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수필)
아침 신문을 펼치다 한 문장에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미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인 존 F. 케네디 센터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기사였다. 트럼프·케네디 센터가 된 것이다. 활자가 틀렸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눈이 의심스러웠다. 이름은 그런 것이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서 사라지거나 바뀐다는 사실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이름은 건물의 일부라기보다 기억의 일부에 가깝다. 그 장소를 드나들던 사람들의 시간, 그곳에서 울렸을 음악과 박수, 수많은 저녁의 공기까지 함께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신문을 덮고도 한동안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놀라움도, 분노도 아니었다. ‘부끄러움’이었다. 왜 하필 그 말이 먼저 나왔는지 모른다. 오만하다거나 무례하다는 표현도 있었을 텐데, 내 안에서는 그보다 더 오래된 감각 하나가 먼저 반응했다. 판단이라기보다 반사에 가까운 감각,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어긋남이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감지되는 불편함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비슷한 장면마다 같은 감정을 느껴 왔다. 연말이 되면 문학상 발표 소식이 들려온다. 오래 공들인 문장과 사유가 평가받는 일은 자연스럽고, 독자인 나 역시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가끔은 글보다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고, 작품보다 얼굴과 발언이 더 선명하게 남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묘한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름이 남는 작가는 상을 목표로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언어를 끝까지 밀고 나갔고, 그 결과 이름이 따라왔을 것이다. 그 차이 앞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 역시 부끄러움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부끄러움은 독특한 윤리 감각이다. 그것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체면과도 다르고, 법을 어겼느냐의 문제와도 다르다. 어릴 적 우리는 잘잘못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건 부끄러운 일이야”라는 말을 먼저 들으며 자랐다. 그 말에는 이유가 길게 붙지 않았다. 설명보다 먼저 마음이 반응하도록 만드는 말이었다.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수오지심 역시 그런 감각에 가깝다. 외부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작동하는 내부의 기준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공을 드러내는 데 유독 인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이름은 영광이기 전에 책임이었다. 이름이 커질수록 감당해야 할 도덕적 무게도 함께 커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름은 스스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남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공적인 공간이나 제도에 개인의 이름이 붙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도 이해된다. 그것이 합법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저건 좀 부끄러운 일 아닌가.” 이 말에는 논리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 축적된 윤리가 깔려 있다. 공적인 것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판단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혹시 내가 다른 사회의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느끼는 거부감은 아닐까. 미국은 자기주장과 성과의 가시화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평가받지 못하고, 요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처럼 사용하는 행위는 하나의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질문을 통과하고 나서도 남는 불편함이 있다. 공적인 유산과 제도까지 개인의 이름으로 덮으려는 태도는, 문화의 차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판단을 현재가 앞당겨 확정하려는 태도다.
이 지점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 역시 인정받고 싶고 기억되고 싶다. 내 이름이 어디엔가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글이 아니고 이름이 먼저 불리기를 잠시 바라던 순간,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 적이 있었다. 부끄러웠다. 그 감정은 다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부끄러움은 시대에 뒤떨어진 감정일지도 모른다. 효율도 없고, 성과도 없으며, 때로는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를 떠올리면 어딘가 숨이 막힌다. 모두가 자신을 정당화하고, 누구도 물러서지 않으며, 아무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 그곳에서는 상과 명예와 이름은 끝없이 생산되지만, 정작 존경은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보며,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조용히 묻는다. 이 이름은 지금 여기에 있어도 되는가.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는 느리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이름보다 시간을 먼저 두는 법을, 판단을 오늘이 아니라 내일에 남겨 두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아직 완전히 놓지 않은 가장 조용한 품위일지도 모른다.
《인간과 문학》 2026년 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