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를 더듬는 손끝에서, 흰 지팡이가 복도를 두드리는 소리에서, 나는 종종 기억의 본질을 생각한다.
시각장애학교인 이곳에서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조직하는 일이다.
인간의 기억은 단순히 지나간 일의 저장이 아니다. 정체성을 형성하는 선택이자 창조의 과정이다. 특히 "기억은 망각의 반대가 아니라 적극적 망각의 결과"라는 말이 내게 깊은 울림을 준다.
세상은 우리 아이들에게 종종 결여의 서사를 강요한다.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가능성을 재단하고, 동정이나 한계라는 플롯 속에 가두려 한다. 만약 교육이 그저 이 사실들을 충실히 저장하고 반복하는 과정이라면, 아이들은 세상이 부여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선택이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 붙잡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의 문제다.
나는 내 교실이 아이들에게 세상의 편견과 한계를 적극적으로 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손끝으로 읽어낸 지식의 기쁨, 소리로 구별해 낸 공간의 입체감, 친구 목소리에서 느낀 온기,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성취감. 이것들을 선택하여 기억하게 돕고 싶다.
우리는 '보이지 않아도 괜찮은' 공동체가 아니다. '보이지 않기에 더욱 빛나는' 감각과 능력의 공동체다. 우리만의 조직화된 기억, 우리만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역사 서술은 듬성듬성한 사실 사이를 메우는 이야기 솜씨만이 아니다. 이야기의 플롯을 짜고, 그 플롯에 따라 사실들을 선택하는 일이다.
교사로서 나는 이 말의 무게를 절감한다. 나는 매일 아이들 앞에서 역사가로 선다.
어떤 플롯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기념비적 역사를 넘어 비판적 역사를 서술하는 교사이고 싶다. 헬렌 켈러나 루이 브라유 같은 위대한 인물들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고 싶다.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옭아매는 과거의 서사로부터, 가령 '장애'라는 규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비판적 주체가 되도록 돕고 싶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의 자유를 돌려주는 일이다.
가르침이란 결국 학생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교사가 정해놓은 낭만적이거나 희극적인 플롯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때론 좌절하고, 때론 세상을 풍자하고, 때론 스스로의 성취를 기념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플롯을 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을 지향하는 것조차 주관적 선택이다. 마찬가지로 '장애'는 객관적 사실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내 삶의 중심으로 둘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특징 중 하나로 둘 것인지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의 역할은 아이들이 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려주는 것이다.
점자를 가르치고 보행을 가르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 자신의 삶이라는 역사를 서술해 나갈 언어와 도구를 쥐여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오늘도 손끝으로, 귀로, 온몸으로 자신의 기억을 통합하며 단단한 정체성을 조각하고 있다.
그 작은 손으로 자신만의 서사를 써 내려갈 수 있도록, 나는 그저 묵묵히 그들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곁을 지킬 뿐이다.
아이들 각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가장 위대한 역사가가 될 것임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