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이야기들
《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세상 모든 노래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어느 크리스마스캐럴인데,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를 감싸주는 것은, 처음 노래를 들으며 예감하게 된, 아직 경험해보지는 못한 괴로움을 달래주는, 오직 음악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위안이다. 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자리에 누워 잠을 자다가
이상하게 아름다운 꿈을 꾸었지
내 앞 탁자 위에
너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던.
하지만 이 노래에서 그토록 가슴에 와닿은 것은 선율의 마법만이 아니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오히려 가사 배치의 마법이었다. 꿈꾸는 사람이 꿈속에서 깨어 있는 상태로 트리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잠이 든 사람은 잠들어 있고 꿈이 그의 곁에 와서 서 있는 느낌. 마치 프리미티프 회화에서 성모마리아가 아픈 사람이나 잠든 사람의 침대 곁에 와서 서 있는 것처럼, 성모마리아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듯, "내 앞 탁자"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꿈과 깨어남 사이를 자꾸 넘어 다녔더니, 그만 문턱이 닳아서 반들반들해지고 말았다.
<어느 크리스마스캐럴>(전문)
(pp77-78)
2025년에 번역되어 나온 발터 벤야민의 《 고독의 이야기들》에는 짧은 문학작품 42 편과 그가 좋아했던 파울 클레의 그림이 각 작품 앞에 들어 있다. 난해한 그의 글을 몇 번이나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며 책을 넘기다 마음에 와닿는 짧은 글 한 편을 골랐다. 제1부 꿈과 몽상에 있는 <어느 크리스마스캐럴>이다.
화자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어느 크리스마스캐럴을 들을 때마다 위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아직 겪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겪게 될 괴로움을 달래주는 위안이다. 음악은 미래의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가진다. 그런데 그 노래에서 그토록 가슴에 와닿은 것은 선율의 마법만이 아니라 가사 배치의 마법이었다고 한다. 가사 배치의 마법이 의미하는 것은 나는 잠들어 있고, 꿈이 내 곁으로 다가와 서 있다. 화자는 잠든 채로 있고, 트리는 “내 앞 탁자” 앞에 조용히 서 있다. 성모마리아가 내 곁에 서 있는 것처럼. 성모마리아는 고통받거나 잠든 자 곁에 조용히 “현현”한다. 화자가 받는 위안은 곁에 있음으로 받는 위안이다.
이 글을 특별히 뽑은 이유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꿈과 깨어남 사이를 자꾸 넘어 다녔더니, 그만 문턱이 닳아서 반들반들해지고 말았다.”는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이 너무 좋아 이 글을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또 읽었다. 문턱이 닳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문턱은 꿈과 현실, 고통 이전과 이후, 깨어 있음과 잠듦, 이 모든 경계의 은유일 것이다. 문턱이 닳았다는 것은 이 경계를 무너뜨리거나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매끄럽게 만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경험은 삶은 더 안전해지지는 않지만 덜 날카로워지고, 음악이 주는 위안은 고통을 없애는 힘이 아니라 우리가 무방비한 순간에도 누군가 조용히 와 서 있을 수 있다는 감각을 회복시킨다. 즉 나를 평가하지 않고, 나를 밀어내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곁에 있음을 유지한다. 이 글의 주제는 위안이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세계가 나를 버리지 않았음을 느끼는 것이다. 벤야민은 가장 좋아하는 음악, 노래를 매개로 했다.
이 글을 읽으며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마음이 슬플때 좋아하는 성가곡을 들으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주님께서 함께 있다는 느낌. 결코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음악이 그런 위안을 준다.
이 글은 사건은 없지만 인식이 이동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야기는 경험을 나누는 것인데 현대인들은 바로 이 “경험을 나눌 줄 아는 능력을 잃었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경험이 정보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사라지는 자리에 정보가 채워지고, 경험이 단절된 자리에 고립된 개인만 남았다.”라는 것이 벤야민의 진단이다. 정보만 넘치고 이야기가 없는 현대 사회에서 벤야민은 이야기가 있는 글을 쓰고자 했다. 나 역시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수필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