이다.
나는 오늘도 내 속도로, 내 감각으로, 내 길을 걷는다.
앞에 서기보다는 누군가의 뒤에서 조용히 빛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로 세상을 느끼며.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의 걸음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