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이 유행이라는 소식에 교실 문을 열기 전까지 걱정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제시간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선생님, 저 왔어요."
그 한마디에 오늘 하루가 이미 절반쯤 완성된 것 같았다.
나는 늘 수업의 시작을 '인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식을 여는 문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문이다.
오늘은 종양의 기초를 배우는 날이었다. 듣기만 해도 무겁고 낯선 단어지만, 아이들의 손은 새로운 세계를 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받아들인다.
책상 위에 놓인 병리모형들. 신장암, 유방암, 골수암, 위암. 아이들이 모형을 잡을 때마다 그 손끝은 "이게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하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단단함, 울퉁불퉁함, 경계의 흐릿함. 말로 설명하면 어려운 것을 아이들은 손끝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읽어낸다.
"선생님, 이건 잘 안 떨어져요."
"여긴 확실히 분리돼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배움이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오늘의 학습목표는 단순했다. 종양의 정의를 알고, 분류를 이해하고, 특징을 구분하는 것. 하지만 아이들이 배운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있었다.
어떤 세포는 제멋대로 자라다가 삶을 위협하기도 한다는 것. 그렇지만 서로 손을 잡아주면, 삶은 다시 건강한 방향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의 손이 모형 위를 천천히 지나갈 때, 나는 이상하게도 '생명'이라는 단어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고 물었다.
"오늘 수업 어땠어요?"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종양은 무서운데… 근데 오늘은 신기했어요."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친 것 같지만, 돌아보면 배우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아이들은 눈으로 보지 않지만, 세상을 더 깊게 본다.
나는 그 손을 따라가며 내 방식의 사랑을 배운다.
내일도 우리는 손끝으로 세상을 읽고, 마음으로 서로를 만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