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마디
손 씨는 진영이 추천해 준 책을 펼쳐 들었다.
1597년 조선에서 일어난 일을 담아낸 것이었다.
“유언, 있습니까?”
손 씨의 목소리는 메마르기 짝이 없었다.
그의 물음에 야구 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연거푸 문장을 씹어대며 대답했다.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떤 얘기를 듣고 오신 줄은 모, 모르겠지만, 일단 지…, 진정부터 하시고 손에 있는, 그…… 카, 카, 칼부터 좀 어떻게…….”
“유언, 있습니까?”
손 씨는 같은 높낮이의 음성으로 재차 물었다.
건조하고 사무적인 태도를 떠나 그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공동(空洞) 그 자체였다.
반면, 야구 모자를 쓴 남자의 모습은 미디어에서 그려내던 도망자의 전형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악취로 연성된 생명체처럼 말을 할 때마다 풍기는 지독한 입 냄새를 필두로, 제때 땀과 기름을 씻어내지 못한 사람 특유의 쩐 내가 진동했다.
손 씨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방 안을 둘러봤다.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 듯했다.
정돈되지 않은 이불과 재떨이가 된 술병, 켜켜이 쌓인 컵라면 용기, 정체불명의 성인영화를 뿜어내고 있는 TV까지.
오래된 골목 어딘가에 있는 흔하디 흔한 낡은 여관방 모습 그대로였다.
이윽고 손 씨는 눈앞의 남자가 애지중지 끌어안고 있던 검정 비닐봉투를 빼앗아 내용물을 마룻바닥에 부려놓았다.
번개탄과 소주병, 그리고 수면제.
도망자의 최후를 책임질 최상의 조합.
손 씨가 전략을 바꿨다.
“상당히 고통스러울 겁니다.”
남자는 손 씨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남자는 치부를 들킨 사람이 그러하듯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곤 입을 다물었다.
“흔히들 하는 착각이죠." 손 씨는 내용물들을 다시 비닐봉투에 담아 남자에게 건넸다. “편안히 잠을 자듯 죽을 수 있을 거라는.”
남자는 파르르 떨고 있는 손으로 비닐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곤 TV 뒤편에 걸려있는 옷걸이까지 힘겹게 걸어갔다.
도망갈 힘을 다 써버린 도망자는 잘 걷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텅 빈 옷걸이에 빈약한 내용물을 담고 있는 비닐봉투 하나가 내걸렸다.
손 씨가 이어 말했다.
“번개탄이 내뿜는 유독가스가 온몸으로 순식간에 퍼지겠죠. 알코올과 수면제로 깊게 잠든 몸이 서서히 경직되고 기능을 잃어갈 겁니다. 잠시 후,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때아닌 고통에 정신을 차리게 될 테고,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다 뜬눈으로 죽게 될 겁니다.”
“……저, 선생님.” 남자는 최대한 공손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제가 앞으로 죽은 듯이 살겠습니다. 어디 산에라도 들어가서 혼자 조용히 살 테니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죽은 듯이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겁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그런 애매모호한 건 없습니다. 전 의뢰를 받았고, 그 의뢰의 내용은 당신이 죽는 것. 그뿐입니다. 죽은 듯이 사는 게 아니라.”
손 씨의 말투는 필요 이상으로 건조했다. 냉철하다는 표현보다 무정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것이다.
도망자는 ‘의뢰’라는 말에 눈을 번뜩였다.
“누, 누가요? 누가 의뢰한 겁니까? 제, 제가! 제가 다시 설득을……, 아니! 제가 선생님께 다시 의뢰를 하겠습니다. 절 살려주세요! 그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비용은 제가 어떻게든 마련하겠습니다. 제가 지금은 이렇게 도망자 신세지만, 언제든 재기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의뢰는 반드시 중개인을 통해 정식 절차를 거치고 난 뒤에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손 씨의 대답에서 긍정의 의미를 감지해 낸 걸까.
일순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네! 정식 절차가 어떻게 되는데요? 제가 당장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현재 수행 중인 의뢰가 끝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이대로 입 닥치고 죽으라는 소리야?” 조롱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성난 목소리였다.
손 씨는 아랑곳 않고 원점으로 돌아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유언, 없습니까?”
“넌 내가 꼭 죽여버―”
하는 수 없다는 듯 손 씨는 짧은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쥐고 있던 날카로운 칼날로 남자의 목을 베어냈다.
귓불에서 쇄골로 이어지는 가상의 수직선과 직각으로 만나는 새빨간 선이 그려졌고, 남자는 곧 죽었다.
손 씨는 살려달라며 부르짖던 남자의 마지막 분노를 곱씹었다. 빠르게 식어가는 주검을 내려다봤다.
칼날에 묻어난 미세한 양의 혈흔을 손수건으로 닦아낸 다음, 칼집에 넣었다.
칼을 잘 쓰게 될수록 날에 피가 묻지 않을 거라는 선배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참 멋진 선배였지.
하며 속삭인 손 씨는 선배의 잘록한 허리와 길게 늘어트린 굴곡진 머리칼을, 자신감 넘치는 특유의 표정과 말투를 금세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녀는 간암으로 한 달 전에 죽었다.
암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선배는 급히 수술을 받았다.
여섯 시간이 넘도록 수술이 이어졌고, 애석하게도 수술을 마치고 깨어난 그녀의 몸에는 암 덩어리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거의 유일하게 교류하고 지내던 사람이었기에 손 씨는 기꺼이 병실을 찾아갔다.
그녀는 손 씨를 보자마자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불평을 늘어놓았다.
“야, 손. 아무래도 나 망한 것 같다? 그 의사 완전 초짜였어. 메스가 온통 피투성이였다니까? 차라리 너한테 수술을 맡기는데 나을 뻔했다.”
수술이 한창인 와중에 슬쩍 고개를 들어 고군분투하는 의사를 내려다봤다는 그녀의 어이없는 허세에 손 씨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조금은 슬퍼했다.
그날 밤, 선배는 병원 옥상에서 몸을 내던졌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건 몇 번이고 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죽이는 건 인생에서 단 한 번 저지를 수 있는 특권이라는 괴상한 메시지를 남긴 채.
그녀의 일기에는 굳은 다짐 하나가 적혀있었다.
무엇도, 아무도, 날 죽이지 못할 것이다. 날 죽이는 건 나 자신이 될 테니까.
선배를 회상하는 것도 잠시.
손 씨는 남자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위치를 조정하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곧장 의뢰 중개인에게 전송했다.
5초도 안 되어 수고했습니다, 라는 답장이 도착했다.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손 씨는 시체 앞에 서서 합장했다.
그것으로 의뢰는 끝이 난다.
뒤처리는 작업반이 와서 할 것이다.
손 씨는 괜스레 방을 휘이 둘러보고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갔다.
그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는 언제나 천천한 태도로 일을 마쳤다.
우군과 좌군. 십사만의 병력은 둘로 나뉘었다.
그중 오만 육천이 구례를 경유해 남원성에 도착했다.
성을 둘러싼 원정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깃발을 꽂고 불을 피웠다. 밥을 지어먹었다. 그리곤 한데모여 잠을 잤다.
그것이 그들이 전투하는 방식이었다.
이른 새벽이 되고 병사들은 오와 열을 맞춰 섰다.
‘아시가루_あしがる’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검은 삿갓처럼 보이는 전용 투구를 쓴 그들은 모두 피곤과 공포에 전 얼굴을 한 채 긴 창을 잡았다.
그런 아시가루들을 말에 올라탄 사무라이들이 근엄한 얼굴로 굽어봤다.
창 대신 칼을 찬 그들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애국심과 관백(関白)을 향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일장연설이나 전공을 올리는 자에게 금은보화를 하사하겠다는 흔하디 흔한 약속도 없었다.
부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 무거운 침묵과 날카로운 시선 한 번이면 족하다는 듯 지휘관들은 말을 아꼈다.
사무라이들이 군무를 추듯 성을 향해 팔을 뻗자 아시가루들이 함성을 지르며 내달렸다.
공성이 시작됐다.
진영을 죽여 달라는 의뢰를 받은 건 보름 전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중개인이 전하는 “의뢰가 있습니다.” 그 한 마디에 손 씨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곧바로 이메일을 통해 인적 사항이 담긴 파일이 도착했다.
정진영. 36세. 남자. 무직. 독신. 독거. 청량리역 근처 원룸 거주.
그 이외의 정보는 적혀있지 않았다. 특이사항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의뢰의 저변을 차지하고 있는 진실과 사연이 무엇인지, 손 씨는 궁금하지 않았다.
원망? 질투? 불륜? 치정? 복수? 어떤 것도 알고 싶지 않았고, 어떤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의뢰를 수행할 뿐이었다.
그는 기계나 다름없었다.
의뢰라는 명령을 받고 곧이곧대로 수행하는 살육 기계.
손 씨는 집 안 어딘가에 널어둔 인간의 허물을 꿰어 입고 말없이 집을 나섰다.
진영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필요 이상으로 조용한 동네였고,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싶은 오래된 건물이었다.
현관문이 열려있다.
잠겨있지 않았다.
손 씨가 그간 찾아갔던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손 씨의 손을 거쳐 간 이들은 세상 모든 것들을 거부하듯 하나같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살인청부업자를 맞았다.
손 씨를 보면 정체를 밝히기도 전에 기겁하며 달아났다.
“안녕하세요?”
진영은 기다려왔다는 듯이 손 씨를 보며 선뜻 인사를 건넸다.
집 안으로 들어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손 씨는 구두를 벗었다.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안경 너머로 그의 표정을 살펴보며 손 씨가 물었다.
죽음을 기다려온 불치병 환자처럼 태연한 진영이 마냥 신기했다.
“아니요?”
진영은 그렇게 재깍 대답하고는 웃었다. 소년 같은 미소였다.
중년이 지어 보이는 소년의 미소란, 과연.
전혀 놀란 기색이 없어 혹시나 하고 질문한 것이라고 손 씨는 설명했다.
“그렇군요.” 진영은 여전히 미소 띤 얼굴이었다. “어쨌든 용무가 있어서 오신 거죠?”
손 씨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왠지 모를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일단 앉으세요. 차라도 한잔 드릴게요.”
진영이 사는 곳은 8평 남짓한 원룸으로, 중년 남자가 혼자 사는 곳답지 않게 아기자기한 소품과 화분, 그리고 말끔한 가구들로 잘 꾸며놓은 아주 단정한 공간이었다.
손 씨가 그런 감상을 그대로 전하자 부엌에 등을 보이고 서있던 진영은 고맙다고 한 뒤, 대뜸 말을 늘어놓았다.
“원래는 살림살이가 더 많았어요. 전에는 훨씬 더 큰 집에서 살았거든요. 근데 일이 좀 생겨서 부득이하게 이쪽으로 이사를 오게 됐죠.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뭔 줄 아세요? 바로 살림살이 줄이는 거예요. 전에 살던 큰 집에서 쓰던 물건들을 그대로 가져올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 계속 궁리를 해야 했어요. ‘당장 나한테 필요한 물건이 뭘까?’ 근데 또 막상 사람이라는 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원론적으로 따지고 가다 보면, 사실 숟가락이나 젓가락도 필요 없게 되니까요. 모든 음식은 손으로 집어먹으면 그만이니까. 뭐, 이런 식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탄생한 게 바로 이 공간이에요. 필수와 선택이 최상의 비율로 배합된 8.5평이라고 할 수 있죠.”
의외로 말이 많은 사내로군.
손 씨는 생각했다.
넙데데한 얼굴에 박힌 성의 없는 눈과 주먹코, 두툼한 입술. 거기에 현관문만한 등판을 가진 사람치고는 몹시 수다스럽고 섬세하다는 게 그의 첫인상이었다.
보이차를 내온 진영이 이번엔 차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옥빛을 띠는 작은 찻잔을 홀짝이며 손 씨는 잠자코 진영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 보이차라는 게 결국에는 흑(黑)차 종류 중 하나라는 거죠. 그리고 다른 차와는 달리 종이 포장을 고수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거고요.”
“그렇군요. 얘기 잘 들었습니다.” 손 씨는 빈 잔을 살포시 내려놓고 진영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제 제 용건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진영은 역시나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표정이었다.
누군가 성벽에 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걸치면 다른 누군가가 사다리를 밀어냈다.
밧줄 끝에 매달린 갈고리가 성벽을 깨물면 또 다른 누군가의 칼날이 밧줄을 끊어냈다.
포연과 탄환, 화살, 칼과 창, 끓는 물과 기름, 바위.
이 모든 것들이 흙먼지와 비명과 함성과 광기와 처절함과 함께 버무려졌다.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자들이 서로를 찌르고 베었다.
곳곳에 피가 튀었다.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유언요?”
유언이 있는지 묻는 손 씨의 질문에 진영이 되물었다.
“예,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마지막 말.”
“……으음.”
진영은 굳이 그렇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나름 진지하게 고민에 임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지만, 손 씨의 눈에는 그런 그의 모습이 어쩐지 작위적이고 불성실하게 보였다.
“유언이라……. 너무 어려운데요? 제가 이렇게 일찍 죽게 될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말씀하세요. 유언은 수정할 수 없습니다.”
진영은 곧 죽을 거라는 말에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서 손 씨는 흥미는커녕 권태를 느꼈다. 의연한 태도가 아닌 그저 무지한 상태라고 그는 결론지었다.
의외로 사람들은 죽음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와 거대한 칼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관념인양 태평하게 굴었다.
방패를 치켜들지도, 칼을 집어 들지도, 냅다 줄행랑을 치지도 않았다.
한참 동안 생각을 이어가던 진영은 “그런 거 없는데요.” 하고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죽음에 대해 고찰해 본 적 없는 사람다운 대답이라고 손 씨는 생각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진영이 물었다.
“뭡니까?”
“여태 들었던 유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뭐였나요?”
이번엔 손 씨 차례였다.
그는 칼날에 죽어간 누군가의 마지막 발화를 하나하나 떠올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샌가 혹독해져 버린 현실을 원망하거나 해묵은 후회를 들먹이기 급급했고, 어떤 이들은 흘러간 영광의 나날을 줄줄이 읊어댔다.
손 씨의 예상과 달리 복수를 원하는 사람은 여태 단 한 명도 없었다.
모종의 의뢰를 받고 당신을 해하려 왔다고 친절히 설명을 해줘도 그들은 의뢰한 당사자가 누군지 특정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는 사실에 분노하는 이는 분명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분노의 화살이 다른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화살은 죄다 자신의 심장만을 가리켰다. 자신이 죽을 만한 인간이라는 걸 수긍한다는 태도로.
“본인을 기억해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 기억하고 계세요?”
진영이 물었고, 손 씨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손 씨는 그때 그 남자의 얼굴과 이름, 나이, 직업, 고향, 출신 학교, 식습관, 잠버릇, 취미, 특기, 신체 사이즈,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하다못해 시력까지 줄줄 욀 수 있었다.
머릿속에 그의 마지막 모습이 무리 없이 그려졌다.
“유언을 직접 듣고 그대로 집행해주는 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 같은 거라고 봐야 할까요?”
다시 진영이 질문했고, 손 씨는 이번에도 충분히 생각을 거친 뒤 대답했다.
“잘 모르겠네요. 배려? 자만? 과시? 과욕? 추태? 책임? 의무? 은총? 양심? 어떤 단어나 아무렇게나 붙이면 될 겁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겁니다. 대단한 의미 부여는 안 해도 됩니다.”
살인청부업자가 자조적으로 중얼거리자, 진영은 흥미롭다는 듯 그의 얼굴을 살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하자를 살피듯 빈 찻잔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던 손 씨를 향해 진영은 다시 한 번 질문했다.
“네, 말씀하시죠.”
“당신은 실재하나요?”
손 씨가 멈칫했다.
“……무슨 의도도 하는 질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 당신 눈앞에 있는 저라는 존재는 뭐죠?”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영은 무대 위에 오른 연극배우처럼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갑자기 그런 질문이 떠올라서 해본 것뿐이에요.”
피 튀기는 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쿄넨은 승전을 기원하며 목탁을 치고 염을 하였다.
그는 종군 승려 신분으로 조선 땅을 밟았다.
성벽 아래로 무사히 죽음에 이른 자와 이르지 못한 자들이 한데 뒤엉킨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쿄넨은 감고 있던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새된 비명이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빗장을 부순 것 같습니다.”
“……끝났군.”
또 다른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전장 한가운데에서 나팔 소리가 울렸다.
쿄넨은 아군의 입성을 전하는 그 소리가 이제부터는 전투가 아닌 살육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보처럼 들렸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아시가루들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온몸은 온통 땀과 재와 흙먼지와 기름으로 뒤덮여있었고, 창끝은 피에 젖어있었다.
전장에서는 잔뜩 움츠리고 있던 자들도 부녀자와 노인들 앞에만 서면 광기를 드러냈다.
어떤 것도 빼앗긴 적 없는 자들이 하루아침에 모든 걸 빼앗긴 이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갉아먹었다.
강탈하고 겁탈하고 압제했다.
배를 채우고 욕구를 덜어낸 아시가루들은 고대하던 순간인양 시체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아군과 적군, 가리는 법이 없었다.
운 좋게 금빛이 도는 패물이라도 발견한 이는 그날 내내 입을 귀에 걸고 누런 이를 내놓고 다녔다.
“유언, 지금 말해도 될까요?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손 씨는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의 얼굴을 삼킬 듯 응시하던 진영이 책 한 권을 건넸다.
“꼭 한 번 읽어보세요.”
가는 풍경 소리가 들렸다.
밤하늘엔 거대한 달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협적으로 떠있었다.
종군 승려 쿄넨은 마루 위에 서서 눈앞의 병사를 내려다보았다. 두툼한 달빛이 병사의 피로한 몸을 감쌌다.
거친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답게 묘한 흥분에 뒤덮인 얼굴이었다.
쿄넨이 버릇처럼 물었다.
“어디 소속이십니까?”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님 산하 조장입니다. 쇼지, 라고 합니다.”
쿄넨은 합장을 마친 뒤 쇼지 조장을 방으로 안내했다. 차를 내온 쿄넨이 입을 열었다.
“방금 고니시 님이 다녀갔습니다.”
쇼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님은 기리시탄(기독교 신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예, 그분은 신불 대신 다른 분을 숭앙하고 계시지요. 그런데 굳이 저를 찾아오셔서는 대뜸 질문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렇습니까……. 저는 질문이 있다기보다 감사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감사 인사를요?”
쿄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습관처럼 손때 묻은 염주를 만지작거렸다.
병사의 시선은 끈기 있게 늙은 승려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사실, 부산포 법회 때 스님을 뵈었습니다.”
쇼지 조장은 반역을 꾀하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밑바닥까지 낮췄다.
“그때 스님의 설법 중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저는 그 단순한 생각을 그전까지는 해본 적이 없었지요. 저에게는 그 문장 하나가 거대한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스님 덕분에 여태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병사의 말이 쿄넨의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
마치 죽지 않기 위해 수많은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야차(夜叉)의 잔인한 고백처럼 여겨졌다.
동시에 쿄넨은 이곳이 전쟁터임을 되새겼다.
불살생(不殺生).
오계 중 첫째.
전장에서 불살의 계율을 지킨다는 건, 심장을 몸밖에 내놓고 다니는 것과 다르지 않은 자살 행위였다.
그것도 할복이 주는 최소한의 영예조차 챙길 수 없는 개죽음에 불과할 것이다.
계율은 불심과 같아서 어디서든 황황히 빛나는 것이라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예외였다.
불심이 깊은 자와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쿄넨은 전쟁의 참상을 떠올릴 때면 때아닌 번뇌가 들어차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고 모든 믿음이 덧없게 느껴지곤 했다.
젊은 병사의 진심 어린 감사가 노승은 도리어 불편했다. 쿄넨이 목청을 다듬었다.
“구태여 이렇게 감사를 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승은 그저 지붕 아래 앉아 염을 외고 목탁을 두드려댈 뿐입니다. 이 전쟁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건 쇼지 조장 같은 아시가루들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제가 감사함을 전하는 게 옳은 듯합니다.”
승려의 합장에 맞춰 두 손을 모은 쇼지 조장은 얼마간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찻잔으로 시선을 떨군 그가 공손히 말했다.
“저, 스님, 하나 여쭐 것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그러시지요.”
“사람을 베고 찔러 칼과 창을 피로 배불리는 행위는 어느새 익숙해지고 말았습니다. 뭐, 실은 매번 괴롭고 눈살을 찌푸리지만요. 헌데, 그…….”
아시가루는 까맣게 때가 낀 손톱을 내려다보며 머뭇거렸다.
“그, 코……를 자르는 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더군요.”
쿄넨도 잘 알고 있는 바였다.
일명, ‘코 베기’ 관백(일본 조정 최고의 자리.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칭하는 말)의 명이었다.
각 부대의 병사들은 자신이 죽인 조선인의 코를 베어 후송했다.
피에 젖고, 소금에 절여진 코는 커다란 상자에 담겨 나고야성으로 전해졌다.
그렇게 바다를 건너간 코가 정확히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쿄넨은 알지 못했다.
단순한 전리품에 그친 건지, 정치적 장치로 쓰일 요량인지 그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저 높은 곳에 선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잔인한 기행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렇습니까…….” 쿄넨은 착잡한 얼굴로 슬쩍 물었다. “소문에 의하면 각 부대에 하사되는 포상은 후송한 코의 개수에 따라 차등을 둔다고 하던데요.”
“소문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직위와 영토뿐 아니라, 황금을 하사 받은 부대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전투가 끝나고 부상 입은 아군 한번 살피는 법 없이 혈안이 돼서는 시체부터 뒤지고 있습니다. 코가 붙어있는지 확인하는 거지요.”
쿄넨은 짧은 고민 끝에 말을 늘어놓았다. “실은, 방금 전 고니시 유키나가 님도 비슷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 그 분도 코 수거를 꺼려하시는 겁니까?”
쇼지 조장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이름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조장 중 한 명이 그렇다고 하더군요. 정확히 말하면, 코 베기는 고사하고 살인조차 마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쿄넨은 조금 전 상황을 곱씹었다.
시동(심부름꾼) 한 명 없이 대뜸 찾아온 사무라이는 작은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고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산하에 둔 아시가루 조장 중 한 명이 여태 불살의 계율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쿄넨은 귀를 의심했다. 전쟁터에서 불살이라니.
그것도 최전선에서 적을 조우하는 아시가루가 아닌가.
의심했지만, 눈앞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앉아있는 사내의 굳센 얼굴을 보자 의심이 걷혔다.
답을 구하려는 진심 어린 모습이었다.
사무라이가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시가루 한 명이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왔다.
“타이치라고 합니다. 조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긴장하는 어감이 실려 있었다.
……이 사내인가.
쿄넨은 눈을 번뜩였다.
남자라기보다 소년에 가까워보였다. 전쟁을 무대 삼아 신념을 증명하기엔 너무 어렸다.
수없이 많고 잦은 유혹과 반대에 부딪혔을 소년이 쿄넨은 새삼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는 놀란 가슴을 숨기고 합장했다. 그리고 말했다.
“불살은 존경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전우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고루한 신념에 불과하지요.”
사무라이와 아시가루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달빛이 머리를 짓누르기라도 하듯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하는 기미를 보였다.
말의 이면을 탐색하는 눈빛이었다.
노승은 잠시 틈을 두었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신념은 잠시 접어두고 명을 중시하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그 길로 두 분은 돌아갔습니다.”
노승의 말에 쇼지 조장은 퍽 놀란 눈치였다. 이를 눈치챈 쿄넨이 말을 이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는 비밀로 부치시지요. 방금 조장께서 하신 질문과 상통하여 꺼내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예, 걱정 마십시오.” 비밀 한 가지를 가슴에 묻은 아시가루가 합장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스님, 마지막으로 물을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시지요.”
“전쟁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여태 그곳에 살고 그곳에서 살아남았지만, 여직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살육의 장이 아니기를 바라고만 있습니다.”
“…….”
노승은 한참 동안 말을 고르고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전쟁은 무덤이지요. 무덤만큼 죽음이 자연스러운 곳도 없습니다. 다만, 이곳에서의 죽음은 기록되지 않고 추모되지도 않을 겁니다. 조금 매정한 말로 들리겠지만, 그런 낭만적인 고민으로 마음을 채우지 마십시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고, 지독한 천운이 따라 무사히 전쟁의 끝을 목도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태어나시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사십시오. 잊으려 하지 마시고, 기억하지도 마십시오. 전쟁이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여기십시오. 옳은 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이 제가 찾은 해답입니다.”
쇼지는 의아하다는 듯한 얼굴로 쿄넨을 마주 쳐다보았다. “전쟁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시면 어쩝니까. 역사에 중히 남을―”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머리와 마음을 비우시지요. 헛배만 불리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종군 승려가 목소리를 덮어씌우듯이 딱 잘라 말했다.
진지로 돌아가는 젊은 병사는 기분 좋은 포만감이 번지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반면, 답을 찾아 어려운 걸음을 한 이들에게 속이 텅텅 빈 헛소리만 손에 쥐여 준 꼴이라고 쿄넨은 자책했다.
“그야말로 공염불이 따로 없군…….”
쿄넨은 거짓 설법이나 설파하고 다니는 자신의 꼴이 퍽 우스워보였다.
하지만 신념을 지켜온 소년 병사나, 나라의 명을 받들어 전쟁에 참여했지만 다른 이의 신체를 이유 없이 훼손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젊은 병사가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따지고 보면 자신은 전쟁터에 있으면서 전쟁을 겪지 않는 유일한 인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시가루들과 달리 종군 승려가 혹독한 노동과 생사를 가르는 전투와 가혹한 추위에 노출되는 일은 없었다.
염불을 외고 목탁을 칠 줄 안다는 비루한 재주 때문이었다. ‘덕’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생(生)보다 중요한 명(命)이 어디 있으랴.”
쿄넨은 죄를 덜어내듯 혼잣말을 이어갔다.
“……이것은 살인(殺人)입니까?”
살인입니다.
그는 망연히 달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침묵보다 더 허허롭고 농담보다 더 어수선한 말이었다. 어디로든 달아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목탁 손잡이를 으스러져라 움켜쥔 노승은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코를 부여잡았다.
코는 제자리를 벗어나는 법 없이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온전함이 사무치도록 부끄러웠다.
유난히 밤이 깊고 무겁게 느껴졌다.
책을 읽어주세요.
그것이 진영의 유언이었다.
틈틈이 읽던 책인데, 뒷부분 몇 장만 남겨둔 상태라고 했다.
자기를 대신해 어떤 결말로 끝이 나는지 읽어달라고 그는 부탁했다.
알겠다는 의미에서 차분히 고개를 끄덕인 손 씨는 망설임 없이 진영의 심장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그것도 자신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사람을 위한 마땅한 표현을 손 씨는 알지 못했다.
책을 덮은 손 씨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굳어있는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달빛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몸을 떨었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중개인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의뢰가 있습니다.
손 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이번에 듣게 될 유언에 대해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