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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un 09. 2024

내 연구를 시작하다

미국 대학원 석사 과정은 논문을 쓰는 석사와 논문을 쓰지 않는 석사 이렇게 크게 두 개로 나뉘어 있다. 한국에서는 석사과정도 작은 논문이라도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의 경우 석사학생은 논문 없이 수업만 듣고 졸업하는 석사 학생들이 많다. 웃긴 건 나는 논문 없는 석사로 학교를 입학했는데 박사로 진학하기 위해 논문을 쓰는 석사로 바꾸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고 반대로 논문을 쓰는 석사로 합격한 학생들은 논문 없이 졸업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바꾸려는 경우가 많았다.


논문을 쓰기 석사로 바꾸기 위해서는 일단 내 논문을 지도해 줄 교수를 찾아야 했다. 교수들에게 어떤 학생을 받아 어떤 논문을 쓰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교수에게 학생은 제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함께 논문을 쓰는 일에서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때문에 아무 학생이나 그냥 받아 논문 지도를 해주지 않는다. 이왕이면 논문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나 경력이 있는 학생을 받고 싶어 한다. 심지어 학생을 받아서 함께 논문을 쓰다가 중간에 학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보내는 경우도 흔하다.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논문을 써본 적도 그렇다고 논문을 쓰는데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박사 지도교수야 나중에 다시 찾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석사 기간 동안 지도교수가 되어줄 사람을 찾아다녔다. 이메일을 보내는 것으로는 답이 오지 않자 결국 전력전자를 연구하는 한 교수를 예고도 없이 방문했는데 그때 교수에게 논문 두 개를 받았다. 이걸 읽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읽어보았다.


여기서 어린 시절부터 혼자 수학 문제집을 풀면서 만들어낸 깊이 생각하며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 발휘되었다. 마치 어린 시절에 수학문제를 풀다가 나만의 풀이 방법을 개발해 냈듯이 두 개의 논문을 읽고 이 논문의 한계점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 논문을 더 발전시킬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타고난 천재라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깊게 고민하면서 풀어내는 나의 습관이 논문을 읽고 그 한계점을 찾아내는데 도움을 준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교수를 찾아가 내가 읽은 논문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나의 이론을 이야기했고 그 자리에서 그 교수의 학생이 되어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전력전자 안에서도 태양광 전력 변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평범한 전력전자회로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한 전력전자회로에 대한 제어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전력전자라는 분야 자체가 넓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지 않는 연구주제였다.


그렇게 나의 연구 주제는 정해졌다. 물론 이때만 해도 이 주제가 나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클지 조금의 예측조차 못하고 있었다. 또한 이 주제로 이 지도교수와 함께 박사과정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연구주제라는 것이 나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연구주제가 얼떨결에 후다닥 정해진 것은 어떤 면에서는 좋았고 어떤 면에서는 그리 좋지 못하기도 했다. 좋았던 점은 빠르게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도교수를 구하지 못해서 혹은 괜찮은 연구주제를 찾지 못해 마음고생을 하는 수많은 대학원생들에 비하면 나는 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안 좋은 점은 연구주제의 중요성을 전혀 모른 체 내가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렇고 정말이지 어쩌다 보니 연구주제가 정해진 것이었다. 보다 신중하게 내가 하고 싶은 연구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을 나는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제 지도교수와 연구주제까지 정한 완전한 대학원생이 되었다. 지도교수 수업에서 수업 조교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도 상당 부분 해결이 되게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많은 관문들이 남아있었다. 이제는 미국 대학원에서 단순히 자리 잡기가 목표가 아니라 무사히 졸업을 하는 것과 더불어 졸업 후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고민되기 시작했다. 막연한 목표는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교수는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 중에도 아주 운이 좋은 소수만이 할 수 있는 거이었다. 더군다나 대학원생이 되고 나니 교수라는 직업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좋은 직업일까? 하는 의문도 생기기 시작했다. 


많은 친구들이 미국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그 대열에 끼어들어가 미국 기업에서 인턴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이때만 하더라도 인턴경험이 나의 인생을 또 다른 측면에서 바꿔 놓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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