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여행- 황칠아~

by 옥흐



아버지의 서랍 맨 아래 칸에는 스케치북 몇 권이 보인다. “2007년도 산청가족여행 계획서” 분홍색 표지를 넘겨보니 여행일정표, 준비물, 예산, 영수증이 붙여져 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지리산 오지마을 시원한 물줄기를 찾아 민박집을 구했다. 얼른 짐을 방에 몰아넣고 계곡으로 향했다. 공기를 한껏 심장 깊숙이 넣어보기도 하고 다시 뿜어도 보았다. 역시 지리산이었다. 오솔길에는 노란색 애기똥풀 꽃이 지천이었다. 산길을 돌때마다 큰 바위아래 자리를 잡은 벌통들도 보였다.


저기 어디선가 노란색 풀꽃이 심하게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이 아니었다. 그건 동네 벌통을 지키고 있는 누렁이였다. 처음부터 짖기를 포기했는지 아님 태생적으로 짖지 못하는 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우리를 보더니 연신 노랑꼬리만 흔들어댔다.


하루 4번 이상을 지나가는 길이라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누렁이니까 누룰 ‘황’에 땡칠이의 ‘칠’자를 합쳐 황칠이 어떻노?”

그 날부터 그 애는 우리에게 황칠이가 되었다.


8월초 한참 여름인데도 그 곳의 물속은 얼얼했다. 계곡에서 신나게 놀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허기진 배를 채우러 다시 숙소로 갔다. 그러니까 계곡으로 출퇴근을 한 셈이었다. 근처에는 식당이 없었기에 꼼짝없이 4~5일 동안 직접 밥을 해먹어야했다. 여행 전 사다리타기 게임으로 정한 식사당번에 따라 맛있는 밥이 준비되고 있었다.


문제의 셋째 날 점심이 되었다. 아버지는 카레덮밥을 준비하기로 정하고 나름대로 공부를 해오기도 한듯했다. 감자를 먼저 꺼내고 당근도 만지작거리더니 어느 순간 아버지가 사라졌다. 싱크대에는 고기랑 감자, 양파, 당근 채소들이 널 부러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겠는가? 뚝딱뚝딱 카레덮밥을 만들어놓고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넓은 지리산 자락이었지만 아버지가 갈 곳은 딱 한군데 밖에 없었다. 멀리서도 아버지의 등이 보였다.

“황칠아~ 카레 만들 줄 아나? 감자는 어떻게 썰어야하고 당근은 어떻게 볶아야 하노? 어서 말해봐.”

아버지는 시골 누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뒷모습만 보면 딱 개 주인이었다.


지리산 오지에서 사라진 아버지는 황칠이랑 어떤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까? 스케치북을 넘기다 웃음이 피식 나온다. 아버지는 지금도 나를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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