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Who Wasn't There, 2002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에드 크레인이라는 이발사의 이야기다. 에드는 본인이 이발사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에드는 집에서도 아내 도리스의 다리털을 밀어준다. 이발사가 아니라고 생각함에도 가정에서도 일종의 이발을 하는 에드의 삶. 그가 이발사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에드는 평생 욕심 하나 없이 살아왔지만, 그런 본인의 삶을 후회하며 드라이클리닝 사업에 투자를 해보기로 결심한다. 아내 도리스와 그녀의 상사 빅 데이브의 외도를 알고 있음에도 그마저도 무기력하게 흐린 눈을 하던 에드는 빅 데이브를 익명으로 협박해 투자금을 뜯어낸다. 그러나 드라이클리닝 사업은 사기였고 빅 데이브는 에드의 정체를 알게 된다. 빅 데이브와 다툼 끝에 그를 죽이게 되는데 정작 아내 도리스가 살인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된다.
에드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진행됨에도 우린 에드의 마음을 잘 알 수 없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그의 내레이션은 그가 보고 관찰한 것들을 전달하는 편에 가깝다. 때론 그 내레이션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지만 그것도 본인의 감정을 관찰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에겐 욕망과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 에드의 진실은 본인이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아도 감춰진다. 본인이 빅 데이브를 죽였다고 변호사 앞에서 시인하지만 아무도 그건 별로 중요해하지 않는다. 에드는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말한다. 에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가깝다.
평생 욕심 없이 살아온 에드는 생에 처음으로 부린 욕심 하나로 아내를 잃고, 스스로도 파국으로 치닫는다. 에드는 영화에서 2번 욕심을 부리는데 그 한 번이 드라이클리닝 사업이고 또 한 번은 레이첼이라는 소녀의 피아노 실력을 높게 사 그녀에게 피아노 오디션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 재능 있어 보이던 레이첼의 피아노 실력은 사실 형편없었다. 레이첼이 에드에게 성적으로 접근하자 두 사람의 관계는 자동차 사고로 이어진다.
그의 욕망은 항상 파국으로 치닫는다. 두 파국은 두 가지 믿음에서 시작된다. 하나는 아내가 빅 데이브가 불륜 사이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인해 에드는 빅 데이브를 협박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레이첼이 훌륭한 피아노 실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 말없이 사람들을 관찰하는 에드가 믿었던 두 개의 진실이다.
무언가를 관찰할수록 진실은 가려진다. 도리스를 담당하는 변호사가 했던 말이다. 정작 이 말은 에드에게 더 맞닿아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유령처럼 지내며 관찰만 하던 에드는 정작 가려진 진실들을 믿고 스스로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두 진실 중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지만 말이다. 사실 맞고 틀림은 중요하지 않다. 에드가 보지 못한 가려진 진실은 도리스와 레이첼의 마음일 것이다. 마음이 결여된 진실은 표면적인 사실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도리스가 재판 전 스스로 목숨을 끊고 혼자 남은 집에 홀로 소파에 앉는 에드는 비참해 보인다. 스스로도 그제야 말한다. 자기가 유령인 것 같다고. 세상과 소통하던 유일한 방법이었던 아내를 잃은 순간이야말로 에드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결국 이발사면서 스스로가 이발사가 아니라고 말했던 에드는 죽는 순간마저 자신을 재판장을 비롯한 사람들의 머리 스타일을 관찰한다. 스스로를 부정하던 사람은 결국 세상에서 부정당한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코엔 형제의 첫 번째 흑백영화다. 느와르 장르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이 형제는 흑백영화로써 고전 느와르에 대한 오마주 혹은 애정고백을 하며 또 한편의 현대판 고전, 클래식을 만들어냈다. UFO, 영매의 등장은 철학적 접근과 동시에 고전 느와르의 틀을 깨는 그들의 색깔이다. 결국 장르의 틈을 깨고 현실을 비추려는 신선한 시도였다. 코엔 형제는 인간의 부조리한 삶을 느와르 범죄 장르 위에 펼쳐놓고 관찰하게 만든다. 관객들도 진실을 읽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에드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표정을 해석하지 못한다.
진실을 모르기에 오히려 묘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많다. 도리스가 에드에게 하는 사랑한다는 말하는 장면이나 에드가 도리스와 빅 데이브의 불륜에 질투가 났었다고 고백하는 장면. 표정 없는 인물들의 진심인지 의심되는 대사들이 묘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에드 역의 빌리 밥 숀튼이 가장 훌륭하다. 무표정한 얼굴과 중후한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고전적인 향기가 영화를 묵직하게 이끈다.
거의 로저 디킨스의 최고작 중 한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거의 하나의 조각상이고 로저 디킨스는 프레임과 빛을 깎는 장인 같다. 그림과도 같은 프레임과 빛과 어둠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단연코 느와르다. 느와르, 느와르를 외치게 만든다.
인간의 욕망, 무기력함, 부조리한 삶은 코엔 형제 영화의 핵심이었지만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는 그것이 인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접근으로까지 발전했음을 느끼게 된다. 장르 영화들을 오마주하며 비틀었던 형제는 결국 본인들이 동경했던 영화들을 넘어서는 현대의 클래식을 만들어냈다. 비로소 거장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들의 데뷔작부터 순차적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면 두 사람의 전성기, 재능이 만개한 순간이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연코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