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그 누구도 아닌

by 류해인

아버지가 떠났다.


즐겨 쓰던 향수와 스킨, 로션, 칫솔부터 속옷 한 장까지 전부 챙겨 떠났다.


그렇게 철저한 아버지가 챙겨가지 않은 건, 우리 세 남매뿐이었다.


아버지 성격상, 분명히 처음 집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챙겨갈 품목들을 곱씹어 생각하며 하나하나 정리했을 텐데.


그 리스트에 우리 셋은 아무래도 끼지 못한 것 같다.


그나저나 막내 동생까지 놓고 간 건 의외였다. 아버지는 막내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대부분의 내리사랑이 그렇듯 일방적인 경향이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우리 남매 중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건 단연 막내였다.


아니나 다를까, 막내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떠나기 전날 밤까지 아버지는 막내에게 온갖 애정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아버지는 편지를 남기고 갔다.

너무 전형적인 전개여서 나는 동생들 몰래 실소를 터트렸다.


편지 내용은 더없이 간단했고, 성의와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이상했다.


**10년 후, 날 죽이러 오거라. 내 목숨을 앗아간 아이에게 내 모든 것을 남겨주도록 하마.**


난데없이 당신을 죽이러 오라니. 부모에게 들을 수 있는 가장 어이없는 말 중 하나가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편지는 3줄 더 이어졌다.


팽주는 찰스 밍거스, 종돈장에 가서 가마우지 구경하기.
악마의 방정식으로 벼려낸 필살의 계획을 방해하는 너구리.
카트라킬리스 가족의 규칙.




어제는 일란성쌍둥이인 민희와 재희가 법적 성인이 되는 날이었다.


성인이 된 지 어느덧 8년이 지난 나도 동생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일찍 귀가했다.


“축하한다. 드디어 어른이 됐네.”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두 딸을 얼싸안았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나누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요 근래에 지나친 업무에 시달려온 나로선 더없이 편안한 시간이었다.


난생처음 술을 마셔보는 동생들은 예상대로 흥분한 모습이었고, 그런 딸들을 지켜보는 아버지 역시 흥이 돋는지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다.


“그래, 우리 장남. 일은 할 만하니.”


동생들이 불콰하게 취해 식탁에 엎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아버지를 닮은 나는 멀쩡한 목소리로 조금 바쁘긴 하지만 할 만하다고, 답했다.


사실은 매우 매우 바쁘고 월급은 짜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았지만. 집안의 가장에게 힘들다고 칭얼댈 만큼 철이 없지 않았다.


“그러냐. 그럼 다행이고.”


여태 단 한 번도 술에 굴복해 본 적 없는 아버지는 동생들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식탁에 눌려 반쪽씩 드러난 얼굴과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가냘픈 등허리가 퍽 깜찍했다.


나와는 달리 아버지의 얼굴을 쏙 빼닮은 동생들은 연신 거칠게 더운 숨을 뱉어댔다.


“……저, 아버지.” 나는 민망함 뒤에 숨겨뒀던 말을 힘겹게 꺼냈다. “그,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지가 멋쩍게 웃었다.


“고생 안 했어. 난 그냥 돈만 벌었지. 알아서 잘 커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네 엄마가 고생만 하고 가서 마음이 안 좋네.”


엄마는 10년 전 여름, 지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엄마가 없다는 것. 영원히 부재중인 엄마를 입에 담는 것.


그건 남은 우리 가족에게 금기와 같았다.


나는 별안간 두근대는 심장의 세찬 박동을 인지한 채 말없이 술잔을 응시했다.


반면 아버지는 장남이 전하는 낯부끄러운 소리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성공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좋은 곳도 데려가고 좋은 것도 많이 먹이고 했었어야 했는데. 네 엄마가 연애할 적에 여행을 그렇게 좋아했어. 특히 절을 좋아했지. 참 생뚱맞지? 유명한 절이란 절은 다 가봤을 거야. 연애하기 전에는 네 엄마가 그렇게 특이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니까? 너 같으면 상상할 수 있겠어? 기껏 힘들게 데이트 약속을 했는데, 대뜸 절에 가자고 하더라고. ……뭐, 그런 엉뚱한 면이 네 엄마 매력이긴 했지.”


당신이 뱉은 말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진작에 성공했다.


아버지는 그저 바빴을 뿐이다.


그 작은 오류 때문이었을까. 아버지 입에 붙은 ‘네 엄마’라는 단어가 내게는 몹시 매정하게 들렸다.


어쩌면 아무런 예고나 상호협의 없이 엄마 얘기를 꺼내는 아버지에게 조금 화가 난 걸지도 모르겠다.


“또 언제는 이런 일이 있었어. 민희 재희 태어나기 보름 전쯤인가? 갑자기 네 엄마가 그러는 거야―”


나는 아버지의 말을 끊어냈다. “저, 아버지.”


“응?”


“엄마 얘기는 좀……, 그래요.”


“아……, 그러니?”


아버지에게 들러붙어있던 묘한 흥분이 순식간에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드디어 아버지가 돌아버린 게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다시 정독한 뒤에 나는 솔직한 감상을 전했다.


“확실히 그런 것 같네.” 둘째 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아빠답네. 아빠 엉뚱한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막내 재희는 갸우뚱 고개를 꺾었다.


편지를 마주하기 전까지 나는 그저 가만히, 커피가 든 유리잔을 든 채 앉아있었다.


어디까지나 그저 제자리에서 늘 마셔오던 종류의 커피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시는 것과 같은, 평온한 얼굴을 한 채로.


“진짜 미친 사람이 쓴 거 같은데. ……장난이겠지?”


내 옆에 나란히 앉은 민희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더니 중얼거렸다. 늦은 아침식사를 때울 요량인지 시리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민희는 분만실 간호사의 손에 먼저 들려져 졸지에 언니가 됐다.


“아빠의 몇 개 없는 장점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거짓말을 안 한다는 건데.” 제 언니와 같은 방식으로 동생이 되어버린 재희가 오물오물 씹고 있던 시리얼을 마저 삼켰다.


“……그렇긴 해.” 민희는 곧장 시인했다.


“경찰에 신고부터 할까?” 나는 당장 떠오르는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신고해서 경찰한테 뭐라고 말하려고?” 재희가 되물었다.


“뭐라고 하긴, 아버지가 사라졌다고 하지. 이상한 편지만 남겨두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당연한 내 대답에 재희는 토를 달았다.


“만약 하게 되면 실종신고 같은 걸 해야 되는데, 경찰이 언제부터 실종됐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려고? 어젯밤에 같이 술 마셨다고 하게? 아빠가 어린애가 아니고서야 신고 접수도 안 해줄걸?”


“……애매하긴 해.” 민희가 순순히 인정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가리켰다. “이게 있으니까 경찰도 수상하게 여기고 도와주지 않을까? 어쨌든 평범해 보이진 않잖아.”


민희가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수상하긴 해.”


일단 실종신고는 잠시 미루기로 했다. 재희의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평소 막내답지 않게 강단 있는 모습을 왕왕 보여주곤 했었는데, 지금과 같은 아버지의 실종―가출?―과 같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런 침착함을 보일 수 있다는 게 맏이로서 매우 놀라울 따름이다.


“그럼 일단, 이 요상한 편지부터 해석해보자. 아버지가 괜히 남기신 게 아닐 거야.” 나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의지를 다졌다.


“나는 첫 번째 줄 말고는 무슨 소린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민희는 평소 아침 습관처럼 커피를 한가득 내왔다.


“팽주, 차를 끓여 손님에게 내주는 사람을 말하는 단어래.” 재희가 부지런히 스마트폰 화면을 조작하며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찰스 밍거스는 20세기에 활동했던 재즈 아티스트네. 1979년 사망. 성격 안 좋기로 유명했다는데?”


내가 이어받았다.


“종돈장은 씨돼지를 기르는 곳이고, 가마우지는 큰 강이나 호수에 사는 커다란 새야.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더 찾아봐야 알겠지만.”


“나머지는 대충 알겠고, 마지막 줄에 카트라킬리스 가족은 또 누구야?” 민희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생소한 단어들의 향연에 심술이 난 모양이다.


“찾았어. 카트라킬리스 가족의 규칙.”


재희의 말에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막내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프랑스 작가가 쓴 소설 속 인물. 카트라킬리스 가문 사람들은 전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고 보면 유독 아버지를 배웅하는 순간이 잦았다. 아버지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바삐 움직였다.


두 동생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단순한 부동산 투자업자로 여겼지만, 나는 그것이 그리 간편한 단어로 표현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말이 좋아 투자업자지, 사실상 전국을 떠도는 유랑객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버지는 지방으로 임장(臨場)을 다녔다.


전국을 떠돌며 허물어져가는 빌라나 아파트를 찾아다녔고, 발품과 자존심과 건강을 팔아가며 분양권을 사고팔았다.


부동산 업자들 틈에 끼어 재개발이나 재건축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믿지 못할 자들 중 그나마 믿을만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아버지……, 그냥 그렇게 가시는 거예요?”


현관에서 신발을 꿰어 신고 있는 아버지의 등짝에 대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건재한 옛 장수의 널찍한 등을 보는 듯했다.


“……가야지. 잘 갔다 올 테니까. 걱정할 거 없어.”


그때 아버지는 분명 화를 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등이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독한 감기몸살에 걸려 몸져누운 두 동생들을 향한 원망은 아니고, 아픈 동생들을 내버려 두고 당신을 따라나설 만큼 냉정하지 못한 나를 향한 서운함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당신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그날은 엄마의 첫 기일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엄마가 잠든 봉안당으로 출발했어야 했다.


차로 두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거리인지라 아침 일찍이 집을 나설 계획이었으나, 돌연 민희와 재희가 끙끙 앓는 탓에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동생들의 빨갛게 익은 얼굴을 본 아버지는 어서 병원부터 가보라는 말과 함께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결국 점심때가 다 지나서야 동생들은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고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동생들이 곤히 잠드는 것까지 확인한 아버지는 신발장에 서서 내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동생들 잘 챙겨주고 있어.”


아버지는 큼직한 몸을 수그리고 신발끈을 부지런히 묶었다.


이날만을 기다려왔단 듯이 새 신발을 꺼내 신는 아버지의 등에는 내가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신발끈을 다 묶은 세 남매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은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 망설임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




평소 독서를 즐겨하는 민희가 급히 책을 사 읽었다. [상속]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제목마저 기묘하게 다가왔다. 독서를 마친 그녀는 현 사태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혼란과 좌절을 야기할 뿐이었다.


“책은 일단 재밌어. 처음 보는 스포츠도 나와. 방금 유튜브로 영상 찾아봤는데 되게 희한해. 중간중간 감동적인 부분도 있고 추천할 만한 책이야. 뭐, 그건 그렇고, 카트라킬리스 가문 사람들, 참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했는데? 투신부터―”


“안 듣고 싶어.”


재희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었다.


“왜? 기껏 책까지 읽었구만.” 민희가 툴툴댔다. “이 책에 힌트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긴 하지…….”


나는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편지를 해석할 별다른 단서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단서는 차치하고 어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짙은 안개로 가득했다.


그때, 재희가 나섰다.


“각자 생각해 보고 이따 다시 모여.”


편지 내용을 종이에 옮겨 적은 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분야를 막론하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해야 할 때, 독립된 공간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 종이에 적어 내려갈 것.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연결하고, 비어있는 것들을 채울 것.


그것이 우리가 아버지에게 배운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아버지는 세 남매를 그렇게 가르쳤다.


나는 차근히 단어들을 배열해 나갔다. 그리고 그 틈을 사유의 부산물들로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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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 시간 / 죽이러 찾아오라는 아버지 / 시간과 죽음? / 아버지의 목숨 / 아버지의 모든 것 / 부동산? 토지? / 상속?


차를 대접하는 찰스 밍거스 / 다도? 재즈? 차와 음악? / 씨돼지 틈에 있는 가마우지 / 포유류와 조류 / 돼지는 하늘을 보지 못한다?


악마의 방정식 / 필살의 계획 / 악마의 계획 / 악의 방정식 / 너구리 / 악마를 능가하는 너구리? / 사악한 너구리?


카트라킬리스 가족의 규칙 / 가족 / 비극의 유전자 / 자기 파괴 / 운명? 비극? / 벗어날 수 없는 무언가? / 피? / 피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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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분명 당신을 죽이러 오라 했고, 그리 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는 보상까지 제시했다.


그렇지만, 어디로 오라는 말 하나 없는 매우 불친절한 약속이었다.


이어진 문장은 그 의미는 고사하고 인과와 논리조차 따라갈 수 없었다.


하나의 문장으로 엮어내기에는 터무니없는 조화라고 할까.


‘분노의 재즈맨’이라는 호전적인 별명을 가진 찰스 밍거스가 차분히 앉아 다도에 따라 차를 내오는 장면은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고, 돼지를 기르는 곳까지 가서 가마우지를 구경해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악마의 방정식은 무엇이고, 난데없는 너구리는 왜 등장하는지. 또 화룡점정 격이라 할 수 있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간 아버지라는 인간에 대해 상당 부분 이해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자만 중의 자만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만 파악하고 있었다는 일종의 자책마저 들었다.


얼굴과 이름과 목소리를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의 고향을 알고, 살고 있는 집의 주소―어젯밤까지―를 알고, 직업을 안다.


잠버릇을 알고, 식습관을 알고,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안다.


어떤 옷을 즐겨 입는지, 어떤 화장품을 바르는지,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 모조리 알고 있지만 아버지의 생각만큼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라는 인간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시간 후, 나는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방을 나가 동생들을 마주했다.


동생들의 표정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을 떠났다.


우리 세 남매는 그 사실을 차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철저히 배제했다.


아버지는 그저 집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난 것뿐이라고. 단순한 탈출일 뿐이라고.


물리적인 거리를 둬 벗어나지 않고서는 차마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상태였던 게 분명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무엇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버지를 밀어냈는지 또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남겨진 우리 세 사람이 서로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우리를 남매라는 인연의 끈으로 엮어낸 장본인들은 그렇게 모두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아빠는 왜 집을 나간 걸까?”


민희가 중얼거렸다. 처음 아버지의 소식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울적해보였다.


“맞아. 우선 그것부터 생각해 보는 게 먼저야.” 재희가 동의했다. “왜 나갔지? 도대체 왜?”


함부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행했던 자기 방어적 선언과는 별개로, 우리는 아버지의 <탈출> 그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분명 아버지도 그걸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요상한 편지와 함께 사라질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쯤 되니까, 편지는 그냥 속임수라는 생각도 들어.” 나는 새로운 의견을 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 정도로 감을 못 잡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돼. 아버지가 분명 우리 셋을 위해 남긴 편지일 텐데.”


“일 리가 있어.” 내 의견에 재희는 공감하는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와 연관된 건 전혀 없어 보여.”


“……혹시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왜 영화에서 보면―”


민희의 말을 자르고 재희가 끼어들었다.


“이를테면 불치병, 시한부, 뭐 그런 거?”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급하게 떠날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아픈 사람이 향수에 전기면도기까지 챙겨가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아? 아빠가 그렇게 외모에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잖아.”


이어지는 막내의 반박에 나도 동의했다.


“맞아. 나는 아버지가 평상시 모습 그대로 떠났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집에서 아버지 물건만 통째로 사라졌잖아.”


“……그건 또 그래.”


거의 우는 것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버지가 손에 품고 간 것에 대해 생각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가전제품부터 신발 하나까지, 이 집에 있는 대부분이 아버지 돈으로 구입한 아버지 소유나 다름없었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손길이 탄 물건들만 품었다.


맨손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현재의 풍족한 삶을 일궈온 아버지로서는 한없이 조촐한 짐이면서도 어찌 보면 넉넉하다 할 수 있었다.


왠지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표정을 무리 없이 상상할 수 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은 직장인의 그것처럼 몹시 편안하면서도 산뜻하고, 애초에 돌아가기로 약속되어 있는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고 마땅한 아버지의 표정이 생생히 그려졌다.


잠시 머물다 간, 우리들과 함께 지낸 집은 한낱 경유지에 불과하다는 듯이 아버지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은 굳이 아버지를 걱정하는 사치 같은 건 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는 분명 당신의 의지로 떠났고, 거기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듯했다.


빠짐없이 챙겨간 물건과 불친절한 편지가 하나의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자식들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 하며 짐작해 보는 것으로 의견을 굳혔다.


체력적인 여건만 된다면 여생을 여행자로 살기에도 충분할 만큼의 자산을 보유한 아버지가 아니던가.


유일한 걱정이라면 살인을, 그것도 당신의 목숨을 논한 아버지의 머릿속이었다.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나온 편지 속 문장 중 첫 번째와 마지막 것만 한데 섞어 해석해 보면 끔찍한 결론이 도출된다.


아버지가 염두에 둔 자살―카트라킬리스 가문의 규칙―은 자식들의 손을 빌린 형태―날 죽이러 오거라―라는 것.


아아, 편지는 잊자.


“……나는 좀 잘래. 머리 아파.”


민희의 말에 나와 재희도 말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각자 방으로 향했다.


이 널찍한 집에서 오롯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각자의 방뿐이라는 듯이 우리는 기를 쓰고 그곳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벌러덩 누운 나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우쳤다.


나는 다급히 휴대폰을 들고 아버지 번호를 입력했다. 무리 없이 신호가 갔다.


“…….”


일정한 간격으로 귀를 때리는 신호음. 신호음이 공허해질 때마다 아버지와 서서히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놓고 간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 아버지가 집에 고스란히 두고 간 것.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끔 나를 묘한 눈빛으로 볼 때가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할 때면 나는 열심히 배운 구구단을 못 외는 멍청한 아이가 된 것 같기도, 당근과 피망을 골라내고 먹는 미운 아이가 된 것 같기도, 등하굣길에 바지 지퍼와 가방 지퍼를 열고 다니는 칠칠치 못한 아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그 눈빛은 더없이 다정했지만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가만 보면, 나를 향한 아버지의 눈빛에서 필요 이상의 것이 담겨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내게 보인 감정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정량이었다.


넘어져 무릎이 까지거나 선생님에게 혼나 꾸중을 들었을 때, 친구들과 싸워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아버지는 그저 또렷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괜찮아?” 하고 물을 뿐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면 아버지는 표정만큼이나 분명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로 해야지.”라고만 덧붙였다.


부연설명이나 따스한 위로와 응원은 없었다.


그 또 한 번의 단호한 과정을 겪은 후에야 내 입에서는 “괜찮아요.” 하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무엇이 괜찮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태평하게 낮잠이나 자고 있다니.


한결 개운해진 컨디션과 죄책감을 느끼며 거실로 갔다.


동생들이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살짝 부은 얼굴들을 보니 모두 나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동생들이 만들어놓은 빈자리에 가 앉았다.


“잠깐 자고 일어나니까, 머리가 맑아졌어.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된 느낌이야.”


재희가 말했다. 뱉은 말과 달리 얼굴만큼은 여직 잠 속을 헤매고 있다는 듯이 멍했다.


막내의 말에 민희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응, 나도 그래.”


“근데, 여전히 생각나는 건 없어. 아직도 모르겠어. 아빠가 왜 집을 나갔는지.”


“응, 그것도 그래.”


민희의 하나마나한 실없는 대답을 들으며 나는 다시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상념으로 머릿속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TV만 꺼져있다 뿐이지 여느 주말과 다르지 않았다.


두 동생들은 신기하리만치 TV를 즐겨봤다.


그래서 나도 봤다.


얼굴도 모르는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는 음악 방송, 유치한 대사와 뻔한 연출이 판을 치는 로맨스 드라마,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출연자들이 알 수 없는 유행어를 지껄이는 예능프로그램 등등 무엇 하나 가리지 않았다.


구태여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다정한 표정을 주고받지 않아도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내가 내세운 이유라면 이유였다.


동생들이 웃으면 따라 웃었고, 울면 같이 울적한 표정을 만들어내곤 했다.


순간, 가족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과거의 내가 행했던 계산적이고 그래서 더 순박해 보이는 모습들을 떠올리자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동생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아, 갑자기 웃긴 생각이 나서.”


나는 멋쩍게 웃으며 변명하듯 말했다.


반면, 동생들은 웃지 않았다.




“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야지.”


엄마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여덟 살의 나는 밤말을 주워듣는 쥐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쭈뼛쭈뼛 인사를 건넸다.


“안녕? 네가 희성이구나? 그렇게 용감하고 의젓하다는.”


“낯을 좀 가려요. 친해지기 힘들 거예요.”


엄마는 아무런 반응도 못한 채 얼굴만 붉히고 서있는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다 그렇지 뭐. 앞으로 천천히 친해지면 되니까. 시간은 많잖아?”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이 느긋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좁지만 편안한 나와 엄마만의 집으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는 차단되어 있고, 평화로운 숨소리만 가득한 곳. 그 따스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버지와 처음 인사한 날이 집을 떠나게 될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늘부터 여기가 희성이 집이야.” 하고 현관에 나란히 선 아버지가 내 작은 등을 살짝 밀며 말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절망했다.


집이 너무 넓었기 때문이다.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집이 마냥 싫었고, 다시는 엄마 옆에 꼭 붙어 지낼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애석하게도 어린 내 예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엄마는 ‘희성 엄마’가 아니라 ‘미현 씨’가 되어버렸고, 같은 해 여름에 동생들이 태어나자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일 순위가 아니었다.


김희성, 전민희, 전재희.


동생들과 나눠가진 이름이 단 한 글자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여기는 희성이가 쓸 방이야. 구경 좀 하고 있어.”


엄마는 한없이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내 방을 소개해주었다.


넓은 집에 어울리는 넓은 방이었다.


한눈에 봐도 푹신해 보이는 침대와 베개, 튼튼한 책상과 의자, 책꽂이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까지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묘한 수치심을 느꼈다. 방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이곳은 감히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원래 있던 곳으로 냉큼 돌아가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이 시선을 어떻게 견뎌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냉정한 첫 조우를 마친 나는 거실로 나가 엄마의 손을 꼭 붙잡았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겨우 자각했을 때, 내 머릿속을 강타한 첫 번째 생각은 더 이상 이 집과 나는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과 나를 엮어두었던 누름돌이 사라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웠을 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더 이상 이곳을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편한 사람이 가장 불편한 장소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한 사람의 부재가 한 장소의 감상을 역전시키는 기이한 기적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배웠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집과 조화를 이루며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엄마의 부재로 말미암아 줄곧 시달려왔던 지독한 외로움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나는 일종의 열패감을 통감했다.




“……그래서,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소파에 앉아있던 재희가 탓하듯 말을 꺼냈다.


“뭐라도 하긴 해야지.” 민희가 동조했다. “오빠는 계획 같은 거 없어?”


“응?”


“그러고 보면 어젯밤 늦게까지 아빠랑 얘기했던 건 오빠잖아. 나랑 언니는 취해서 일찍 잠들었으니까.”


재희에 이어 민희가 덩달아 쏘아붙였다. “맞네. 아빠가 분명히 뭐라도 말했을 거 아니야. 가만히 있지만 말고 생각 좀 해봐.”


평소의 속도와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는 대화가 나는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오빠라는 사람이 한참 어린 동생들 앞에서 허둥지둥거리는 꼴이 퍽 우스웠을 것이다.




이십 년 전, 그때는 모든 물건들이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책장만 넘겼다 하면 손을 베이는가 하면, 책상 밑으로 떨어진 지우개를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다 하면 머리를 찧었다.


이 집과 가장 무관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나라는 존재일 거라고 여겨왔다.


그렇게 가슴 한 켠에 삐뚤어진 애정이 자라나는 와중에도 나는 엄마의 두 번째 결혼생활에 충실히 동참했다.


엄마만큼은, 이번만큼은 행복해야 할 테니까.




아버지가 떠나고 우리 세 남매가 잃게 될 것은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우리는 아버지라는 보호자를 잃을 것이고, 나아가 막내 재희의 경우 아버지와 함께했던 짧지만 한없이 다정했던 산책을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민희는 아버지와 다니던 도서관에서의 고요하지만 충만했던 시간을.


마지막으로 나 같은 경우 매일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 서로를 향해 건네곤 했던 고생했다는 심심한 치하와 응원의 말 한마디와 아득하게 멀어져야 할 것이다.


그날 밤, 우리 남매는 널찍한 부엌 식탁에 둘러앉았다.


동생들도 생각에 잠겨있는지 줄곧 침묵이 이어졌다.


작디작은 식탁 위에 대롱 매달린 펜던트형 조명이 뿜는 주황빛이 껌껌한 집 곳곳으로 곧장 뻗어나갔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동생들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세상사를 초월한 듯 태평한, 마치 지금 이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 살아온 것처럼 의연한 표정이었다.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편안함의 말로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방으로 돌아왔다. 동생들은 내게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어색한 자세로 어느새 불편해져버린 침대에 걸터앉은 뒤에 나는 아버지가 무사히 집에서 벗어났기를, 바라 마지않던 그 탈출이 성공적이었기를 진심을 담아 염원했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그에게 속삭였다.


“아버지, 저는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