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하루 시즌0 : 20편
최근 조사에서 한국인의 80%가 ‘사회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세대, 성별, 지역, 정치, 이념, 직업군을 가리지 않고 갈등이 일상에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대화보다 논쟁을 택하고, 이해보다 분류를 먼저 한다.
의견이 다르면 불편이 되고, 불편은 곧 적대가 된다.
이제 한국 사회는 ‘다름’을 ‘위험’으로 인식한다.
갈등은 사회의 건강한 긴장이 아니라, 정체된 불신의 구조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견제해야 할 대상으로 상상하고 있다.
갈등의 뿌리는 단순하지 않다.
경제적 불평등은 세대 간의 분열을 만들고,
정치적 언어는 감정의 대결로 번진다.
SNS는 생각을 공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증오를 증폭하는 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틀렸다’는 낙인을 찍고, ‘내 편’의 논리를 강화한다.
대화의 기술이 사라지고, 단정의 언어만 남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이기려는 논리만 익혔을까.
갈등은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시키는 새로운 일상 구조가 되었다.
그러나 갈등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갈등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다.
건강한 사회는 다름을 견딜 줄 아는 사회다.
갈등을 없애려는 사회는 결국 다양성을 억압하고,
갈등을 이용하려는 사회는 결국 인간을 소모한다.
우리는 지금 둘 다의 함정에 빠져 있다.
이 시대의 가장 절실한 능력은 ‘이해받는 기술’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기술’이다.
적을 설득하기보다, 상대의 이유를 묻는 기술 말이다.
대화의 온도는 사회의 품격이다.
지문의 질문 : 우리는 언제부터 상대를 설득하는 대신, 부정하는 데 익숙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