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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나본 지휘자 이야기 5

부정확함을 스스로 선택한 이들 1-정명훈, 오스모 벤스케-

by 함정준

일전의 글에서 정확한 비팅의 슬래트킨을 이야기했으니 그 대척점에 있는 지휘자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실 이야깃거리는 이쪽이 더 많다. ㅎ


처음 부정확한 비팅에 대해 완전히 말로써 이해시켜 준 지휘자는 코로나 시절 서울시향의 상임을 맡았던 핀란드 출신의 (앞으로 자주 나올 예정인 나라다) 오스모 벤스케이다.


한 번은 그가 상하이 교향악단과 닐슨 교향곡 4번인가를 연주하러 왔을 때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한 공개강의가 있었을 때 나도 참관하러 들어갔는데 그때 참으로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클라리네티스트로써 젊은 시절부터 재직했던 그 역시 처음에는 칼 같고 간결한 비팅의 지휘자를 선호했다고 한다. 본인도 그렇게 지휘를 하고 있었고,,

그러던 어느 날 이탈리아 출신의 한 지휘자가 그의 악단을 방문했고 비팅이 없다고 보일 정도로 잘 안 맞는 한심한 첫 리허설을 하더라는 것. 하지만 그게 그의 인생을 바꾼 변곡점이 되었는데, 나중에 결과물을 놓고 보니 그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정확한 비팅을 제공하는 service를 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프레이즈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메트로놈 같은 비팅은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던 것“

이었다고 한다. 벤스케는 그날 이후로 본인의 음악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며 실제로도 안 맞는(?) 비팅과 제스처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계셨다. ㅎㅎ


저 에피소드를 조금 깊게 생각해 보면 이름도 기억 못 하는 그 이탈리아 지휘자는 본국의 오페라극장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을 테고 악명 높은 수많은 방해요소들 (테너, 소프라노, 바리톤, 베이스, 합창, 오케스트라, 연출, 관객, 극장 앞 구걸하는 거지부터 동네 레스토랑 요리사까지 즉 지휘자를 뺀 모든 인간들 ㅎㅎ) 속에서 제대로 된 음악을 했어야만 할 것이고 멜로디에 대부분을 의존해 가는 오페라의 특성상 구조적 탄탄함 보다는 프레이징을 살리는데 집중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 출신 혹은 오페라의 명장들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해석방법인데 그 또한 그랬던 것.


아! 그러고 보니 벤스케 이전에 만났던 지휘자 중 대표적인 부정확한 비팅의 거장 정명훈 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다.


교향악 작품들도 너무 좋은 지휘를 하시지만 오페라를 함께 하면 선생님의 진가가 드러난다. 내가 함께 했던 작품은 베르디의 명작이자 정명훈 지휘자의 필살기 중 하나인 ‘시몬 보카네그라’


리허설을 어떻게 하는지는 언급의 대상이 아니다. 본 공연에서 굉장히 자주 성악가>>지휘자의 비팅 >>오케스트라 사이의 갭이 한마디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그걸 마치 테이프 빨리 감듯, 때로는 태권도의 절도 있는 모션 같은 동작으로 성악의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딱 들어맞는 모멘트를 만들어내면 연주하면서도 온몸의 소름이 돋는 경지. 당시 배우는 플라시도 도밍고였기 때문에 평생 이 작품으로 fame을 얻은 터라 정명훈 지휘자 역시 온 힘을 다해 그의 음악을 받쳐주었으리라.


라벨의 다프니스 모음곡이나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에서도

프레이즈(선율)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해석으로 목관악기들의 귀한 멜로디를 더욱 귀하게 만들어내시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해석조차 잘 안될 부정확한 비팅을 제공한다.


만약에 아주 정박에 정확한 다운비트만 주었다면? 가수와 독주자들은 비팅 쫓아가느라 자유를 잃을 것이고 스스로 음악을 한다는 기쁨이 줄어들었을 것은 명확하다. 연주자가 루바토를 하기 전에 미리 템포를 당겨놓고 그 당겨진 만큼의 공간(space)이 마련되면 독주자들은 충분히 노래할 수 있게 된다.


훌륭한 지휘자들은 그것을 정확히 꿰뚫고 음악의 모든 구조를 이해한 후에 저것을 해낸다. 흔히 말하는 위대한 명지휘자들은 대부분 저러하다. 그 옛날 푸르트뱅글러부터 지금의 넬손스까지.


글 하나에 호넥 사라스테 에셴바흐 등을 모두 써 내려가기엔 좀 길어지는 것 같아서 이번에도 나눠서 올리는 걸로..

(2편에 계속)


*정명훈 샘과 찍은 사진이 안 보여서 급한 대로 정샘 누님으로 대체 ㅎㅎ 둘 다 젊다 젊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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