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갑부처럼 책을 주워 담았다.
34살. 나와 독서는 거리가 멀다.
10대 때는 입시를 위해 소설책을 많이 읽었고
군대 있을 때는 2년 연속
독서왕, 독후감 경연 대회1등을 하긴 했지만
꾸준히 독서를 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시간이 어떻게 나를 변화시키냐.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만 갖고 사는 느낌이다.
이름은 들어봤던 부자나 철학가들.
그냥 들어본 느낌만 갖고 산다.
사유하지 않고 그냥 아는척하기만 바쁘다.
그리고 소설로 한정한다면
엄청난 세상, 내가 심지어 잠시 관심도 있었던 그 세상.
소설의 세상은 아직도 계속 변화하는데
거기에 무지한 느낌이 든다.
그곳에도 엄청난 영감들이 사로잡고 있는데
난 거기에 눈길을 안주는,
뭔가 무책임하고 무지한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
이건 엄연히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이고
모두가 반드시 독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쇼펜하우어에 대해서 주워들은 정도만 알고 있던 나.
표지가 매력적이고, 일단 책의 두께가 얇았다.
목차가 세분화되어 있어서
하루에 조금씩만 읽어도 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독서를 시작하는 나에게
이건 정말 큰 매력이었다.
어떤 리뷰를 하기엔 어려운 책이다.
생각하는 것, 사유하는 것에 대해서
또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읽으면서 계속 사유하게 되고 그 시간이 참 값지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삶을 대입해서 반성하다가
반성할 필요도 없다고 하니 그렇구나 싶기도 하고
태어난 순간 고통이라고 하니 그렇구나 하다가
그럼에도 우린 꾸준히 사유하고 노력해야 한다니
또 그렇구나 싶다.
쇼펜하우어 스스로도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시대의 흐름도 있고 사회의 인정도 있으니
내가 맞다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오히려 우리는 어차피 정답을 모르니까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 같다.
그냥 끊임없이 도달할 수 없는 먼 어떤 그곳을 향해
사유하고 사유하고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는 것.
어쩌면 그 삶이 외롭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그것만으로 삶이 외롭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을 나름대로의 번역을 거쳐 말한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고
규칙처럼 올 내일을 상상하는 것은
그저 규칙처럼 살아온 어제와 오늘이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환영 같은 것이다.
그러니 마치 건물을 만들고 있는 노동자처럼
지금 들고 있는 이 돌을 어디에 올릴지에만
집중하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순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염세적으로 한편으론 시크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많았다.
그마저도 결국 나의 따뜻한 눈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는 대목들도 있었지만
철학 책을 읽는, 더 나아가 독서가 주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 책이다.
우리는 사유하는 시간을 너무 놓치고 살아간다.
그건 귀찮고 머리 아픈 일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사실 동의한다.
그러나 일단 책을 펴고 한 글자 눈으로 읽는 순간,
우리의 뇌는 자연스럽게 사유하게 된다.
그 사유의 시간 자체가 내 눈앞의 시간을
값지게 보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