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바다 그리고 카뮈

결혼ㆍ 여름

by 권민정

《결혼ㆍ여름》 알베르 카뮈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뿐이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 향초들의 육감적인 냄새가 목을 긁고 숨을 컥컥 막는다. 풍경 깊숙이, 마을 주변의 언덕들에 뿌리를 내린 슈누아의 시커먼 덩치가 보일락 말락 하더니 이윽고 확고하고 육중한 속도로 털고 일어나서 바닷속으로 가서 웅크려 엎드린다. 벌써 바닷가로 가슴을 열고 있는 마을을 지나 우리는 도착한다. 노랗고 푸른 세계로 들어가면 알제리의 여름의 대지가 향기 자욱하고 매콤한 숨결로 우리를 맞이한다. (p13)




이 글은 카뮈가 1939년에 출간한 《결혼》 중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나오는 문장이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불굴의 의지로 살았던 작가이다. 그의 삶은 온갖 역경과의 부단한 투쟁이었다. 그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이주 노동자의 아들이었는데 갓난아기 때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그 때문에 가난했다. 가족들 대부분이 문맹이었고, 어머니 역시 문맹으로 아들의 글을 읽지 못했다.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다가 말도 잘하지 못했다. 카뮈 자신도 결핵에 걸려 젊었을 때부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그는 기질적으로 활력이 넘쳤고 가난과 질병으로 단련된 정신을 갖추었고, 알제리라는 이국적인 풍토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감수성을 얻었다. 또 그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데 초등학생 때 루이 제르맹을, 대학생 때 장 그르니에를 만난다. 루이 제르맹은 그가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장 그로니에 덕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교는 그에게 도피처이자 책과 더불어 지적 욕구를 마음껏 채우며 새로운 세계로 날아오르게 했다. 그는 자신에게 무상으로 제공된 태양과 바다에 탐닉한다. 가난은 그의 힘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바다와 태양은 돈 안 들이고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체험한 빈곤은 원한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함없는 마음, 끈기를 가르쳐주었다. 그는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나의 권리다.”라고 했다. 부조리 속에서 생을 긍정하는 감각적 사유를 한다. 티파사 해변에 카뮈를 기념하는 문학비에는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낌 없이 사랑할 권리다,”라는 《결혼 》속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고 한다.


티파사는 카뮈의 고향 알제리에서 가장 빛이 강렬한 곳이다. 티파사에서 카뮈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사라지는 느낌, 세계가 말을 걸어오는 감각을 체험한다. 이 에세이에서 결혼이란 자연과 존재가 하나 되는 순간으로 이해하면 된다. 태양과 바다, 바람 속에서 인간이 세계와 하나 되는 감각을 노래한다.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는 이 인상적인 구절은 자연이 너무도 강렬하고 충만해서 인간은 마치 신적 체험을 하는 듯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연이 인간의 감각과 정신을 흔들어 깨우고 그로 인해 인간이 세계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빛 때문에 들판이 캄캄해지는 역설은 세계의 아름다움이 인간을 압도할 때 생겨나는 어떤 순간일 것이다. 태양의 압도적인 빛, 매운 압생트 향기, 은빛으로 번쩍이는 바다, 야생의 푸른 하늘, 폐허와 꽃이 뒤덮인 풍경, 이 모든 것이 인간 감각을 초월적 경험으로 끌어올린다.

카뮈는 알제리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이방인이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가 살고 있던 고향 알제리에서도, 파리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그는 때로는 고립되고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1952년 사르트르와의 논쟁으로 큰 상처를 받았을 때 그가 상처에서 치유되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알제리 티파사에서였다. 1952년에 쓴 에세이 <티파사에 돌아오다>에 그러한 경험을 쓰고 있다.

“물기 있는 아침이 맑은 바다 위로 눈부시게 솟아올랐다. 물에 씻기고 또 씻기고, 거듭되는 세탁으로 인하여 가장 가늘고 가장 선명한 씨올이 다 드러난, 눈동자같이 신선한 하늘로부터 진동하는 빛이 쏟아져 내려서 집 하나하나에,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뚜렷한 윤곽을, 놀랄 듯한 어떤 새로움을 주고 있었다. 세계가 처음 생겨나던 아침에 대지는 필경 이런 빛 속에서 솟아났을 것이다. (중략) 바다 또한 싸늘하게 반짝이는 햇빛의 끊이지 않는 샤워에 숨이 막히는 듯 잠잠했다. 슈누아 산 쪽에서 들려오는 아득한 수탉 울음소리만이 대낮의 덧없는 영광을 찬양하고 있었다. 폐허 쪽으로는 눈길이 닿는 한 얽은 돌멩이들과 압생트 풀들, 나무들과 완벽한 돌기둥들 밖에는 수정같이 맑은 대기 속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한순간에 아침은 고정되어 버리고 태양은 멈추어버린 것 같았다. 그 빛과 침묵 속에서 여러 해 동안의 미칠 듯한 분노와 어둠이 천천히 녹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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