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양
2025년 1월 8일, 세 번째 항암 치료가 끝난 후 난소암 수술을 하기로 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항암을 세 번 한 후 수술을 하고, 수술 후에 다시 세 번의 항암을 진행할 것이다"라고 설명했지만, 정확한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폐암 진단을 받고 흉부외과 진료를 받으면서 난소암 수술을 먼저 진행한 후 폐 수술을 할 예정이며, 수술 날짜는 1월 22일로 잡혔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폐 수술을 2월 24일로 계획하고, 입원실 예약까지 마쳤다.
하지만 3차 항암 치료를 위한 진료를 받던 날, "그럼 수술은 언제인가요?"라고 묻자 그제야 수술 날짜를 정하는 듯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지금까지 들었던 내용을 다시 말씀드렸다. "흉부외과에서 난소암 수술이 1월 22일쯤이라고 했고, 그래서 폐 수술을 2월 24일로 계획했어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아? 그런가요?" 하시더니 1월 23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니면 항암을 한 번 더 한 후 2월 4일에 수술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다. 고민해보라는 말에 우리는 진료실을 나왔다.
그때부터 정신없이 바빠졌다. 보통 진료실을 나서면 바로 항암 상담실로 이동했다. 원내 약국에서 약을 받고, 항암 대기 중에 약을 먹은 후, 베드가 배정되면 항암 주사를 맞는다. 4시간 반 동안 항암 치료를 받고 나면 저녁 7시 반쯤이었는데, 이번에는 수술 상담까지 끼어들었다.
수술 상담실에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개복 수술로 진행되며 약 7~8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고, 가능하다면 온열 항암까지 진행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추가 비용이 발생하며, 입원 기간은 3박 4일정도라고 했다. 암수술을 하는데 입원이 3박 4일이라니.. 놀라웠지만 현재 의료계 시국과 대학병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당장 날짜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엄마와 나 단둘이 앉아 고민했다. 수술 규모가 크니 항암 후 충분히 회복하고 진행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내 의견을 물어보시기에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했는데, 상담 선생님께서 빠른 결정을 재촉하셔서 아빠에게 전화할 여유도 없이 1월 23일로 결정했다.
수술 날짜가 정해지니 더 할 것들이 많았다. 수술 전 검사를 해야했던 것. 항암 이후 화요일에는 흉부외과 진료, 수요일에는 흉부 CT 촬영, 그다음 주 수요일에는 PET CT 촬영을 진행한 후 입원하는 일정이었다.
항암 후 평소처럼 지내다가도 수술 날짜가 다가오자 걱정이 커졌다. 수술이 2~3일 앞으로 다가오자 밤마다 눈물이 났고, 특히 엄마가 입원한 22일에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계속 울고 있는데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가 아프신데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라며 울기 시작했고, 나도 같이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한참을 울다가 진정되자 남동생에게 "지금부터라도 잘해라"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우리는 엄마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잘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그런데 그때 병원에 계신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주 한잔을 하고 들어가겠다고 하셨다.
"네? 병원에 엄마 혼자 두신다는 거예요??"
엄마가 계속 우셔서 그게 싫어서 잠시 나왔다고 하셨다. 아빠도 속상해서 그러시는 거겠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생을 무뚝뚝하게 지내셨다면, 아픈 지금이라도 다정하게 옆에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싫다고 나가버리시다니... 한숨이 나왔다.
다음 날 아침 8시에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고, 병원의 첫 수술 순서였다. 첫 수술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다행인 건 엄마의 주치의 선생님이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시고 운동을 매우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는 점이었다. 자기 전 엄마와 통화하며 "내일 아침에 수술 들어가기 전에 전화할게요. 걱정하지 말고 푹 주무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내 기분이 우울할 걸 알았던 남편은 아이들 케어를 전부 맡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일찍 깨지 못할까 봐 소파에서 쪽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