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바라는 것
……
버스가 무사히 정차하기를 기다렸다.
박민태는 안전벨트를 풀고 좌석에서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기 전 그는 놓고 가는 물건이 없나 뒤돌아 살폈다. 없었다.
하차하자마자 그는 있는 대로 얼굴을 찡그렸다.
구름 없는 하늘에서 새하얀 빛이 그대로 지면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매서운 햇빛에 한껏 달궈진 지면이 들끓었다.
염천에 그대로 노출된 박민태는 연신 두리번거렸다.
[정안 알밤 휴게소]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휴게소 건물을 두루 살폈다.
이내 목적지를 발견한 그는 손차양을 만들어 눈을 보호하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어……, 선생님? 하나 여쭤볼게요.”
박민태가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서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하얀 반팔셔츠에 진회색 양복바지 차림의 남자는 밀짚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과 눈을 보호하고 있었다.
오른손엔 경광봉, 입에는 호루라기까지 문 모습이었다.
“여쭤보세요.”
남자는 호루라기를 그대로 물은 채로 능숙하게 말했다.
박민태는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손으로 휴게소 구석에 있는 환승센터 현수막이 내걸린 곳을 가리켰다.
“제가 성남터미널로 가고 있는데요. 여기서 버스 환승하는 거 맞나요? 고속버스 환승은 처음이라.”
“환승을 환승센터에서 하지, 그럼 어디서 할까. 물으나마나한 질문을 하시네.”
남자는 시시하다는 듯 성의 없게 대답했다.
“아, 네에…….”
박민태는 금세 의기소침해져서는 쭈뼛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환승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대합실에 들어선 그는 의자에 철퍼덕 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큼직한 스탠드 에어컨이 맹렬하게 바람을 내뿜고 있어 실내는 서늘하고 쾌적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앉은 채로 몸을 식히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시죠?”
누군가 박민태에게 말을 걸어왔다.
의자 끝에 멀찍이 떨어져 앉은 남자였다.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그야말로 아무 대합실에서나 볼법한 사십 대 남성이었다.
대한민국 사십 대 남성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남자는 목소리마저도 평범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톤과 억양과 표정과 발음 모든 부분에서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었다.
“……아, 네에. 안녕, 하세요?” 박민태는 다소 노골적이라 할 수 있는 시선으로 남자를 훑었다.
“날씨가 참 덥네요? 그렇죠?”
자꾸 말을 걸어오는 남자에게 박민태는 가급적 친절해보이고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적당히 대꾸했다.
“하하, 그러게요. 더위라도 먹으면 어쩌나 걱정될 지경이네요.”
“근데 한 번도 그런 적 없으시죠?” 돌연 남자의 얼굴에 진지함이 서렸다.
유난히 빛나는 안광에 박민태는 당황했다. “예? 더위 먹은 적이 있냐고 물으신 거예요?”
“네.”
“아니요? 없어요.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죠?”
박민태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려 버스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을 확인했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30분은 족히 남았다.
“저는 S라고 합니다.” 남자가 본인을 소개했다.
대뜸 말을 걸어오는 남성. 게다가 본인을 S라고 소개한다.
박민태는 생경한 상황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연예인? 아니면, 유튜버 뭐 그런 건가요?”
본인을 S라고 소개한 남자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연예인 아니고, 유튜버도 아닙니다. 저는 그냥 S입니다. 거꾸로 뒤로 읽어도 S입니다.”
“뭐하시는 분인데요?”
“당신 같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S의 말에 박민태의 동했던 호기심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개종을 권유하는 사람이 휴게소 대합실에도 있을 줄은 몰랐다.
“예, 전 불교 믿습니다.”
박민태가 염주 팔찌를 차고 있는 오른 손목을 내보이자 S라는 남자는 두 손을 내저었다.
“아아, 저는 특정 종교를 믿으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해마세요.”
“다들 첫마디는 그렇게 시작하던데요. 잠깐 대화나 하자고.” 박민태는 경계의 눈초리로 남자를 쏘아봤다.
“정말입니다. 저는 애초에 무신론자라 종교가 없습니다.”
“그럼 저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말은 무슨 소리죠?” 박민태가 경계를 거두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말 그대로 당신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소린데요? 제가 혹시 어려운 단어라도 썼나요?”
그냥 상대하지말까 고민하던 박민태는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아닌데……. 말을 굉장히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으신 거 같네요. 저를 찾아다녔다고 하셨는데, 그럼 이렇게 여쭤볼게요. 제가 누군지는 알고 계세요?”
“당신 ‘같은’ 사람을 찾았다고 말했지, 당신‘을’ 찾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S가 박민태의 말을 정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찾아 ‘다닌’ 적도 없습니다. 찾았지.”
박민태는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야했다. “이제 보니 말을 어렵게 하는 분이 아니라, 필요이상으로 정확하게 하는 분이었네요. 자, 그럼 저와 같은 사람을 무슨 수로 찾으신 건데요?”
“다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방법이 뭐냐고 묻는 겁니다.”
“영업 비밀입니다만…….” S는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말을 아꼈다.
“찾아온 용건도 비밀이라고 하진 않겠죠?”
“아, 이렇게 찾아뵌 용건은 밝힐 의향이 있습니다.”
“언제요?”
“지금이요.”
거기까지 말한 S는 잠시간 생각을 이어가는 듯 보였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검색입니다.”
“검색? 검색을 하려고 저를 찾았다고요?” 박민태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아아, 그게 아니라, 그전에 하신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무슨 수로 찾은 건지 물으셔서.”
“아,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인터넷에 검색한다고 나온다고요?” 자기 입맛대로 대화를 주도하는 S의 태도에 박민태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는 그 흔한 SNS도 안 하는데요.”
“검색은 꼭 그 뜻만 있는 게 아닙니다.” S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여기서 굳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요. 그리고 약간의 뒷조사도 진행했다고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말을 끝까지 안 듣는 경향이 있으시네요.”
박민태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정확한 거 좋아하시니까 하는 말인데요. ‘약간’이 아닐 거 같은데, 뒷조사면 뒷조사지 약간 하는 뒷조사는 뭡니까?”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다 다를 테니까 그건 넘어갑시다. 아까 하신 말씀 중에 또 하나 정정할 게 있는데요.”
박민태는 짐작하여 답변했다. “그 ‘흔한’ SNS요?”
“아니요.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요. 당신이 왜 평범합니까?” S는 당최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렇게 당신을 직접 만나러 생뚱맞은 휴게소까지 방문한 사람 무안합니다.”
“……” 별 수 없다는 듯 박민태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번엔 직접 본인의 말을 정정하기 시작했다. “결혼한 서른다섯 살 먹은 가장이 직장도 없이 외벌이 하는 아내한테 빌붙어 사는 게 ‘평범한’ 가정은 아니죠.”
“아……,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박민태의 말을 들은 S는 처음 듣는 양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본인이 제 뒷조사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박민태가 그런 기본적인 정보도 모르냐는 식으로 묻자, S가 항변조로 말했다. “그래서 앞에 ‘약간’이라고 붙였잖아요. 정말 몰랐습니다. 지금 그런 상황이신지.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백수인 거군요.”
“그럼 저에 대해 뭘…… 알고 있다는 겁니까?”
박민태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기껏해야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먼저, 매년 8월 8일에 영광에 다녀온다는 사실을 알죠. 당일 일정으로.” S는 눈앞에 이와 같은 사실이 기재되어 있는 쪽지라도 있는 것처럼 줄줄 정보를 열거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아내 분과 같이 자가용으로 다녀왔다가 요즘은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계시죠. 그래서 오늘 이렇게 만나 뵐 수 있었던 겁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불쾌하네요.”
“아…….”
S가 또다시 당황한 듯 말을 아꼈다.
이를 알아챈 박민태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것까진 몰랐습니까?”
“아, 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 예.”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는 S를 따라 박민태도 얼떨결에 인사를 받았다.
이어지던 침묵을 깬 건 S였다.
“계속해도 될까요?”
“……들어나 봅시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네요.”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는 박민태를 보고 S는 본인이 파악한 정보들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필사적으로 보이는 S의 모습에 감화된 건지 박민태는 중간중간 부정확한 정보를 친절히 정정해주었다.
(……)
“……여기까지입니다.” 말을 마친 S는 쇼핑백에서 생수병을 꺼내마셨다.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아낸 그는 다시 쇼핑백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똑같은 생수병을 꺼냈다. “하나 드릴까요?”
박민태는 일순간 고민했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를 마시는 게 꺼려졌다.
그러다 문득 이 남자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가 다소 부정확하고 특정 카테고리에 편중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예, 고맙습니다.” 박민태는 생수병을 받아들었다.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근데 정작 왜 제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요?”
입에 한가득 물을 머금고 있던 S가 황급히 삼키더니 박민태의 말을 가로챘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
잠시 후, S의 말을 들은 박민태는 이제 다 끝났냐는 의미에서 상대방의 눈을 쳐다봤다.
확인을 마치고서야 박민태가 말을 꺼냈다.
“이거 몰래카메라에요? 유튜브 촬영하는 거죠?”
박민태는 카메라라도 찾는지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S는 억울한 얼굴로 소지품을 챙겨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돌아가는 길에 잘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나름대로 조사도 해보시고요. 제 말이 전부 맞을 겁니다. 그리고 혹여 제 다음 계획에 대해 듣고 싶으시다면, 이 번호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박민태는 S가 건네는 명함을 받았다. 거기엔 사무실 주소만 딸랑 적혀있었다.
“자, 그럼. 박민태 씨, 다시 뵐 수 있길 고대하겠습니다.”
대합실을 나서려는 S의 등에 대고 박민태가 말했다. “질문이 있는데, 해도 됩니까?”
자신을 불러 세운 상대방을 멀거니 쳐다보며 S가 대답했다.
“하시죠. 대답할 수 있는 선에서는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한다고 하면 꼭 그렇게들 말하더라고요.” 박민태는 작금의 상황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지 비아냥조로 툴툴댔다.
“누가요?”
“영화……, 가요.”
“……” S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는 반쯤 돌아서있던 몸을 바로 한 뒤, 착잡하다는 듯 웅얼거렸다. “제 말을 그저 한낱 허구로 생각하시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를 만나러 온 타이밍이 이해가 안 돼서요. 만약 S 당신 추측이 사실이라면, 왜 작년에 오지 않은 거죠? 그 전년도는?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니잖아요. 저는 그저 매년 하던 대로 부모님을 모신 납골당에 다녀오던 길이라고요.”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게 말한 S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대답을 골랐다. 어떤 식으로 답변해야 상대방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1, 2분이 더 지난 후에야 S가 입을 열었다.
“그건, 바로 오늘이 특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당신에게 말을 걸었죠.”
“……그건 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거 같은데요. 오늘이 왜 특별한 날입니까? 방금 말했다시피―”
S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박민태의 말허리를 잘랐다. “오늘은 아직 9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오늘 하루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인 거 같은데요? 혹시 어렸을 때 일기를 한낮에 쓰셨나요?”
“그게 무슨…….” 오늘 남은 하루가 특별할 거라는 S의 말에 박민태는 속으로나마 조소를 보냈다. “예예, 뭐,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질문은 다 하셨습니까?” S는 일정이 빠듯한 사람처럼 굴었다.
“아, 하나 더요. 누가 당신을 S라고 부릅니까? 따로 속해있는 단체 같은 게 있는 건가요? 같이 활동하는?”
“……아뇨?”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요? 그러면 누구한테 S로 불리고 있나요?”
“저한테요.”
“……예, 그럼 수고하세요. 대화 즐거웠습니다.”
박진태는 덕분에 남는 시간을 잘 때웠다며 심심한 감사를 전했다.
“생각해보니…….” 대합실 출입문 손잡이를 잡은 S가 말문을 열었다. “제가 가장 중요한 말은 안 했더라고요.”
박민태는 상대방의 말을 기다렸다.
S가 말했다.
“저 같으면 예매한 버스는 취소할 겁니다. 버스는 많으니 다른 버스를 타세요.”
“예?”
박민태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S는 대합실을 나가버렸다.
그때, 박민태가 예매한 버스가 승강장에 도착했다는 안내문구가 전광판에 띄워졌다.
정선미는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뉴스를 접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놀란 가슴을 간신히 부여잡고 그녀는 차분히 뉴스를 정독했다.
곧장 두 눈으로 몇몇 단어가 꽂혔다.
……15시 15분 출발, …○○고속, ……정안 알밤 휴게소, 경유…, ……성남터미널, …전복 사고, 승객 7명 중상, 그 외 경상 다수
거실에 내걸린 시계를 올려봤다. 19시 35분.
안 그래도 도착할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 싶던 참이었다.
정선미는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녀는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퇴근하고 곧바로 연락을 취하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고된 업무에 지쳐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무사히 집으로 오고 있는지 확인은 했어야 했는데…….
정선미는 다시 뉴스에 집중했다.
이어지는 보도에서 부상자들을 수송해갔다는 병원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해당 병원 정보를 검색했다. 병원의 위치와 응급실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
곧바로 그녀는 응급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현관문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급한 성질머리를 대변하듯 11자리의 비밀번호를 순식간에 입력한 누군가가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어깨를 움츠리며 화들짝 놀란 정선미는 벙찐 얼굴로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를 바라봤다.
이윽고 익숙한 모습의 남편이 걸어 들어왔다.
“당신, ……뭐야?”
넋이 나간 얼굴로 묻는 정선미를 본 박민태는 맥없이 대답했다. “응? 당신이랑 결혼한 남자인 거 같은데요? 보통 남편이라고 부르고…….”
“아니……, 방금, 뉴스…….”
“뉴스? 나도 방금까지 뉴스 읽다 왔는데? ……아, 당신도 봤구나?” 박민태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무슨 교통비를 또 올린대. 작년에도 올렸으면서.”
아내 속도 모르고 정신없이 떠들어대는 남편을 일별하고 정선미는 뉴스 기사를 띄우고 있는 스마트폰을 내보였다.
“응? 뭔데?” 박민태가 한 발짝 떨어진 채로 아내가 내보인 화면 속 내용을 따라 읽었다. “……운전기사 졸음운전, 버스 전복사고 발생…….”
“나도 방금 본 거야……. 당신이 탄다고 했던 버스잖아.” 정선미는 파리한 안색으로 말했다.
“그러게?”
박민태가 생판 모르는 사람의 소식이라도 들은 것처럼 굴자 정선미는 의심에 찬 목소리로 바꿔 끼웠다.
“……당신, 영광 다녀온 거 맞아?”
“그럼 내가 어딜 다녀왔다는 거야?”
“그건 당신이 대답해야지!”
버럭 화를 내는 아내와 마주 선 박민태는 뉴스 내용을 거듭 생각했다.
본래 일정대로라면 자기가 탑승했을 버스였다.
하지만, 버스 출발 직전 S에게 들었던 기분 나쁜 경고성 충고에 휘둘려 티켓을 변경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나아가자 그는 하나의 결론을 유추해냈다.
뭔가를 골똘히 궁리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정선미는 안심했다.
어찌됐든 남편의 무사한 것이다.
그때, 그녀는 무언가를 포착했다.
그건 다름 아닌 남편의 밝아지고 있는 표정이었다.
4년간의 결혼생활을 토대로 짐작컨대, 그의 해맑은 표정이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킨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민태는 한껏 들뜬 표정과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여보 여보, 내 얘기 좀 들어봐.”
“……말해. 듣고 있어.”
“내가 아까 휴게소에서, ……아, 그러니까 정안 휴게소에서 어떤 사람을, 정확히 말하면,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 이름이 글쎄 S인 거야. 알파벳 에스. 뭐, 물론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름으로 아무거나 생각해서 말한 거겠지. 뒤집거나 거꾸로 해도 똑같이 에스니까. 아무튼, 그 S라는 남자가 있는데―”
정선미가 나직하게 남편의 말을 잘랐다. “저, 여보.”
“으응?”
“5초만 생각 정리하고 말해. 지금 너무 정신없어.”
아내의 말에 박민태는 아, 하며 작은 감탄사를 내지르고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고 보니 집에 들어와서 여직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부엌을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서 얘기할까?”
부부는 부엌식탁 의자에 마주 보고 앉았다.
“자아, 그럼 다시 얘기할게.”
박민태가 입을 열자 그의 아내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는 고속버스 환승을 위해 정안휴게소에 하차한 순간의 저조한 컨디션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음을 가라앉힌 채 상사에게 업무내용을 보고하듯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듯하더니 S가 꺼내놓은 추측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S가 대뜸 나한테 그러는 거야! 나한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도대체 어떤 능력일까. 당신도 나도 모르고 있던 그 능력이란 게. 정말 궁금하네.”
이미 대화에 흥미를 잃었지만, 정선미는 나름대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오늘 하루 집 밖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 몸짓과 괴상한 의성어까지 동원해가며 열심히 설명하는 남편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점심시간에 했던 반 대항 축구 시합에서 골을 넣었다고 자랑하는 아들내미 같았다.
“글쎄 나한테 위험을 회피하는 능력이 있대. 다시 말해서, 내 신변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을 겪지 않는다는 거지! 자의든 타의든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거야.”
“…….”
정선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적잖이 당황했다. 얼핏 들으면 충분히 능력다운 능력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그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의문이었다.
능력을 밝혔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아내를 보며 박민태가 물었다.
“왜 아무 대답이 없어? 이해가 안 돼? 다시 설명해줄까? 그러니까 내 말은―”
“아니, 아니야.” 정선미가 손을 들어 박민태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해했어. 당신이……, 가지고 있다는 능력. 음, 그럼 내가 하나 물어볼게. 괜찮지?”
“그럼! 뭐든 물어봐.”
정선미는 남편의 사뭇 당당하고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에서 무언가를 감지해냈다.
“그, ……S? 그 사람한테 그런 능력에 대해 들었을 때, 처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어?”
당연히 “무슨 소린가 했지! 그런 어이없는 얘기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고.” 박민태는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여전히 목소리가 한껏 올라간 상태였다. “그랬는데, 방금 당신이 보여준 버스 전복 사고 기사 읽고 나니까,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진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정선미가 보충설명을 요구했다.
아내의 말에 박민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S가 헤어지기 직전에 해줬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정선미가 남편의 말을 정리했다.
“……그래서 S가 경고한 대로 버스 시간을 바꿨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원래 당신이 타고 있어야 할 버스가 전복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로 그거지! 나는 오늘 내 능력을 증명해낸 거야! 지금 당신이랑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전부 다 내 능력 덕분이라고!”
정선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오늘 일 말고, 다른 경우도 있었어? 당신 능력이 발휘됐던 순간 말이야.”
“당연하지. 나도 잘 몰랐었는데, S가 시간대별로 정리해주니까 바로 생생하게 기억나더라고. 아, 내가 말했던가? S가 나에 대한 정보를 싹 다 조사했어.”
“……그 얘기는 일단 나중에 하고. 그래서 가장 처음 능력이 발현됐을 때가 언제라는데?”
“10년 전. 그때가 시작이었어.”
거창하게 화두를 던지는 것에 비해 내용은 퍽 간단했다.
때는 박민태가 스물여섯 살이던 때였다.
지금의 아내, 정선미와의 교제 1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민태는 한 살 연상인 정선미에게 꼬박꼬박 누나라고 불렀다.
그는 중고로 구입한 차를 직접 운전하여 정선미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운전에 미숙했던 때라 박민태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사고는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대기하던 중 발생했다.
반대편 차선에서 오던 승용차와 그대로 충돌했다.
박민태가 운전하던 차량은 보닛이 모조리 박살났고, 이 현상은 그의 양쪽 다리뼈에서도 벌어졌다.
복잡골절이었다. 다행히 생명이 위독한 부상은 아니었다.
다리 부상도 수월하게 회복했다.
다리를 절거나 격한 활동에 지장을 주는 등의 문제도 없었다.
다만, 그때 이후로 운전대를 잡지는 못했다. 나름의 후유증이라면 후유증이었다.
당시의 투병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정선미가 당최 이해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때 그 일이 왜? 단순한 교통사고였잖아. 상대측 운전 미숙. 거기서 당신 능력이 무슨 상관이야?”
“당시에 나는 워낙에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만약 그날 그 사고가 아니었다면 더 크게 다쳤을지도 몰라. 목숨까지 위험했을지도 모르지. 물론, 당신까지.”
“……그게 무슨 소리야?” 관심 없던 정선미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그때 당시 내가 운전하던 차량에 결함이 엄청 많았던 거야. 브레이크 압력, 배기밸브, 하여튼 S가 보여준 자료가 있었는데, 차가 굴러간 게 신기할 정도였어. 그런 차로 당신 집으로 마중을 나가고 같이 드라이브까지 갈 계획이었으니 큰일이 나도 단단히 날 뻔했다니까?”
믿거나 말거나 위험 회피 능력을 가진 박민태는 기분 좋게 잠에서 깨어났다.
집은 여느 때처럼 고요했다.
미세하게 남아있는 부엌의 온기에 그는 괜스레 평온해졌다.
부지런한 아내는 꼬박꼬박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한다.
그는 아내가 끓여놓은 시래기된장국에 밥 한 공기를 말아먹었다.
스마트폰으로 어제 있었던 고속버스 교통사고에 대한 뉴스를 찾아봤지만, 별다른 후속 보도는 없었다.
만약 내가 그 버스에 타고 있었다면…….
박민태는 끔찍한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과장스럽게 고개를 설레설레 내둘렀다.
“자칫 내가 첫 번째 사망자가 됐을 수도 있었던 거야.”
그는 혼잣말로 공포를 덜어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해갈수록 능력의 위대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내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하고 절로 흐뭇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든든한 뒷배가 생긴 것 같았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다.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건 이렇게나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이었구나, 박민태는 영화 속 슈퍼히어로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같은 컨디션이라면 저 머나먼 우주에서 넘어온 외계생명체의 습격으로부터 기꺼이 지구를 지켜낼 자신도 있었다.
생전 가져본 적 없는 사명감과 인류애가 샘솟음을 느꼈다.
정성껏 시간을 들여 샤워를 마친 박민태는 멀끔하게 정장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S의 사무실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다시금 본인이 가진 능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었다.
사무실은 역에서 멀리 떨어진 허름한 4층 상가건물의 지하 1층이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박민태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S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반겼다.
“……제가 찾아올 줄 알았습니까?” 박민태가 물었다.
“예.”
“어제 그 사고 때문에요? 제가 뉴스를 안 봤다면요?”
“어차피 오늘 특별히 갈 곳도 없으시잖아요?”
남의 치부를 건드리는 S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했다.
“…….” 박민태는 부정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암울해진 박민태의 얼굴을 보며 S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황급히 말을 꺼냈다.
“정장이 무척 잘 어울리시네요.”
“……고맙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S가 공손히 사무실 안쪽에 있는 또 다른 문을 가리켰다.
“……기다려요? 누가요?”
“동료 분들이요.”
박민태는 <동료>라는 단어에 별안간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있던 세 남자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한눈에 봐도 비슷한 연령대의 중년 남성들로, 모두 박민태처럼 멀끔한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럼 얘기들 먼저 나누고 계세요. 저는 밖에서 커피라도 사오겠습니다.”
S는 그 말만 남긴 채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얼마간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어, 굉장히 어색하죠? 아무래도 누군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게 낫겠죠?” 남자가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코를 훌쩍였다. “저는 ‘김’이라고 합니다. 마흔둘이고요.”
“자, 박수…….”
김의 오른편에 앉아있던 깡마른 남자가 멋쩍게 웃으며 박수를 유도했다.
그러자 민망할 정도로 작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수가 잦아들자 깡마른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한’입니다. 서른아홉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박수. 이전보다는 소리가 커졌다.
이번엔 넉넉한 풍채를 가진 남자 차례였다.
“전 ‘장’이라고 합니다. 마흔입니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박민태에게로 쏟아졌다. “아, 네……. 저는 서른다섯이고요. ‘박’이라고 합니다.”
“다들 S씨 만나러 온 거죠?”
연장자 김이 다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무래도 버릇인 것 같다.
다른 세 남자가 서로에게 한 번씩 시선을 내던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럼 혹시…….” 한은 음모를 꾸미는 사람처럼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능력……, 에 대해서도 듣고 오신 거죠?”
다시금 묘한 정적이 사무실을 채웠다.
그때 박민태가 목소리를 한껏 올렸다.
“저희, 이렇게 모이게 된 것도 인연인데 각자 어떤 능력이 있는지 말하는 거 어떠세요?”
“좋아요.” 장이 흔쾌히 답했다. “제가 먼저 할게요. 저는 여태 단 한 번도 팔씨름을 져본 적이 없어요.”
“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헐크처럼?” 김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장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점이 마치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라도 되는 양 미안해하는 얼굴을 지었다. “힘은 평범합니다. 근데 팔씨름은 다 이겨요. 참 신기하죠?”
“그러니까 더 특별한 능력인 거죠!”
의기소침해진 학생을 달래는 선생처럼 한이 말했다.
김은 미심쩍은 얼굴로 장에게 스윽― 손을 내밀었다.
“살면서 힘 좋다는 소리 적잖이 들어봤어요.”
대뜸 벌어진 팔씨름 경기에 너 나 할 것 없이 흥분했다.
승부는 3초 만에 끝났다. 호기롭게 승부를 건 김은 장의 힘을 버티지 못했다.
“저도요. 저도 한 번 해볼게요.” 한이 나섰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어 박민태까지 모두 장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야, 정말 대단한데요?” 한의 얼굴은 난데없는 힘을 주느라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장 씨에 비하면 제 능력은 너무 초라하네요.”
“그래서, 어떤 능력인데요?” 가볍게 손목을 돌리며 장이 물었다.
“저는 제 의지대로 토할 수 있어요.”
김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가락을 입안으로 넣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해서 토하는 건 당연히 아니겠죠?”
“네. 그냥 가만히 있어도 할 수 있어요.” 한이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낼 기세였다. “……지금 여기서 보여드리는 건 좀……, 그렇겠죠?”
“예……, 사양하겠습니다.” 장이 말했다.
“음식 잘못 먹어서 체할 리는 없겠네요.”
직장에 다닐 적에 틈만 나면 손을 따고 소화제를 챙겨 먹곤 했던 박민태는 부럽다는 듯 말했다.
“독살당할 일도 없겠네. 이상하다싶으면 바로 토하면 되니까.” 김이 낄낄댔다.
“김 씨 형님은 어떤 능력이세요?”
한의 물음에 김은 괜히 웃었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김이 말했다.
“나는 살면서 신호에 걸린 적이 없어. 신호등은 내가 가기만 하면 파란불로 바뀌어.”
“정말요? 그럼 사거리에서도 신호 대기한 적이 없으세요?” 장의 눈이 두 배쯤 커졌다.
“응, 그렇다니까? 내가 운전하는 차가 사거리에 진입했다 하면 파란불로 바뀌는데 왜 신호를 기다리겠어. 정 믿기 어려우면 이따 같이 나가서 확인해보자고. 내가 어디든 다 데려다줄게. 차 막힐 걱정 안 해도 돼.” 김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언제부터인지 반말을 고수했다.
“……마지막으로 제 차례죠?”
박민태가 침을 꼴깍 삼켰다.
다른 세 남자는 면접관처럼 그를 쏘아봤다.
박민태는 아내 앞에서 한 것처럼 사연을 늘어놓았고, 전날 발생한 교통사고 뉴스를 보여주었다.
종이가 구겨지듯 범퍼가 찌그러진 버스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을 때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야, 제일 대단한 사람이 여기 있었네.”
김이 감탄한 듯 낮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게요. 정말 대단하세요.” 두 엄지까지 내보이며 한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이고, 별 말씀을……. 그건 그렇고, S씨가 많이 늦네요.”
박민태는 손목에 찬 낡은 시계를 확인했다.
장이 괜스레 입맛을 다시며 두 손바닥을 비볐다.
“앞으로 저희,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거야. 우리처럼 특별한 능력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겠지.”
김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세 남자도 무척 기대가 된다며 긍정했다.
그렇게, 이렇다 할 돈벌이를 하지 못하고 있는 네 가장은 희망에 들뜬 채 정체불명의 S라는 남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