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하는 하루 시즌0
뉴스를 보다가, 평양에서 열린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미사일이 규칙적으로 이동하고, 수천 명의 병사들이 완벽한 동선으로 행진한다. 카메라는 그 장면을 웅장하게 비추며 국가의 힘을 상징하는 듯한 음악을 덧입힌다. 그러나 나는 그 화면을 보며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화면 속 사람들은 모두 일정한 표정으로, 정해진 각도로, 정해진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도, 자부심도, 분노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명령’과 ‘질서’만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과시란 무엇일까?
무언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결핍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일은 아닐까?
진짜 강한 존재는 굳이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다.
그런데 왜 국가는, 조직은, 그리고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걸까?
우리가 ‘힘’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그 안에는 보호의 이미지와 지배의 이미지가 동시에 들어 있다.
국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갖춘다고 말하지만, 그 무력은 언제든 국민을 통제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힘은 언제나 양날의 칼이다.
보호를 위한 칼날은 곧 통제를 위한 칼날로 변할 수 있고,
그 경계는 늘 희미하다.
나는 이 퍼레이드를 보며 ‘보여주는 힘’과 ‘진짜 힘’을 구분해보고 싶었다.
보여주는 힘은 타인을 향한다. 그것은 외부의 시선을 통해 완성된다.
그들은 “우리를 보라”고 외친다.
그러나 진짜 힘은 보여질 필요가 없다.
그것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내면에 자리한다.
보여주는 힘이 외향적이라면, 진짜 힘은 내면적이다.
보여주는 힘이 위압을 만든다면, 진짜 힘은 신뢰를 만든다.
권력의 과시는 늘 모순된 감정을 남긴다.
한편으로는 경외를 불러일으키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안을 증폭시킨다.
보여주는 이가 말하는 “안전”은 종종 지켜보는 자에게 “위협”으로 읽힌다.
힘을 전시하는 순간, 우리는 묻게 된다.
그 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민을 위한가, 지도자를 위한가, 아니면 스스로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연출인가?
이 질문은 비단 군사 퍼레이드의 장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업이 자신의 매출을 과시할 때, 개인이 자신의 삶을 SNS에서 화려하게 드러낼 때,
그 안에도 비슷한 구조가 있다.
보여주는 힘의 본질은 인정 욕망이다.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과시를 낳는다.
그리고 그 과시는 종종 진정성을 삼켜버린다.
나는 문득 거울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그 시선이 없으면 불안하고, 누군가의 인정을 통해 존재를 확인받는다.
국가의 군사 퍼레이드도, 개인의 SNS도,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존재하고 있는가?”
“나는 안전한가?”
권력의 과시는 결국 ‘존재의 불안’에 대한 언어다.
국가가 힘을 전시하는 이유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불안을 달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불안할수록 자신을 과장한다.
약할수록 강한 척한다.
이것이 인간의 오래된 심리다.
하지만 진짜 강함은 보여지는 데서 오지 않는다.
진짜 강함은 ‘두려움을 직면할 용기’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완전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는 힘,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힘,
그것이야말로 진짜 권력이다.
지금 세계는 서로 다른 종류의 힘이 경쟁하는 시대다.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 영향력.
모두가 자신이 세상의 중심임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 경쟁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두가 더 많은 무기를 가지려 하고, 더 큰 시장을 차지하려 하고, 더 많은 데이터를 독점하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다.
왜일까?
아마도 우리는 ‘보여주는 힘’의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진짜 강한 사회는 더 이상 과시하지 않는다.
진짜 강한 개인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보여주는 대신, 만들어간다.
외치는 대신, 듣는다.
그 침묵 속에서 신뢰는 자란다.
오늘의 뉴스를 통해 나는 다시금 묻게 된다.
권력의 과시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가?
그것은 경외인가, 경고인가, 아니면 아직 불안한 존재가 내뱉는 자기위안인가?
힘은 언제부터 안전의 다른 이름이 되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힘의 증명이 아니라, 존중의 언어가 아닐까...
지문 : 질문이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