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제로 1
그 아이들과는 오래전부터 함께였다. 딸과 친구들은 어린이집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지금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가까이 있다. 친구가 아닌 가족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우리는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어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무심히 꺼낸 이야기 하나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엄마, 고2 때 담임 선생님 기억나지? 최근에 알았는데, 그 선생님이 내 친구의 사촌친척이였대."
말 끝에 살짝 머뭇거리는 딸의 표정을 보며, 나는 그 뒤에 따라올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생각해보면, 나한테만 유독 엄격했고 왠지 모르게 나랑 안 맞았던 느낌이 있었거든. 그런데 그 선생님이 친구 친척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니까, 그 시절이 다시 불편하게 느껴지는 거야."
나는 순간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었고,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친구 가족이었다. 우리 가족과도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온 사이. 그 모든 시간들 위로 불쑥 솟은 이 질문 앞에서, 나도 멈춰버렸다.
딸은 지금, 단순히 그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친밀함’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속에서, 자신은 어쩌면 외부자였을지도 모른다는 낯선 감정을 마주한 것이다. 그것이 주는 당혹감과 서운함은, 단순한 질투나 민감함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다.
그때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혹시 우리도 무언가 놓친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었다. 혹시 나도, 알게 모르게 어떤 편향 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친구 가족과 오랜 친분 속에서, 우리 딸이 어떤 사소한 차이를 겪었음에도 스스로 삼키고 넘겼던 건 아닐까. 나는 그 마음을 얼마나 들여다보려 했던가.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단순한 해명이나 방어가 아니다. 딸이 느끼는 그 미묘하고도 아픈 감정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그럴 수 있는 감정’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우리는 종종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다 이해되고 용서될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진짜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예민하게 감정을 조율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친구여도, 가족처럼 지냈어도, 불편함은 존재할 수 있고 그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딸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 느낀 감정은 틀린 게 아니라고. 관계란 애초에 완전하지 않고, 늘 어느 한쪽이 조금 더 외로웠을 수도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걸 느꼈다는 건, 너의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우리는 이제서야 알게 된 것들을 통해, 다시 관계를 바라보게 된다. 예전처럼 무조건적이진 않겠지만, 조금 더 단단하고 진심 어린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또한 관계의 성장이 아닐까.
서운함을 말하는 용기, 그 감정을 존중해주는 용기. 오늘 우리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다시 관계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