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피어나는 교육의 상상력

by 이만희

나는 시각장애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매일 아이들과 마주하며 함께 배워가는 동안, 나는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의 대부분은 불편함에서, 경계에서 시작된다.

생각해 보면 가르침이라는 일은 상상하지 못했던 경계를 마주하는 과정이다. 교실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순간들로 가득하다. 그 순간들은 나의 익숙한 기준을 깨뜨리고,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내가 믿어왔던 것과 다른 시선에 머물 때, 비로소 새로운 교육의 상상력이 피어난다.

상상은 능동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동적인 반응에서 피어난다. 그러니 교육자로서 나는 나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내가 게으를 때, 상상력의 공간은 닫힌다. 상상력이 요구하는 것은 사건들을 탐사하는 능동적 행동이 아니다. 주어진 과제와 상황에 진정으로 머무르는 능력이다. 그제야 아이들의 세계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그 언어들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배움의 가능성을 만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시각장애를 갖고 있지만, 그들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준다. 그들의 경험과 이야기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며, 나의 생각의 경계를 넓혀준다. 나는 그들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들의 경험이 가르침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지식의 전달 그 이상이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면서 나의 교육적 접근이 변화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닫는다. 교육이란 본질적으로 지식의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나는 이를 '조형적 지식'이라 부르고 싶다. 조형적 지식은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 자신의 사유와 정서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준 새로운 시각을 나의 교육에 반영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해 나가는 것. 이는 지식을 가볍게 다루는 것이 아닌, 깊이 있는 상상력으로 가르침을 재해석하는 진지한 실천이다.

경계에서 피어나는 상상력은 교육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힘이다. 가르침의 자리에서 나는 아이들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경험을 통해 나를 조형해 간다. 이는 교육의 순간들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며, 나는 그 선물 안에서 언제나 새로운 배움의 길을 발견한다.

결국 가르침은 나를 변화시키는 여정이다. 나는 교육의 완성된 모습이 아니다. 늘 배움의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에 머물며 긴장의 순간들을 경험할 때, 비로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배우고 그것을 나누는 교육자로 살아간다.

생각이 '경계'와 '균열' 속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은,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수업이나 완벽한 교육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교육은 늘 예측 불가능한 것들의 교차로에 있다. 그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기존의 기준과 틀을 넘어, 새로운 관점과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는 마치 그림을 새롭게 그려내는 과정과 같다. 아이들이 내게 말을 걸 때, 나는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그들이 보여주는 표정을 통해서 그들의 세계에 좀 더 조화롭게 '작품'으로 함께 참여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러한 조형적 지식을 추구하는 태도는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전달이 아니다. 유연함과 공감, 그리고 체험과 탐색의 연속을 필요로 한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그 경계를 넘어서서 서로를 조형하는 과정임을 이해할 때, 비로소 교육은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배우고, 성장하며, 때로는 어리숙해지고, 다시 시도한다. 바로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상상력은 늘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이 된다.

나는 수업의 일상 속에서 '지행합일'을 꿈꾼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하지만 그것은 내가 생각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내 행동을 이끌도록 내버려 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내게, 혹은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 때, 그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말이 내게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지행합일이다. 즉 내 사고와 행위가 미리 정해진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지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작동하는 것이다.

나는 '달리 보이는 것'에 머문다. 그 '달리 보이기'의 힘을 믿는다. 세상이 다르게 보일 때, 우리의 태도와 사고도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 지닌 힘이며, 경계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창조력이다. 그래서 나는 가르치는 일이 '경계에 선 자'의 노력이라고 믿는다. 벽에 부딪치는 순간들, 불편함과 긴장감이 만들어내는 균열들. 그 속에서 비로소 내부로부터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내가 그 길을 따를 때, 아이들도 함께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다.

이전에는 교육이 '정답'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좀 더 확장된 의미에서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안다. 질문은 늘 답보다 먼저 경계와 문제를 만들어내며, 그것이 바로 상상력의 기회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달리 보기'의 힘이 그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만들게 하며, 끊임없이 조형적 지식을 수확하게 한다.

이처럼 '지행합일'의 관점은 이론을 넘어서 실천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지식을 유희의 대상으로 다루거나 정보의 축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상, 그리고 아이들이 서로 형성하고 재형성하는 역동적인 과정임을 깨닫는다. 이는 다시 말해 내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행동'이 나를 조형하는 과정이다. 내가 말을 하거나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내가 그들과 함께하는 '사건'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경계'의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 경계는 아프고, 때로는 불편하지만, 그 속에서 새로움이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경계를 넘어 '달리 보기'와 '달리 생각하기', 그리고 '조형적 지식'이 꽃피우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교육이 아닐까.

이전 13화삶과 교육은 맛있는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