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는 70번 이기고 1번 졌지만 천하를 잃었다
예측도 어렵고 대응도 어렵다. 너무나 많은 변수와, 너무나 많은 상황들이 뒤섞여 아마 누구도 자신있게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섣불리 대처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위기는 곧 기회라고, 정말 똑똑한 사람들은 이런 시기를 발판으로 삼아 오히려 평온한 시절 거두지 못할 성과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성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나도?'하는 한탕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글쎄, 내가 범인(凡人)이어서 일까?
이런 때에는 무리해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기보다 갖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도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확실히 성과를 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행해야 겠지만, 적어도 '무리해가면서까지' 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흔히 상처 뿐인 승리라는 말도 있지 않나.
조금 더 구체적으로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도 있다. 고대 지중해 세계 에페이로스 왕국의 왕이자 전설적인 지휘관이었던 피로스 1세의 사례에서 따온 말이다. 그는 그보다 1세기 쯤 앞서 활동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이래 가장 뛰어난 전략가라는 평을 받던 인물이다.
아직 로마가 전성기에 접어들기 전, 로마를 상대로 연전연승하며 지중해 세계를 '거의' 제패할 뻔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피로스는 로마를 상대로 몇 번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연승을 거뒀지만 지속적인 전투에서 누적된 아군의 피해를 만회하지 못하고 다시 본국으로 물러났다. 결국 그 때까지 벌어두었던 막대한 토지와 전리품을 그대로 날려버린 셈이다.
그저 전투에서 이겼다는 승전보와 영웅담 외에는 실질적으로 얻은 게 없었다는 말이다. 아니, 되려 아군의 인명과 전쟁 물자만 날려버린 셈이었다. 결국 피로스 이후로 몇 세기가 지나지 않아 에페이로스 왕국은 로마에 병합된다.
역사 속에 '피로스의 승리'처럼 덧없는 승리의 허상에 빠진 사례는 너무나 많다.
초한전쟁 중 초나라(楚) 항우의 사례도 그렇다.
익히 알려졌듯 항우는 전투에 통달했던 사람으로,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에 중국 전역을 2년 만에 평정하고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한나라(漢) 유방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갔던 사람이다. 특히, 팽성대전(항우의 도읍지 팽성 근처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는 유방의 56만 대군을 상대로 겨우 3만의 기병을 몰고 가 박살을 냈던 적도 있다. 그 때 항우가 한군(漢軍)을 상대로 일방적인 학살을 벌인 때문에 인근 수수(睢水, 강 이름)에 시체들이 쌓여 강의 흐름이 막힐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전투 이후로도 항우의 우위는 지속되어 유방은 망치에게 얻어 맞는 모루처럼 형양성(滎陽城)에 틀어박혀 간신히 버틸 뿐이었다. 때로는 기신(紀信)같은 신하들이 유방 대신 목숨을 바치고, 유방 본인이 신하 한 명만 대동하고 군사를 빌러 다녀야 했을만큼 절박한 순간들도 있었다. 심지어 항우 쪽에서 쏜 화살에 맞아 목숨이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유방은 끝내 지지 않았다. 전투에서는 매번 패했지만, 뒤로 한신을 움직이고 팽월과 경포를 활용하면서 끊임없이 항우의 배후를 공격하고 주변을 조여갔다. 항우는 자신이 참전하는 모든 전투에서는 진 적이 없지만, 한 '점(點)'과 같은 자신을 둘러싼 유방의 그물을 인지하지 못했다.
끝내 항우에게 지지 않은 유방의 그물이 완성되던 시점, 마지막 단 한 번의 전투(해하전투, 垓下戰鬪)에서 항우는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하며 목숨을 잃는다.
어려운 시절이다.
기업들이 대량으로 직원을 정리하고, 부진하거나 새로운 사업에서 철수하고 있다. 모두가 생존을 위해서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고,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개인은 너무나 힘들다. 기업이 재채기를 하면 개인은 몸져 눕는다.
이런 시국을 타개하기 위해 무리해서 주식이나 코인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적진 않다. 요행히 벌면 낫지만, 그나마 갖고 있던 것도 잃으면 답이 없다. 내가 조사한 바는 없지만, 그런 식으로 덤벼든 사람들 중에 과연 벌어들인 사람이 많을까 잃은 사람이 많을까?
부디 현명하게 버텨내자.
잃지 않은 것을 최우선으로 하되, 무리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작은 좌절이나 작은 성공에 휘둘리지 말고, 내 삶의 긴 전쟁의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