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나본 지휘자 이야기 8

Eliahu Inbal -엘리아후 인발-

by 함정준

글에 들어가기 앞서 너무 오랜만이라고 쓰기도 민망할 정도로 브런치는 잊어버리다시피 했는데 도무지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견딜 상황이고, 글을 통해 스스로도 정리가 필요할듯하여 리허설 진행주간임에도 오랜만에 작성. 기다리던 독자는 물론 없겠지만 나 자신의 게으름에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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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현역 최고령 지휘자를 꼽자면 단연 1위는 헤르베르 블롬슈테트일 거고, 그 밑으로 최근 빈에서 공연한 주빈 메타, 작년 베를린에서 반송장 상태로 등장함 바렌보임 등이 있을 것이고 지금 소개할 90세의 노장 엘리아후 인발도 단연 노장 상위권(?) 랭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

라흐마니노프- 죽음의 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바바야르‘

악단: KBS 교향악단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존중을 불러일으켜 마땅한 나이지만 인발은 리허설 내내 지휘의자도 치워버리고 오전 3시간 내내 서서 지휘를 해낸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것인가 이미 경탄스러운데 여전히 놀라운 에너지, 음악의 본질을 간결하게 해치우는 리허설의 높은 퀄리티는 어안이 벙벙해지는 수준.


한국에서 둘 다 자주 연주 안 되는 낯선 곡이고 웬만해선 잘 움직여지지 않는 KBS 교향악단을 그야말로 떡 주무르듯 주무르고 계신다. 리허설 내내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는 “Please Flowing “

“don’t singing, shout!”

두 가지다. K향은 사운드의 질감은 굉장히 두터운데 순간순간의 표정이 소극적일 때가 가끔 있는 단체. 그 틈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악단의 용기를 앞장서서 이끌어내는 90세의 거장 앞에서 열심히 안 할 재간이 없다.


합창단도 마찬가지. 모르긴 몰라도 쇼 13이 초연될 당시 남자 합창단은 소련 군대 합창단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K-아빠들로 가득한 생활형 합창단이 울부짖거나 통곡의 소리를 낼 리가 전무한데 인발은 득달같이 리허설 내내 일어나서 본 공연처럼 노래해 달라고 주문한다. 90살 노인이 저렇게 서서 하는데 안 할 성악가가 있을까.


기술적인 측면에서 완벽하게 깔끔하게 합이 맞긴 힘들 것이다. 익숙지 않은 곡, 악단과 두 번째 만나는 지휘자, 단 3일의 리허설은 물리적으로 위대한 연주가 나오긴 불가능하다. 인발이 그걸 모를 리가. 하지만 집요하게 굴어야 할 부분은 명확한 지시와 단어로 끝까지 해내고야 만다.


옛날 스타일 지휘자가 일반적으로 그렇듯 비팅은 좀 안 맞는 듯 하지만 정교하게 계산된 프레이징을 폭이 큰 그림으로 확 하고 뽑아내는 솜씨가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휘봉을 잡는 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샤를 뒤투아와 매우 흡사한데, 지휘봉을 완전히 움켜쥐고 팔꿈치의 반동으로 동작을 최소화 하며 필요한 순간에 완전히 휘저어버리는 모습이 그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뒤투아는 색채와 뉘앙스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타입이고, 인발은 아주 이성적임과 동시에 순간의 감정을 미친 듯이 쏟아내는 스타일.

아직 본 공연은 안 했지만 100% 확신한다. 이 양반 절대 리허설대로 할리가 없다. 센스 있는 음악가들만 살아남아서 쫓아갈 것이고 못 견디면 합주에 문제가 생길 거다. 생각만 해도 벌써 너무 흥분된다. ㅎ 관객들은 이런 꿀잼도 모르고 악단과 합이 안 맞았다느니 어쩌고 저쩌고 하겠지..? 미안하지만 진짜 재미는 음악 안에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힌데

작곡가가 의도적으로 흩트려놓은 pulse를 더 기괴하게(=낭만적으로) 흩트리고 후려버린다. 그 찰나를 쫓아가는 상황이 미친 듯이 즐거워서 저 노인네가 다음 두 마디엔 어떤 바디랭귀지를 할지 너무 긴장되고 설레서 미치겠다.


일본에서 오래 활동한 노하우인지, 명확하게 지시는 해놓는다.

두 마디는 스테이블

두 마디는 dash

두 마디는 스테이블

두 마디는 루바토

이런 식으로 정말 쪼개고 쪼개서 프레이즈를 다 만들어놓고

저 틀 안에서 제멋대로 지휘를 해버리는데 단 한 번도 어색하거나 난센스인 경우가 없다. 그저 돌아오는 토요일 연주에서 잘 되길 바랄 뿐..! ㅎㅎ


현재의 건강상태로 보면 110살까지 지휘도 가능하실 것 같다. 일본 음식 낫토를 매우 즐겨서 한국에서도 청국장만 드신단다. 나도 오늘 청국장을 먹어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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