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호시절

누구에게나 좋은 때가 있다

by 류해인


정선미는 컴퓨터 전원을 끄고 사무실을 나섰다.


저녁 9시가 막 넘은 시간. 사무실에 남아있는 직원은 없었다.


주말을 앞둔 날이니만큼 서둘러 퇴근했을 것이다.


건물 1층 로비도 한적했다. 그녀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회사 건물을 빠져나가 그대로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플랫폼 기둥에 기대어 열차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휴대폰을 들여다볼 힘도 없었다.


일을 마치면 항상 이랬다.


모든 기운을 쏟아내 일을 하고 빈껍데기로 휘청대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


판에 박힌 그녀의 일상이었다.


정선미는 그저 멍하니 승강장 벽면에 붙은 광고판에 시선을 뒀다.


그저 시선을 그쪽으로 두었을 뿐, 광고 문구까지 읽어낼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엄마였다. 받지 않고 일하는 중이라고 메시지만 남겨둘까, 고민하다 말았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어, 엄마? 오랜만이네.”


―얘가, 오랜만은 무슨……. 지난주에도 했구만. 퇴근은 했어?


“지금 지하철, 집 가는 중.”


―금요일에 퇴근을 왜 그리 늦게 해. 일찍 들어가 쉬어야지.


“요새 일이 좀 밀려있어서.”


―저녁은?


“집 가서 먹어야지.”


정선미는 저녁은커녕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사람처럼 힘없이 답했다.


―박 서방 나오라고 해서 맛있는 거라도 사먹고 들어가지, 왜?


“박 서방도 오늘 피곤할 거야.”


정선미는 잠시 망설인 끝에 말했다. 박 서방이 없는 자리에서 박 서방을 주제 삼아 말하는 게 엄마의 특기 중 하나였다.


―내내 집에 있는 양반이 뭐 한다고 힘들어?


마음에 안 드는 듯 툴툴대는 엄마의 목소리에 정선미는 있는 대로 목소리를 짜내어 밝게 대답했다.


“박 서방, 오늘 지방 내려갔어.”


―지방에? 갑자기 왜?


“오늘 시부모님 기일.”


―아아……, 그게 여름이었나? 잊고 있었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안 됐어.


잠시 누그러진 듯한 목소리가 다시금 커졌다.


―그나저나, 박 서방 일은 구하고 있는 거냐? 어째 소식이 없어. 자꾸 놀면 그것도 습관 되는데. 벌써 몇 년째야, 한 3년 됐나?


“에이, 3년은 무슨…….”


정선미가 짐짓 별일 아니라는 듯 덧붙였다.


“이제 막 2년 됐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왜 자신이 2년 6개월 동안 돈 한 푼 벌어오지 못하는 남편을 옹호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는 거라니? 도대체 뭘 하고 있다니? 예전에 했다는 그 전문직시험 공부하는 거야?


전문직이라는 단어에 정선미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창고에 깊숙한 곳에 처박아놓고 잊어버린 물건이라도 되는 듯이.


그러다 문득 떠오른 기억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정작 아내조차 잊고 지내던 사실을 장모되는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는 게 퍽 우스웠다.


“아, 그거? 아니야. 그거는 예전 직장 퇴사하고 잠깐 했던 거고.”


―잠깐은 무슨! 그걸로 거의 1년은 잡아먹었으면서. 내가 끝까지나 했으면 몰라. 잠깐 하고는 말아버리고, 남자가 그게 뭐냐. 끈기 없이.


장모의 말마따나 박 서방은 퇴사 후 돌연 세무사 공부를 해보겠다며 한동안 도서관으로 나다니곤 했다.


―가장이 됐으면 말이야. 악착같이 살아야지 그렇게 설렁설렁……


그쯤에서 정선미는 전화를 괜히 받았다는 생각에 후회했다.


아무리 장모 눈에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위라 할지라도 아내 된 입장에서 마냥 듣기 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엄마, 할 말 있어서 전화했던 거 아니야?”


정선미가 화제를 돌렸다.


전화통화 내내 불편을 토로하던 상대방은 장모에서 결혼한 딸을 둔 엄마로 돌아왔다.


―아, 맞아. 아니, 전에 선미 네가 말했던 거 있잖아. ……모아둔 돈 좀 있냐고.


이번에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얘기에 정선미는 잠시 당황했다.


본인이 먼저 꺼냈던 얘기도 잊고 지낼 만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어어, 집주인이 전세금 올려달라고 했던 거…….”


결혼까지 한 마당에 혼자 사는 엄마에게 손을 벌리는 게 죄송스럽다가도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새로 집을 구해야 한다는 현실에 순간적으로 아득해졌다.


“그래서 엄마? 좀 도와줄 수 있어?”


―오백……정도 밖에 안 될 거 같은데. 엄마가 무슨 돈이 있겠어. 죽은 네 아빠 연금으로 먹고사는데.


돌아가신 아빠 얘기까지 나오자 정선미는 그야말로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치, 알고 있지……. 내가 제일 잘 알지.”


―정확히 얼마 필요하다고 했지?


“이천오백……. 그중에 천만 원은 내 비상금으로 해결하면 되고, 그리고 엄마가 해준 오백에……, 천만 원은 더 있어야 돼. 일단 나도 회사 쪽 대출로 알아보고 있긴 한데, 잘 될 거 같지는 않아. 대출을 처음 받는 것도 아니라…….”


―박 서방은 따로 모아둔 돈 같은 건 없다니?


“그 사람이 돈이 어디 있겠어. 최근에 일한 적이 있어야지……. 기대도 안 해.”


말을 뱉음과 동시에 정선미는 전날 밤 남편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남편이 지방으로 내려간 것은 비단 부모님의 기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납골당이 위치한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지역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고 했다.


그런 말을 꺼냄과 동시에 남편은 거기까지 간 김에 친구와 점심식사나 같이 하려고 약속을 잡았다며, 그 친구에게 한번 부탁해보겠다고 했다.


그 기억에 힘입어 급히 말을 덧댈까 하다가 괜한 말인가 싶어 정선미는 말을 삼켰다.


―그래도 한번 물어봐……. 설마 한 푼도 없을까.


침울한 엄마의 목소리에 정선미도 덩달아 힘이 빠졌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최대한 알아봐야지…….”


정선미는 그렇게 대답한 뒤, 지하철이 도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


한숨이 절로 나왔다. 드디어 평일이 끝났다는 해방감도 그녀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 원인이 돈인지 남편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진입하고 있으니 한걸음 물러나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있던 찰나에 그녀는 문득 결론을 내렸다.


최근에 한숨과 주름과 이유 없는 짜증이 늘어난 것도, 활기와 말수와 머리숱이 줄어든 것도, 잠버릇과 피부와 사내 업무평가가 안 좋아진 것도 전부 돈 때문이었다.


돈이 많았다면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당연한 권리에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지 않아도 될 테고, 주변 사람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될 테고, 무엇보다 이렇다 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을 탓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지하철에 지친 몸을 실은 정선미는 방금 했던 생각을 거꾸로 해보았다.


역순으로 가정해도 별다른 오류는 없었다.


만약 남편이 다른 집 가장들처럼 경제활동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훨씬 더 여유로운 일상을 쟁취했을 것이다.


결론이 그렇게 이르자 정선미는 쓸쓸해하며 본인의 처지를 탓했다.


하나뿐인 남편을 무턱대고 탓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라면 사정이 있었다고, 그동안 무작정 놀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고 자위했다.






남편은 서른둘이 되고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4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혼인서약서에 서명한지는 1년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퇴사의 가장 큰 원인은 직속상사와의 마찰이었다.


평소 상사에 대한 불만을 시도 때도 없이 토로했었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받는 모습이 고통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정선미는 퇴사라는 그의 다소 극단적이고 성급한 결정에도 반대의견을 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권장하는 쪽에 가까웠다.


아직 한창인 나이였고, 오랜 연애 끝에 한 결혼에 마냥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기에 하루하루 지쳐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기란 정선미에게는 그것 나름대로 고통이었다.


포근한 봄 날씨도 그런 그녀의 결정에 힘을 보태주는 듯했다.


“당분간은 맘 편히 쉬어. 늦잠도 실컷 자고, 당신 좋아하는 게임도 하면서. ……돈은 뭐, 당신만 벌 수 있나?”


퇴사 당일 이른 오후, 사무실에 남아있는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정선미가 환하게 웃으며 가장 먼저 했던 말이었다.


“나 이제 백수네.” 하고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중얼대는 남편의 얼굴은 더없이 편안해보였다.


정선미는 그런 남편의 퇴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앞으로의 생활을 축복해주었다.


그렇게 2개월이 흘렀다.


남편은 보기 싫을 정도로 살이 올랐고, 한층 게을러졌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잘 씻지도 않았다.


그런 남편이 미울 법도 했지만, 한결 선해진 눈매와 스트레스성 탈모를 이겨내고 다시금 풍성해진 머리숱을 보니 다시 한 번 생각해도 퇴사는 참 옳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설거지를 하던 정선미의 등에 대고 대뜸 남편이 말했다.


“여보. 나, 공부를 좀 해보려고.”

“공부?”

“응. 일 그만둔 김에 한번 해보고 싶어서.”


퇴사를 결정했다고 말할 때만큼 결연한 남편의 얼굴에 정선미는 안도했다.


자기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당분간은 경제적으로 시달릴 걱정은 없었다.


당장의 자녀계획도 없었고, 전세기간도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돈이 필요할 일은 딱히 없었다.


“그래, 해보고 싶은 공부 있으면 이참에 해보면 좋지.”


정선미는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바로 다음날부터 남편은 다시 부지런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외출을 준비하고 정선미의 출근시간에 맞춰 같이 집을 나섰다.


그녀는 회사로, 남편은 집 근처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지고 남편의 체형도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렇게 3개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오전에 외부미팅을 마친 정선미는 돌연 오후 반차를 냈다. 오랜만에 남편과 맘 편히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평일이니만큼 한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성싶었다.


정선미는 도서관으로 갔다. 한참을 헤맨 끝에 평소 남편이 공부한다는 열람실을 찾을 수 있었다.


노트북 전용 열람실답게 들어서자마자 경쾌한 타자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문서작업을 하는 사람은 기본이고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거나 한눈에 봐도 복잡해 보이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녀는 등허리를 곧게 펴고 목을 쭉 내밀어 남편을 찾았다.


남편은 가장 안쪽 구석진 좌석에 등을 보인 채 앉아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정선미는 두 눈을 의심했다.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게 아닐까, 의아해하면서도 발걸음은 서서히 남편에게 향했다.


정선미는 절망적인 실망감에 휩싸였다. 남편은 공부를 하는 게 아니었다.


노트북에 주식 차트가 큼직하게 띄워져있었고, 스마트폰으로는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제껏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잠깐 쉬고 있는 중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싶다가도 책상 위에는 공부와 관련된 어떠한 자료도 꺼내져있지 않았다.


공부하는 사람의 책상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전혀 관계없는 물건으로만 채워진 책상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남편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

“나와.”


정선미는 차갑게 뒤돌아 열람실을 나섰다.

남편도 부랴부랴 뒤따랐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당신 여기 공부하러 온 거 아니야? 여태 도서관 와서 그러고 있었어? 책은 꺼내놓지도 않았더라?”


휴게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선미가 쏘아붙였다.


남편은 절절매는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았다. 꼭 바람피우다 걸린 남자의 항변 같았다.


“내가 공부를 왜 안 해. 당연히 하지. 열심히 했어. 그러다가 요 며칠 잠깐 쉬고 있었던 거야. 이런 전문직 시험은 장기전이야. 공부해야 되는 내용 자체가 워낙에 방대해서 무리했다가 금방 나가떨어지기 일쑤라고. 페이스 조절이 중요해.”


“핸드폰 줘봐.”


정선미의 말에 남편은 우물쭈물하며 손에 있던 핸드폰을 건넸다.


“……핸드폰은 갑자기 왜?”


남편의 핸드폰을 채간 정선미는 어플 목록에서 게임을 찾아 클릭했다.


이내 한눈에 봐도 강력해보이고 화려한 장비들을 장착하고 있는 캐릭터가 나타났다.


좌측상단에서 캐릭터의 레벨을 확인한 그녀는 그대로 게임을 끄고 인터넷에 접속해 게임 이름을 검색했다. 곧바로 정식 출시된 날짜를 알 수 있었다.


2개월 전이었다. 이어 공지사항 란에서 서비스 업데이트 공지를 확인했다. 게임 내 최고레벨이 갱신됐다는 내용이었다.


남편의 캐릭터는 최고레벨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2개월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붙잡고 게임을 해왔다는 소리였다.


“……게임하려고 도서관 왔어? 이럴 거면 뭐 하러 도서관까지 왔어? 그냥 집에서 하지. 어차피 나도 회사 가느라고 텅 비어있는데? 왜? 집에서는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남편의 변명이 이어질 차례였으나,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화면을 확인한 정선미는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전화받아. 종수 씨.”


종수는 남편의 고향친구다.


남편은 이제 좀 살겠다는 얼굴로 휴대폰을 받아들고 천천히 뒤돌아 걸어갔다.


“어, 종수야. 무슨 일―”


그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갑작스런 존댓말 뒤에 이어진 짙은 침묵에 정선미가 눈치를 살피며 남편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통화 상대는 종수가 아닌, 그의 아내였다.


남편이 사망했다는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정선미를 더욱 충격에 빠뜨린 소식은 종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었다.


때 아닌 비보로 부부의 대화는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끝났다.


그 길로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간 남편은 검은 정장을 챙겨 입고 장례식장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다.


장례 마지막 날까지 자리를 지키고 돌아온 남편의 얼굴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 같았다.


그런 그에게 정선미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저 끼니를 챙겨주고 점심을 잘 챙겨먹으라는 말과 함께 출근할 뿐이었다.


누군가는 가정의 경제를 이끌어 나가야했으니까.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도 남편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점심을 먹었는지 물어도 묵묵부답.


그렇게 근 한 달을 폐인처럼 지낸 남편은 살이 5킬로그램은 빠지고서야 일상적인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숨겨진 종수의 유서가 발견되면서 실낱같은 희망은 삽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유서에는 그동안 끔찍하게 외로웠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친구도 아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게 버림받았다, 꿈에서조차 혼자 남겨졌다, 등등 고통스러웠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적혀있는 호소문에 가까웠다.


소식을 전해들은 정선미는 남편이 또다시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까 두려웠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가며 극진히 보살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남편은 다시 칩거 생활을 이어갔다. 말이 줄어들었고, 숙면에 들지 못했다. 헤프던 웃음도 사라졌다.


정선미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차마 마음속 깊이 진심을 다해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몇 년 전 아버지를 잃은 경험이 있는 그녀가 보기에도 다소 과한 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깝게 지내기는 했어도 어디까지나 친구의 죽음 아닌가.


일상이 무너질 정도의 슬픔에 사무치는 남편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의 남편에게 ‘일상’이라는 개념이 잡히지 않아 그런 것 아닐까.


출근을 하고 업무를 이어가는 등 사회에 발을 들인 채 어쩔 수 없이 이어나가야 할 일상의 부재가 저리 과도한 애도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정선미는 조심스레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빙빙 에둘러 말했지만, 퇴사한 지 어느덧 반년이 넘었으니 슬슬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뜻이었다.


정선미의 말을 들은 남편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남편의 대답에서 정선미의 일말의 희망을 봤다.


본인을 둘러싼 현재 상황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지하는 것이 개선의 첫걸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향 친구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남편이 개과천선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지면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누군가 뿌리를 거두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자체는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지만, 정선미에게는 서서히 기울고 있는 가정의 경제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고인에게는 더없이 미안한 일이지만, 제아무리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던 사이라 할지라도 어찌됐든 가족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뭐든 말해.”


남편의 축 쳐진 등을 토닥이며 정선미가 위로와 응원을 건넸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고마워.”


남편은 분명 그렇게 대답했건만, 그의 입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말은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아내의 도움 없이 재기하려는 강인하고 기특한 면모를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저 이전의 생활과 똑같을 따름이었다.


남편이 종일 하는 거라곤 잠을 자고 울적한 표정을 한 채로 힘없이 일어나 느릿느릿 밥을 먹고 멍청한 눈으로 TV를 보는 것뿐이었다.


정선미는 속으로나마 저렇게 의욕 없이 있을 바에 전에 하던 휴대폰 게임이라도 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적어도 게임 속 남편의 캐릭터는 누구보다 활동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선뜻 제 입으로 게임을 하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자녀를 양육해 본 적 없는 정선미였지만, 수능시험을 앞둔 고3 아이라도 키우는 것 같았다.


매사 눈치를 보며 심기를 거스르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말 한마디나 한숨 한번을 조심했고, 무언가를 선뜻 권유하거나 만류할 수조차 없었다.


상실의 고통에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 위로해줘야 하나 나름대로 공부도 해봤지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접근하라는 조언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생활을 더 이상은 지켜볼 수 없었던 정선미가 말을 꺼냈다.


“저기, 병원에라도 가서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 정신과 선생님이랑 얘기만 나누고 와도 한결 편안해진다고 하던데…….”


진작 했어야 할 말이었다고, 적어도 한 달 전에는 꺼냈어야 할 말이었다고 그녀는 입을 열면서도 생각했다.


상담비 명목으로 예기치 못한 지출이 생길 테지만, 남편의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게 급선무였다.


그 정도 재정적 출혈이야 감당할 수 있었다.


제 의지로 피를 꿀떡꿀떡 삼켜가며 피를 토해내는 사람.


그녀는 이제 남편이 미련해보이기까지 했다.


몇날며칠을 고민한 끝에 꺼낸 말이 무색하게 남편의 대답을 거침없었다.


“됐어, 무슨 정신과상담이야. 곧 괜찮아질 거야. 당신은 걱정할 거 없어. 나 괜찮아.”

“…….”


나는 지금 당신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위기에 닥친 가정을 걱정하는 거라는 말을 애써 삼킨 정선미는 그대로 말을 잃었다.


남편의 우울 증세는 3개월이 더 지속됐다.


그 3개월 동안 정선미의 체중은 7킬로그램가량 빠졌고, 스트레스성 원형탈모를 얻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뒤통수 부근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들어보면 매끈하고 하얀 두피가 수줍게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신체적 변화를 감지한 건지 남편은 일상의 궤도를 회복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망가진 수면 패턴을 되찾고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로 본래의 몸매를 되찾았다.


어느 날 늦은 저녁, 남편이 말했다.


“저기, 여보?”


이제는 성냥머리 크기로 작아진 탈모 부위를 만지작거리던 정선미가 대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9시 뉴스에 고정시킨 채였다.


“응, 왜?”


“나 취직했어.”


그제야 정선미의 시선이 남편에게 닿았다.


“…….”


“못 들었어? 취직했다고.” 남편이 재차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회사 이름을 먼저 물어보려던 정선미는 아차, 하며 말을 바꿨다. 밝은 표정이었길 바라면서.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고생은 당신이 했지.”


남편은 그렇게 아내를 치하하고,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별 거 아니라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리 좋은 회사는 아니야. 규모도 작고.”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정선미는 서서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체기가 내려가고 뒷목의 욱신대던 통증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이어졌다.


“당신이 다시 사회에 발을 들였다는 게 중요한 거지. 정말 축하해. 잘했어.”


“……고마워.”


남편이 쑥스러운 듯 어정쩡하게 서서 컵에 담긴 물만 홀짝이는 것이 급기야 귀엽게 느껴졌다.


정선미는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출근은? 언제부터 해요?”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하남으로 출근해. 좀 멀지?”


영등포에서 하남. 한강 이남을 가로지르는 고단한 출근길이 예상됐다. 하지만 정선미는 긍정의 말을 전했다.


“아냐. 올림픽대로 타면 금방이지 뭐. 오히려 바로 앞인 것보다 낫네.”


“……뭐, 어쨌든 그렇게 됐어.”


“취직 기념으로 내일 제대로 외식이라도 할까?”


정선미는 무척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휴식을 가장한 방황을 마치고 재취업에 성공한 정선미의 남편은 관성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남편이 전염병에 걸렸다.


코나 입 같은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는 병으로 대표적인 증세로는 발열과 인후통, 가끔 몸살이 동반된다고 했다. 치사율 자체는 극도로 낮았지만, 전염성이 강한 골치 아픈 병이었다.


“그동안 그 먼 곳까지 출근한다고 무리를 했더니 면역력이 많이 약해졌나봐.”


마스크를 쓴 채 침대에 모로 누운 남편이 변명하듯 속삭였다. 목소리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있었다. 가뭄에 고통받는 논밭이 연상됐다.


성대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정선미는 듣기 싫었다.


“회사에서는 뭐라고 해? 회사에서 당신이 처음 걸렸다면서.”


“뭐라고 하긴, 그냥 잘 쉬라고 하지.”


남편은 속 편히 대답했다. 죄책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입사한 회사에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쉬어요.”


정선미는 안방 문을 닫았다.


남편의 증세는 보름 넘게 지속됐다.


4주 차에 접어들어서야 잔기침이 사라지고 통증이 사라졌다.


남편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재직 기간 중 삼분지 일을 집에서 요양한 직원을 해고하지 않은 사장의 배려를 정선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완치 후 남편이 다시 출근하는 첫날, 정선미는 전주 주말 백화점에서 구입한 홍삼 진액 세트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가져가서 팀원들이랑 나눠 먹어. 몸 관리 잘하라고 덕담 몇 마디 하면서 주면 되겠네.”


“……어? 어, 고마워.”


느릿느릿 아침을 챙겨 먹던 남편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의 겸연쩍은 반응이 의문스러웠지만 정선미는 정례회의 준비를 위해 일찍이 출근길에 올랐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순간, 그녀는 시동을 끄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빠르게 숫자를 바꿔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선미는 바람난 남편의 외도현장을 급습하는 심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현관문 앞에 우두커니 선 정선미는 직장동료에게 회의 준비를 대신 부탁한다는 사과와 양해를 구하는 연락을 남겼다.


거칠게 더운 숨을 몇 번이고 연거푸 내뱉었다. 단숨에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곧장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말을 잃었다.


“어……, 여보.”


남편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파에서 엉덩이를 뗀 모습이었다.


트렁크 팬티에 목 늘어난 티셔츠. 필시 방금까지 드러누워 있었을 것이다.


일순 가슴속에서 천불이 끓어올랐으나 정선미는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침착함을 끌어 모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출근 준비는? 늦게 출근해?”


“……어, 여보, 그게…….”


쭈뼛대는 남편의 모습을 보자 염오감이 치밀었다.


“당신 혹시 회사에서 잘렸어?”


빙빙 돌아갈 여유 같은 건 진즉에 바닥난 정선미가 단번에 치고 들어갔다.


“당신은 무슨 그런 소리를 해! 아니야! 잘리기는!”


그 와중에 회사에서 해고당하기나 하는 능력 없는 남자 역할은 맡기 싫은지 남편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내 발로 나왔어! 퇴사하지 말라고 회사 사람들이 얼마나 붙잡았는데. 겨우 뿌리치고 나온 거야.”


“그러니까, 당신 아팠을 때 대신 일한 사람들이 나가지 말라고 붙잡기까지 해줬는데 왜 당신 발로 나온 건데?”


정선미는 두 눈을 움찔거렸다. 열이 피어올라 얼굴이 따끔따끔했다. 염오와 분노가 온몸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일전에 병 걸리고 완치했다고는 하지만 후유증도 좀 있는 것 같고……. 겸사겸사해서 결정한 거지. 출근하기엔 너무 멀기도 했고.”


“무슨 후유증?” 급조된 것 같은 말에 정선미는 냉큼 물었다.


“그, 뉴스에서 보도하던 내용 있잖아. 맛도 잘 안 느껴지고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숨차고, ……그런 거.”


“그래서, 후유증이 심해서 퇴사를 했다는 거야?”


“그게 주된 이유긴 하지……. 일단 전체적으로 몸이 많이 상했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이러다가 또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이럴 때 큰 병 생기는 거야. 아버님 때 생각해보면 당신도 잘 알 거 아냐.”


‘왜 당신은 당신 걱정만 해?’


정선미는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는 말을 선뜻 뱉을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그대로 뒤돌아 집을 나섰다.


출근. 회의.


그녀가 속한 사회는 맘 편히 누구를 원망하고 있을 틈도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귀가한 정선미는 외투를 벗고 부엌 식탁에 앉아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이었다. 요리에 흥미를 잃었다. 혼자 지키고 있는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만큼 적적한 것도 없었다.


전세금 걱정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남편은 나흘 새 집을 비웠다.


한 달 전부터 외박이 잦아지더니 요새 들어서는 하루 건너 외박이 기본이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시작된 외박에 정선미는 당연한 수순처럼 외도를 의심했다.


외박을 하고 귀가했을 때의 묘하게 수줍어하는 태도와 은근하게 드러나는 활기찬 표정이 그 근거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의심을 단숨에 일축했다. 그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다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제수씨? 아이고, 안녕하세요. 저는―”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반갑게 인사를 해오는 남편 또래의 남자들 틈에 끼어 정선미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정 궁금하면 따라와도 된다는 남편의 말에 오기로 따라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녀는 남편의 외출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남편이 시간을 잡아먹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모임이었다.


모임 참가자 네 명과 의문의 조력자 한 명, 총 다섯으로 구성된 모임.


모두 남자였고, 걱정했던 도박이나 음주, 여자와는 한참 벗어난 성질의 집단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건전하고, 해석의 방식과 방향에 따라서는 나름 건설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초인이라고 생각했다.


정선미는 그들의 말을 듣자마자 온몸에 기운이라는 기운은 모조리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의욕이 바닥에 내리 꽂혔지만, 이해와 수긍의 자세로 그녀는 관심을 드러냈다.


아닌 게 아니라 다름 아닌 남편이 몸을 담고 있는 모임이 아닌가.


“정말요!? 어떤 능력인지 보여줄 수 있으실까요? 정말 궁금하다.”


“그건 힘들겠는데요. 아무래도 외부인한테 능력을 보이는 건 위험 부담이 있어서요. 이해바랍니다.”


모임 내 최연장자로 보이는 남자는 말과 달리 이해가 아닌 외면을 바라는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편을 비롯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남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똑같았다.


‘우리를 내버려두세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선미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을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하루는, 전날 밤 외박을 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정선미가 물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심술이 난 듯 날이 서있는 어투로.


“만나서 얼마나 대단한 걸 하길래 그렇게 외박이 잦아?”


“대화.” 남편, 박민태가 답했다.


“그리고?”


“대화.”


정선미는 편의점 도시락을 비우며 이번엔 남편이 언제 돌아올까, 하는 혼잣말로 적요한 집안을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