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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니 Dec 13. 2023

1. 꿈 많던 나는 왜 하필 직업상담사가 되었을까?


의 꿈은 [세계적인 연구원] 이였다.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학교 2학년, 교양과목으로 들은 미래 설계라는 수업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늘 그저 평범한 삶을 추구하던 나에게 [꿈과 목표]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수업이었다. 미래를 그려보고 진로를 찾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내 삶의 방향이 이게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단순히 성적이 좋아서 들어온 학과였고, 성적이 좋다 보니 흥미도 당연히 생겼다. 재밌었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과탑을 해보고, 전공과목 1등을 해보고, 교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 아..이것은 정말 나의 길이다 ' 라고 아주 건방진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전공 특성 상 당연히 석사를 위해 대학원을 갈 계획 있었다.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학과 실험실 교수님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아주 당당하게 실험실로 입성했다. 그때는 모든 게 다 완벽했다. 석사를 졸업해 취업을 할 지, 박사를 할 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6개월 실험실 생활에서 얻은 건 이론과 실전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청년들이 적성에 맞지 않은 직무를 단지 전공과 비전만으로 꾸역꾸역 끼워 맞추는 것과 동일하다. 나는 다행히도 전공과 내가 맞지 않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다. 6개월 실험실 생활로 당연히 직무를 완벽히 분석할 순 없었지만 대략적인 느낌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정말 내가 전공을 살리고 싶었다면 실험실 생활도 재밌고 열정적으로 했을 나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R&D분야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르바이트와 학습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경제적 독립을 위해 시작한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는 4년이라는 긴 세월을 나와 함께 했다. 이때 나는 서비스 마인드가 뛰어나고,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이야기하고, 사람에게 무언가 해주는 것을 좋아했고 잘했다. 얼마나 잘 했으면 일했던 곳에 변호사 손님이 본인 변호사 사무실에 스카우트 제의를 했을 정도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의 성향과 나의 흥미를 조금 아주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는 서빙, 카페, 판매, 과외, 멘토링처럼 사람을 대하는 직무가 많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말 사람 만나는 직업이 싫었더라면 전공을 잘 살렸을 거라고 확신한다. 




진로 고민 단계에서 직업상담을 알게 된 계기는 대학교 인재개발원이었다. 미래설계 수업을 들으면서 학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발로 직접 찾아가 진로상담, 적성검사 등을 진행하면서 나를 좀 더 찾게 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상담을 해주셨던 취업지원관 선생님을 보고 ' 아 나도 이런 일을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취업과정에 대해 여쭤보니 심리학과 대학원을 나오는 게 좋다는 말을 듣고 빠르게 포기를 하려고 했으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전공과 무관하게 자격증 취득만 하면 취업이 가능하겠다.' 라는 아주 건방진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냥 단순하게 사람 만나는 일, 그걸 해보고 싶었다. 서비스직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어릴 때, 고민해봤던 진로 중에 사회복지사가 있었다. 하지만, 다시 대학을 들어가거나 학점 은행제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자격 조건이 없는 [직업상담사]가 적절하다고 판단해버린 것 이다.





방황의 시기에서 받은 MBTI 검사지_ ESTJ 




실험실 6개월 생활에서 내린 결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똑같은 일을 수 십 번 반복하고, 논문을 읽고 분석하고,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실험은 무한하게 하는 일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인재개발원에서 받은 적성검사 역시 전공을 가리키고 있지 않았다. 오죽하면 실험 도중 아르바이트를 하러 도망치고 싶었다.  단순히 적성의 문제보단 경제적인 문제도 컸다. 당장 취업을 해야 하는 나에게 대학원은 사치였고, 나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과연, 내가 그때 대학원을 갔었더라면 지금은 세계적인 연구원이 되었을지 나도 궁금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24년 삶의 경험과 애매모호한 검사지를 바탕으로 진로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었다. 

 얼마나 큰 고난과 역경이 일어날지는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실험실을 박차고 뛰어나와 나는 방황과 함께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준비하게 된다. 

정말 웃기게도 9년간 배웠던 공부를 버리고 달랑 6개월 만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해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덜컥 취업이 되어버렸다. [직업상담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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