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직접 만나본 지휘자 이야기 6

부정확함을 스스로 선택한 이들 2 -호넥, 슈텐츠, 사라스테-

by 함정준

정확하게 비팅을 주는 지휘는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악단이 훈련되기도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는 악단에게는 그게 오히려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는 악단과 지휘자는 서로의 속궁합(?)이 맞는 파트너를 찾기 위해 다양한 조합의 연주를 여는데 이게 참 재밌는 건 어느 악단에서는 기깔나게 잘 맞다가도 다른 단체에선 아예 작동조차 안 되는 경우가 꽤 있어서 속궁합이라는 말이 과장된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극상의 추상적인 지휘 혹은 궁합이 안 맞은 덕분에 망한 케이스를 조금 끄적여보고자 한다.



유카 페카 사라스테 jukka-pekka saraste

핀란드 출신의 수염이 멋진 지휘자 사라스테는 독일 WDR 방송교향악단을 꽤 성공적으로 이끌며 개인적으로 그 악단의 황금기라고 생각하는 비취코프 시대를 이어받으며 괜찮은 작업물들을 만들어내 왔다. 비취코프가 워낙 최고의 지휘자라 누가 와도 비교는 되었겠지만 당시 악단의 기량이 워낙 좋아서 사라스테의 추상적인 지휘가 나름 신선했으리라.


그러나 그런 종류의 지휘자가 익숙지 않은 악단에 객원연주를 왔을 때의 결과는 늘 양극단인 법…


나와의 첫 만남은 말러의 뤼케르트 가곡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아리아인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에는 잉글리쉬 호른의 길고 아름다운 독주가 있어서 큰 기대를 하고 들어갔는데..ㅎㅎ 사라스테의 지휘를 내가 글로 옮겨 적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선 첫 다운 비트 이후 두 번째 마디 두 번째 비트까지 아예 지휘자체를 하질 않는다. 이 곡이 끝날 때까지. 정박도 없고 첫박도 없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면 가곡의 텍스트나 화성적으로 방향성 제시가 필요할 때만 비팅을 한 것 같은데 이런 류의 지휘 중에서도 이 정도까진 나도 처음 만나봐서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심지어 그날 리허설 직전에 악기가 고장 나서 (악기 꺼내다가 케이스에 쿵) 급하게 악단 악기를 꺼내서 쓰는 상황이라 땀을 한 바가지 흘렸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잉글리시 호른의 경우는 멜로디 solo 악기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120%의 자율성을 보장받았지만 오케스트라 다른 연주자들은 혼돈의 도가니.ㅎㅎ 그럼에도 사라스테는 조금도 악단을 통제하거나 정리할 모습은 없었다. 오직 본인 머릿속의 템포와 무드만을 밀고 나가는 모습. 나의 솔로 연주는 매우 성공적이긴 했는데 공연 전체가 그랬나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니올시다였다는 것.

(그래.. 사라스테의 저 풀린 신발끈이 내 마음을 표현해 주는 듯하다..)

워낙 안 맞으니 음악적 해석이 뛰어난지도 모르겠다. 다른 악단에서는 평이 좋던데 나는 그 맛을 못 본 셈.


마르쿠스 슈텐츠 Markus stenz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엿던 독일계 지휘자. 앗 그러고 보니 사라스테와 같은 쾰른 상주 오케스트라 상임이었네.


이 분은 독일스타일 프리한 지휘자의 아주 잘못된 예였다.

(모든 평가는 나의 주관이므로 반박이나 비판이 있을 수 있다 ㅎㅎ)


선곡은 바르톡 바이올린 협주곡과 베토벤 교향곡 7번.


독일 유학시절 나의 첫 반지 전곡을 슈텐츠와 귀르체니히의 연주로 듣기도 했고 슈텐츠 지휘의 대지의 노래(발트라우트 마이어의 마지막 전성기)도 너무 감동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기대가 매우 컸는데 문제는 지휘자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


두 곡 모두 부정확함과 magic이 필요한 곡은 아니었고 상하이 심포니오케스트라에게 상당히 익숙한 곡이었는데 지휘자의 리허설 방법이 어색한 바순 수석이 약간의 컴플레인을 했고 지휘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어색함과 긴장감이 가득한 상황에서 리허설이 진행되었고 오케스트라는 결국 슈텐츠의 말을 따르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게 되었다. (즉 한판 붙었단 의미이다)


내가 오케스트라 단원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이건 지휘자의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설득과 회유로 충분히 해결이 될 상황이었는데..


바르톡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2악장에서 꽤 복잡한 3박자 계열의 순간이 있는데 감정선만 쫒는 부정확한 지휘+ 방황하는 협연자의 환장의 콜라보로 인해서 매우 고생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정확한 비팅을 안 주고 연주자에게 자유를 제공하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본인의 의도대로 진행이 안되자 결국 권위로 눌러버린 안타까운 케이스.


그럼에도 사진은 한 장 남겨있네..ㅎ 난 완전 중국인 200%의 외모군…


만프레드 호넥 manfred Honeck


호넥은 좋은 지휘자다. magic도 좋고 비엔나 태생답게 탄력 있는 리듬 사용도 좋고, ryhtmisch & organisch에 대한이해력도 좋고, 드보르작 같은 체코 계열 음악은 현존 탑클래스로 인정도 하며, 함께 연주했던 챠이코프스키 5번도 내가 연주해 본 동곡 중 최고의 연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하위버전 같은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드는 점(아마도 완벽주의가 강박에 가깝던 클라이버의 기질까진 못 쫓아가나 보다)과 조금 더 극한까지 밀어붙여줬으면 하는 묘한 변태 같은(?) 아쉬움이 남는 지휘자라는 생각도 든다.


음악을 생기 있게 만드는 데 있어서 특히 탁월하고 우아한 제스처도 꽤 좋지만 ”그 다음은? “

조금 더 hässlich(추하게)

조금 더 leidvoll (슬픔과 고통)

조금 더 schmerzlich (비통하게)


감정선으로 이끌어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늘 드는 지휘자였다. 충분히 해줄수 있을것 같은데…아마도 객원 지휘를 온 거라 그 지경까지 도착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상하이 심포니와는 거기까지 만들긴 힘들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가 왜 비엔나 필하모닉에 더 이상 초대받지 못하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고.


마지막 인사로 “다음엔 꼭 드보르작 9번을 함께 하자!” 고 인사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는 한국으로…^^;;


삶의 물결이 어떻게 굽이칠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