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숫가에서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 숲에서

by 권민정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실뱅 테송


저녁 9시이고, 나는 창문 앞에 있다. 수줍은 달이 자기 영혼의 짝을 찾건만, 하늘은 텅 비어 있다. 매 초의 목덜미에 달려들어 그 즙을 흡수하려고 발버둥치던 내가 이제 관조를 배운다. 수도원의 평온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그 안에 가두는 것이다. 차 한 잔을 받쳐들고 창가에 앉아, 시간들이 우러나오도록 두면서 혹은 풍광이 펼쳐보이는 뉘앙스들을 발견해가면서,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다가는,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으면 수첩에 서둘러 적는다. 창문의 사용법? 아름다움은 들어오라고 청하고, 영감은 그대로 흘러나가게 할 것. 나는 반 고흐가 그린 가셰 씨와 같은 자세로, 한 손 위에 뺨을 기대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 채로 2시간을 보낸다. (pp41-42)



이 글의 저자인 실뱅 테송은 1972년 파리에서 출생한 여행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이다. 그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소로우처럼 숲 속 깊은 곳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는 바이칼 호숫가, 시베리아식 오두막에서 6개월 동안 지냈다. 밤에는 기온이 영하 30도로 떨어지고, 가장 가까운 마을이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인적 없는 곳에서 개 두 마리와 함께 겨울을 보내고 봄까지 지냈다. 그는 책과 보드카와 시가를 가지고 그곳으로 갔다. 그는 호수와 숲을 마주하고서 하루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장작을 패고, 저녁거리를 위해 물고기를 잡고, 많이 읽었고, 산에 올랐고, 창가에서 보드카를 마셨다.

오두막은 자연의 미묘한 떨림을 포착하기에 이상적인 관측 장소였다. 매일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 권의 노트에 적어나갔다. 그는 겨울과 봄, 행복과 절망,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체험했다. 그가 정신적 상처와 침묵과 고독의 심연에서 때로는 행복을, 때로는 절망을 온몸으로 안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고, 마침내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절절한 생의 치유의 기록이다.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는 그렇게 쓰인 책이다. 이 책은 2011년도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상 에세이 부문 수상작이다.

실뱅 테송의 글은 문학적이고 시적인 특성이 강하며, 철학적 사유가 깊게 녹아 있다. 자연을 묘사하는 데 있어 매우 섬세하고 세밀한 표현을 쓴다. 그리고 그의 글이 대체로 진지하고 철학적이지만 때로는 유머와 풍자를 사용하여 글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 아름다운 문장이 책 곳곳에 있다.

“창유리로 들어오는 햇살의 애무는 사랑하는 사람의 그것만큼이나 감미롭다. 세상을 피하려고 숲 속에 은둔한 사람이라도 적어도 해의 침입만큼은 용인할 수 있으리라. 하루를 잘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밖에 나가서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해에게, 그다음에는 호수에게, 또 나의 오두막 앞에 서서 저녁이면 달이 그의 각등을 걸어놓는 조그만 삼나무에게도.”


“하늘은 미쳤다. 맑은 공기에 깜짝 놀라고, 빛에 얼이 빠진 것일까? 강렬한 아름다움을 가진 이미지들이 튀어나오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떤 신의 출현이 이러할까? 나는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것은 이중의 모독이 되리라. 첫째는 정신을 딴 데 파는 것이고, 둘째는 이 순간을 모독하는 것이다.”


“숲 속에서 보는 짐승들의 모습에는 어딘가 기이한 데가 있다. 저녁 햇살 속의 하루살이들의 춤에 어떤 의미가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곰들의 생각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또 갑각류들이 물의 시원함을 찬양하고 있다면? 그들에게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줄 길이 없고, 우리 쪽에서도 그것을 알아낼 방법이 전혀 없을 뿐이다. 또 높은 가지들에 앉아서 새벽을 맞는 저 작은 새들의 감격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가? 그리고 왜 한낮의 밝은 빛 속에서 팔랑거리는 저 나비들이 자신의 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어린 새들은 둥지를 짓지만, 그 안에 들어갈 알들을 표상하지 못하며, 어린 거미들은 거미줄을 치지만 거기에 걸릴 먹잇감을 표상하지 못한다.……’(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하지만 쇼펜하우어 씨, 당신이 대체 얼마나 안다고? 이 분야에 대한 당신의 지식은 어디에서 얻은 것이며, 대체 어떤 새와 대화를 나누었길래 그렇게 단언할 수 있습니까?"


그가 숲으로 가지고 간 책은 모두 67권이었다. 호수를 향해서 열린 창문 하나로 삶은 충분하다고 말한 그는 왜 이곳에 파묻힐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책 목록에는 쇼펜하우어, 니체, 루소, 노자와 같은 동서양의 철학자의 책뿐 아니라 한시와 휘트먼의 시집, 고전부터 현대까지 문학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가지고 간 책을 다 읽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열심히 읽고, 글을 썼다.


4월 8일 자 일기는 다음과 같다.

”내 삶에서 남는 것은 내가 쓴 글뿐이다. 나는 망각과 싸우기 위해서, 기억에 하나의 보완물을 제공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만일 자신의 일들과 행위들을 꼼꼼히 기록해두지 않는다면,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고, 하루는 덧없이 스러지고, 허무가 승리한다. 일기는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특공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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