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3.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 철학자의 현실 조언
<챕터 11. 가난은 창피하면서도 배울 점이 많다>
가난은 창피하다.
이 말부터 솔직하게 해두자.
버스에 올라타서 교통카드 잔액이 부족해
뒤 사람 눈치 보며 허둥댈 때,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다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슬쩍 확인하게 될 때,
그 순간은 언제나 조금 창피했다.
사람들은 ‘돈이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돈이 없으면 거의 모든 순간이 불편해진다.
눈치가 많아지고,
말수가 줄고,
자신감은 바닥까지 내려간다.
가난은 삶을 작아지게 만든다.
특히 자존심에 구멍을 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가난한 시간들 속에서 나는 참 많은 걸 배웠다.
나는 사치 대신 여유를 알게 됐고,
과시 대신 진심을 보게 됐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됐다.
가난은 선택지를 줄였지만,
오히려 나를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 앞에
더 이상 포장할 게 없었으니까.
밑바닥에서의 질문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가진 게 없으니까,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서 배웠다.
사람을 보는 눈, 진심을 알아보는 감각, 그리고 불행을 견디는 방식.
가난은 여전히 창피하다.
누군가에게 내 사정을 말할 때,
나는 아직도 약간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창피함 속에도 배울 게 있다는 걸.
가난은 나를 작게 만들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나를 더 정확하게 보게 됐다.
나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단단하다.
허세를 뺀 자리엔 진심이 남았고, 돈을 잃은 자리엔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다.
그래서 가난이 다 지나간 뒤,
내가 남긴 게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나는 내 안의 ‘무언가’는 자랐다고 믿는다.
가난은 여전히 창피하지만,
그 창피함마저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가난 때문에 고개를 숙일 때,
나는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나도 그랬어.
그 시간은 너를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너를 깎고 다듬는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