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한다

by 유브로




1년 전쯤 누군가의 추천으로 충동구매했던 책.

그러나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읽게 된 책.

읽게 된 이유도 최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의

영화를 봤기 때문.

내가 이 감독님을 좋아하는지 딱히 모르고 있다가

필모를 보면 내가 이 감독님 작품들을 좋아하는구나

라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감독님이다.


<큐어>와 <절규>가 가장 좋고, <도쿄 소나타>,

그나마 최근작인 <스파이의 아내>까지

내가 봤던 감독님의 작품들은 대부분 다 좋아한다.

정말 똑똑한 감독님이라고 생각하고

장르를 다루는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장르를 현실에 교묘히 잘 섞어내는

감독님만의 현실적이어서 소름 끼치는

그 연출이 정말 매력적이다.


이 책에서도 그 현실적,

즉 리얼이라는 부분에 대한 고찰이 있다.

물론 이 책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책은 아니다.

중간에 <절규>의 로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나

<도쿄 소나타>의 탄생에 대해서 짧게 나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설명을 위한 예시일 뿐이다.


이 책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이 여기저기서 했던

영화에 대한 강의들을 글로써 모아놓은 것이다.

강의를 글로 옮기는 데에서 만들어지는

약간의 괴리감과 늘어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는데 시간이 더 걸리긴 했다.


이 책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의 작품보다

구로사와 기요시라는 감독에 대해서

더 사유하게 만든다.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생각들이 담긴 강의들이기 때문.

이 책에 대한 전체적인 평을 하기엔 어렵다.

좋은 대목도 있었고 지루한 대목도 있었다.

강의 중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을 예로 많이 들고

그뿐 아니라 고전영화들을 예로 많이 들어서

그중엔 보지 못한 영화들이 많다 보니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운 부분도 더러 있다.


어쨌든 그럼에도 정말 '영화'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무슨 말을 하는지 아예 모르겠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관련 책에 비하면

술술 잘 읽히고 감독님이 말도 잘하셔서 흥미롭다.


흥미로운 대목으로는 누구보다 영화감독 같은

어쩌면 누구보다 장르를 잘 다루는 감독님인데

본인을 "일단은" 영화감독이라고 말한다는 점.

영화는 많아야 1년에 한편이고 평균적으로는

그보다도 더 긴 텀을 두고 작업을 하다 보니

영화감독으로 사는 시간은 적다는 뜻이다.

이건 기요시 감독뿐 아니라

세상 모든 감독의 공통점일 듯.

나도 때로 영화감독이 직업일까?

아니면 그냥 일시적 프로젝트일까?

라는 의문을 던질 때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일단은" 영화감독이란 말이 좋은 대답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감독님은 스스로를 언제나

상업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투자를 받아서 영화를 찍는 감독은

다 상업영화감독이다.

이전까지 나에게 감독님은 일종의 예술가 같았다.

인간의 심연을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스크린 위에 누구와도 다르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님은 감독은 정해진 돈으로 시간 내에

사람들을 설득해서 조율해서 완성해야 하는 사람이고

구로자와 아키라나 브레송 같은 일종의 예술가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스스로는 현실에 맞게 노력하는

말 그대로 직업으로써의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책의 짜임새도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땐 이렇게 훌륭한 감독이

그리고 그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고

그렇게 많은 존중을 받고 있는 감독이

아직도 영화를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사람을 어떻게 그리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과연 영화가 사람을 그려야 하는 것이 맞나

라는 질문을 늘 품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유하고 있고 공부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 순수하고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봤을 때 괜히 가졌던 감독님의 이미지는

좀 고집스러울 것 같고 완벽주의자일 것만 같았는데

완전히 정반대의 이미지였다.

물론 이 책만으로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강의의 태도는 늘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준다기보다는

좋은 작품들의 예시를 여러 개 추천하면서

"저 장면에 함께 주목해 보시죠"라며

본인의 감정을 나누고 고민을 공유하는 정도다.


21세기 영화를 말하다.

정말 거창한 문장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도

감독님 나름대로 21세기 영화란

영화 바깥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라며 러프하게 정리하시긴 했다.

그 정리의 의도는 사실 21세기 영화를 말하다라고

강의를 주최한 분들을 위해

이 정도 결론은 내려줘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직업으로써의 강의자의 태도였다.


오히려 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이

21세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산업에서 더 이상의 예술가는 존재할 수 없다.

상업적이지 않은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

공개되기도 어려운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아직도 영화가 무엇인지

영화는 사람을 말할 수 있는지

각본이 무엇인지

로케이션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사유하는 그런 감독이야말로

21세기 영화를 만들고 이끄는 감독

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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