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소떡소떡

by 류해인


나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


엄마는 나를, 나는 엄마만을 보며 지냈다.


엄마의 얼굴은 도화지 같았다. 도화지처럼 하얗고 비어있었다.


좁은 방에 마주 보고 앉아 멀뚱멀뚱 엄마를 보고 있으면 무엇이든 그려 넣고 싶었다.


저 높이 떠있는 비행기, 찌르찌르 우는 이름 모를 작은 새,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나무.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멀뚱하게 앉아 비어있는 엄마의 얼굴을 봤다. 그러면 더디긴 하지만 착실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아들, 착실한 게 최고야. 뭐든 착실하면 좋은 거야.


하고 언젠가 엄마가 해주었던 말이 생각날 때마다 시간은 좋은 것이라고, 어떤 일이 있어도 착실하게 1초, 다시 1초, 또다시 1초, 언제든 1초씩 흘러가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렇게 나는 언제까지고 도화지 같은 엄마의 얼굴만을 보며, 착실하게 일하는 시간 안에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간만큼이나 엄마도 착실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고 말았다.


엄마는 움직여야 했다. 엄마는 바빠야 했다.


가끔은 시간보다 착실하게 움직이는 엄마를 보며 엄마는 좋은 거라고, 착실한 시간은 좋은 것이고, 엄마는 시간보다 착실하니 엄마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좋은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엄마를 그렇게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침 일찍 방에서 나가 저녁 늦게 돌아왔다.


그렇다고 그 시간 동안 엄마를 볼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나도 마음만 먹고 방을 나서면 언제든지 엄마를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밖에서 본 엄마의 얼굴은 내가 알던 그 도화지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여전히 하얗지만 비어있지 않았다.


엄마는 웃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얼굴이 마냥 신기해 멀찍이 서서 그림이 그려진 엄마를 지켜보곤 했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뱃속에서는 뭔가 움찔거렸다. 무척이나 기분 나쁜 것이었다.


오늘도 나는 그런 엄마를 보고 있었다. 그때,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기섭이? 기섭아!


-어... 어...


당황할 때면 새어 나오던 말버릇도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들켜버렸다.


기섭아,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느라 엄마는 얼굴 가득 머금고 있던 웃음을 저만치 날려 보낸 듯했다.


아, 우리 엄마네. 하고 중얼거리며 나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에게서는 달달하면서도 찐득한 기름 냄새가 났다.


-여긴 어떻게 왔어? 엄마가 조금만 이따가 방으로 간다니까.


거짓말.

엄마는 여태 단 한 번도 그런 다정한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밖에 있으면 가끔 거짓말을 하곤 했다. 엄마가 말하는 ‘조금만’은 해가 지고 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열댓 번은 들려왔을 때였다.


-엄마, 나 배고파. 밥 먹자.


나는 부러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목소리가 엄마를 안절부절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나는 가끔씩 그렇게 했다.


-벌써? 안 돼. 엄마 지금 일하잖아. 이따 먹자. 응?


-아니야, 사실은 안 배고파.


그렇게 말하곤 헤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는 밝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엄마, 이따 봐.


-응? 그래, 기섭아. 티비 보고 있어. 이따 방에서 봐.


엄마는 항상 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집이 아니라 꼬박 방이라고 말했다.


내겐 집이 없었다. 오직 방이 하나 있었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덟 살이다.


난 엄마가 하라는 대로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엉엉, 꺼억꺼억, 하고 울었다.


처음에는 연극놀이를 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쥐어짜냈지만, 막상 울고 보니 정말 슬퍼졌다.


눈물은 눈물과 친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래서 더욱 세차게 울어버렸다.


눈물이 데리고 온 눈물을 차례차례 내보냈다. 그렇게 세차게 울고 보니 점점 더 슬퍼졌다. 그래서 더더욱 세차게 으아앙, 하고 울었다.


그때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눈물은 눈물 말고도 친구가 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그런 나를 옆에 세워둔 채 엄마는 여러 어른들 앞에서 남부끄러운 가정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하여… 영원한 동반자라 여긴 남편은 아이의 돼지저금통까지 탈탈 털어 새파랗게 어린년과 벌건 대낮에 도주… 그래도 애 하나 바라보며 살아보려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보았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러다 어찌어찌 이곳 □○휴게소로 물 흐르듯 흘러들어왔는데… 우여곡절, 다사다난 끝에 무사히 이곳에서 일자리도 구했는데… 등 기댈 곳이… 아, 물론 저는 괜찮은데, 어디까지나 저희 아이가… 아직 여섯 살… 해서 잠시 머물 곳이…


엄마는 평소와 다른 목소리와 처음 듣는 단어들을 마구잡이로 내뱉었다.


엄마도 나처럼 연극을 하는구나, 나는 생각했다.


눈물 젖은 사연을 들은 휴게소직원들은 훌쩍훌쩍, 세상에 저런 일이… 어머… 어쩜 좋아… 아이고… 이제 여섯 살밖에 안된 새파랗게 어린놈이 무슨 고생이야… 와 같은 말들을 해줬다.


저는 여섯 살이 아니고 여덟 살인데요, 하고 고쳐 말하려다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엉엉 울어재끼는 불쌍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진 않았다. 그렇게 엄마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와 한 약속을 지키려 무척 애를 썼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야 엄마와 오래오래 같이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아주 싫어한다.


아빠가 그랬다.


어쨌든 그런 적절한 역할분담 끝에 우리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모녀로 보이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휴게소 내 직원들이 사용하는 작디작은 단칸방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즈음이 엄마와 내가 가장 맘 편히 지낸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휴게소에 있는 모든 직원들은 엄마에게 한없이 친절했고, 나를 한없이 불쌍히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를 보면 웃었고, 나를 보면 울었다. 아무튼 그랬다.


온몸에 긴장이 풀린 나머지 엄마는 몸살이 나버렸다.


그런 엄마를 휴게소 직원들은 정성껏 보살펴주었고, 매 끼니마다 내게 맛있는 음식과 간식들을 대접해주었다.


이런 음식들만 먹을 수 있다면, 평생이고 불쌍한 여섯 살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고,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는 부른 배를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낮으로 기름진 간식거리와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들을 먹어서인지, 볼살이 포동포동 올랐다.


엄마도 무사히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엄마는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아무런 조짐이나 예고 같은 것도 없었다. 나한테 미리 말해주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는 잃었던 체력을 회복했고,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졸지에 나는 좁은 방에서 홀로 살아가는 여덟 살 먹은 여섯 살짜리 꼬마가 되었다.


엄마는 설거지를 했다.

요리가 익숙지 않아서인지, 일이 고되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엄마가 떠맡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설거지는 엄마의 일이 되었다.


부쩍 키가 큰 엄마에게 주방 싱크대는 터무니없이 낮았다.


엄마는 다리를 벌린 채로 고개를 숙여 어깨를 한껏 웅크린 모습으로 그릇을 닦았다.


종일 오염된 음식 그릇들과 씨름하는 엄마를 뒤로 한 채, 나는 늘어지게 잠을 잤다.


좁고 어두운 방이니만큼 잠을 자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안에 있으면 언제까지고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지가 한가득 들어찬 어두운 방에 누워서 역시나 껌껌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태 알지 못한다.


아마 외로움과 비슷한 무엇이었다고 추측할 따름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외로움과 그 친구들은 혼자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엄마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엄마도 외롭다는 말을 가끔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혼자였던 적이 없는데, 이상했다.


엄마의 종아리가 팅팅 부어갈수록 엄마의 손은 일에 적응해 나갔고, 설거지에서 조리파트로… 맥반석오징어를… 떡볶이와 순대를… 호떡을… 핫도그와 후랑크 소시지를… 통감자를… 닭강정을… 호두과자를… 담당하게 되었다.


나 또한 휴게소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휴게소건물과 접해있는 작디작은 공원에 마련된 운동기구들을 장난감 다루듯 만지작거리며… 화장실입구 옆에 있는 작은 오락실을… 트로트테이프와 등산용품을 팔던 이모 주변을… 자판기 주변을… 주유소를… 이용객들이 앉아있는 야외테이블을 들락거리며 밥때가 조금이라도 빨리 와주길 기다렸다.


-어, 기섭이 왔니?


오후 2시가 가까워졌을 때 간식코너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면 이모들이 반갑게 맞아주고는 했다.


네, 안녕하세요. 하고 있는 힘껏 웃으며 인사하면 그걸로 내 역할은 다한 것이었다.


요즘 나는 힘들게 일하시는 홀어머니 밑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자란 듬직한 어린이 역할에 심취해있다.


우리 엄마는 당연히 고된 생활 속에서도 어린 아들만큼은 건강히 키워내려 애쓰는 홀어머니 역할이었다.


-아들, 왔어? 밥 먹자.


빳빳이 굳은 허리를 두드리며 앞치마를 벗는 엄마가 몹시도 지쳐 보였다.


엄마는 은박지에 감싼 통감자 여섯 알과 케첩이 두어줄 뿌려져 있는 핫도그를 건네주었다.


모두 차갑게 식어있었다. 식어빠진 감자를 질겅질겅 씹으며 나는 끊임없이 오고 가는 자동차들을 눈에 담았다.


고속도로를 쌩쌩 겁 없이 달리다가도 때가 되면 덜컹, 덜컹, 과속방지턱을 서너 개쯤 지나서 화장실이 어디 있나… 하는 움직임으로 스르륵… 주차장을 배회하고는 끼익. 하고 가능한 한 가까운 자리에 주차하는 차들을 보며 마냥 신기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엄만 밥 먹었어?


엄마는 벤치에 앉아 색색거리는 거친 숨만 내뱉고 있었다.


-엄마는 아까 일하면서 먹었어. 기섭아, 우리 이따 저녁에는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먹고 싶은 거 없어?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먹을까?


엄마가 말하는 ‘반대편’이란, 말 그대로 도로 너머 하행 휴게소를 말했다.


-먹고 싶은 거? 글쎄... 한번 생각해볼게.


-그래, 일단은 이거 먹고.


엄마는 이쑤시개를 이용해 내 입에 통감자 하나를 넣어주었다.


-감자가 살도 안 찌고 몸에도 좋은 거야. 알지?


그럼 여기 이모들은 감자 안 먹고 뭐 먹어? 하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궁금한 것들을 전부 알 수는 없다고, 가끔은 궁금한 채로 사는 게 좋은 거라고 엄마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다. 엄마가 예전에 한 말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때, 잘만 하면 우리 엄마 두 명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풍채를 소유한 정숙 이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기섭이, 너 또 이모가 준 우유 안 먹었지? 자꾸 이럴래? 우유를 안 먹으면 키가 안 커요. 빨리 커서 고생하는 엄마 도와줘야 될 거 아니야~


또 궁금한 게 생겨버리고 말았다. 키가 큰 것과 고생하는 엄마를 도와주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내 키가 커지면 엄마가 고생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엄마는 좀 오래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이따 방에 가서 마저 생각해보기로 했다.


-오늘만……


대답하려는 순간, 정숙이 이모가 두 손을 허리라고 추정되는 곳에 척 걸치고 내 말을 가로챘다.


-쓰읍! 입에 있는 거 다 먹고!


티 안 나게 얼굴을 찡그리며 우적우적 입 안에 남아있는 음식물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오늘만 안 먹은 거예요~ 그리고 이모는 맨날맨날 흰 우유야. 맛없는 거만 나한테 주고!


-요놈 봐라, 이거? 지금 짜증내는 거야? 이모가 지 생각해주는 것도 모르고.


-에베베베~ 짜증낸다~ 짜증이다, 짜증이야~


내가 방방 뛰며 놀려대자, 정숙이 이모 특유의 장난스러운 얼굴이 나왔다.


그때 내내 가만히 앉아 있던 엄마가 갑작스레 내 어깨를 꽉 누르며 말했다.


-저기, 언니… 우리 애가 말만 그렇게 하는 거예요. 평소에 언니 얘기를 얼마나 많이 하는데요. 조기섭! 이모한테 죄송하다고 해. 얼른!


엄마의 표정이나 행동으로 봐서는 내가 크나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았다.


엄마 눈치를 살피며 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외려 정숙이 이모가 두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아니야 아니야. 기섭 엄마, 나도 같이 장난치는 거야. 기섭이랑 평소에 이러고 많이 놀았어. 몰랐구나?


-예? 아… 정말요?


-그래~ 엄마도 참~ 내가 그렇게 버릇없는 애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방금 한 것처럼 툴툴대다가 도망가면 이모가 조기섭, 거기서! 하면서 막 쫓아오는 척 한단 말이야.


나는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투덜댔다. 절절매는 엄마의 얼굴이 평소보다 비쩍 말라보였다.





나는 섬에 살고 있다.

바다 대신 사방이 고속도로로 둘러싸인 섬.


이 섬에 방문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탈 것을 타고 오는 것이다. 자그마한 경차, 번쩍번쩍한 외제차, 여봐란듯이 커다란 화물차, 시끌벅적한 관광버스, 무엇이든 타고 오면 된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나처럼 버려지는 것이다. 그것이 아빠에게서든, 엄마에게서든, 할머니, 할아버지, 누구든 관계없다.


그저 이곳에 버려지기만 하면, 그래서 남겨지기만 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방법으로 이곳을 찾아와서 같은 방법으로 나간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첫 번째 방법으로 와서 두 번째 방법으로 머무르게 된 경우에 속한다.


엄마는 오늘도 호떡을 굽고, 떡볶이를 만들고, 핫바를 튀겼다.


나는 오늘도 느지막한 아침에 일어나 방을 나섰다.


눈치를 살살 봐가며 2층 사무실에 들어가 도희 누나가 주는 딸기 맛 요플레를 먹었다.


-그렇게 맛있어?


허겁지겁 퍼먹는 나를 보며 도희 누나가 물었다.


엄마와는 달리 도희 누나에게는 항상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응! 난~ 여기서 먹는 것 중에 누나가 주는 요플레가 제~일로 맛있어.


하며 나는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처럼 급하면서도 입을 조그맣게 벌리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귀엽다고 해주었다.


도희 누나를 비롯한 휴게소의 모든 직원들은 나를 여섯 살로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은 말투가 필요했다.


실제보다 2년을 덜 살아온 척하는 건,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기섭아, 아침은? 먹었어? 누나가 다른 것도 좀 줄까?


도희 누나에게는 엄마한테는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예쁘게 화장한 매끈한 얼굴과 좋은 향기가 나는 멋진 옷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느긋한 모습이었다.


전혀 급할 것이 없어 보였다. 자신에게는 무언가를 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자각을 가진 사람 특유의 여유로움 같은 것이 몸에 배어있었다.


반면, 엄마는 항상 무언가에 뒤를 밟히는 사람처럼 다급했다.


무섭고도 끈질긴 것으로부터 쫓기기라도 하듯.


-맛있는 거 있어요?


일부러 나는 고개를 빠짝 들어 누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면 누나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살짝 웃으며 내 두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역시 엄마와는 다르게 보드라운 손이 느낌이 아주 좋았다.


-신 주임, 잠깐만.


도희 누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팀장인가 뭔가 하는 아저씨였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툭하면 날 야단쳤다.


-아, 네.


누나는 날 보며 찡긋 미소 짓고는 배불뚝이 아저씨 자리로 가버렸다.


심술이 치민 나는 곧장 사무실을 나왔다.


오늘은 또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 평소처럼 화장실 옆에서 하이샵을 운영하는 덕진이 이모한테로 갔다.


이모는 푸근한 인상답게 항상 친절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재미난 물건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잘 흘렀다.


-이모~ 저 왔어요.


이모가 큰맘 먹고 마련했다는 큼직한 스피커에서는 정체불명의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목소리였지만 누구의 목소린지 도무지 모르겠다.


-기섭이?


덕진이 이모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도희 누나만큼은 아니어도 보는 사람의 기분이 좋아질 만큼 근사한 웃음이었다.


-구경해도 돼요?


-그럼~ 대신 이모는 잠깐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가게 좀 봐줄래?


-네, 물론이죠. 다녀오세요.


이모는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하이샵에는 정말이지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


이모 말로는 팔리는 물건들이라 해봤자 트로트 음반 몇 개, 자동차 워셔액, 건전지, 챙이 넓은 모자가 전부라고 했다.


나는 이모의 지정석인 자그마한 낚시의자에 앉아 플래시를 만지작거렸다.


예전에 이모가 선물해 준 고급 플래시였다. 무려 세 가지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이 플래시에 <에반 블루>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다.


깜박…깜박…깜박…


에반은 푸른색 불빛을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했다.


아직은 어둠이 내리지 않아 파란빛이 환하진 않지만 미약하게나마 대리석 바닥을 비췄다. 딸깍, 하고 나는 버튼을 눌렀다.


…깜박깜박…깜박깜박…깜박깜박…


두 번씩 빠르게 번쩍거렸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몇몇 사람들은 눈이 부신 듯 눈을 찡그리며 지나갔다.


딸깍, 다시 버튼을 눌렀다.


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


마구 번쩍였다.


헤 입을 벌린 채 나는 바닥에 그려지는 빛나는 얼룩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니 눈동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란 점 하나가 생겨났다. 내가 어디를 보든 파란 점이 따라붙었다.


-얘, 꼬마야.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주위를 둘러봤다가 꼬마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에반만큼이나 튼튼해 보이는 아저씨였다. 편의성만을 강조한 옷차림과 숨을 쉴 때마다 어김없이 풍기는 찌든 담배냄새, 미세하게 톡 쏘는 땀 냄새가 아저씨의 직업을 알려주었다.


-안녕하세요, 화물차아저씨.


-뭐야? 내가 화물차 운전하는 거 어떻게 아니?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는 거 봤어요.


드넓은 주차장 어딘가를 아무렇게나 가리키며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차마 냄새로 알아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그 후레쉬 여기서 파는 거니?


아저씨는 정감 있는 어투로 그렇게 말하고는 씨익 웃었다.


화물차를 운전하는 여느 아저씨와 같은 능란하고 당당한 웃음이었다.


-이거요? 아마 그럴걸요? 아닌가? 잘 모르겠어요. 저도 선물로 받은 거예요.


그때 볼일을 마친 덕진이 이모가 돌아왔다.


-손님,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아, 사장님이세요? 이 꼬마애가 가지고 노는 거랑 같은 게 있을까요?


이모는 내 손에 들린 에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괜스레 불안해진 나는 에반을 살며시 몸 뒤로 숨겼다.


이모는 휙 고개를 돌리고 화물차아저씨를 보며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내가 닭강정을 땅에 떨어트렸을 때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아이고, 어쩌죠? 같은 제품은 없는데. 대신 저것보다 훨씬 좋은 제품이 있어요. 한번 보실래요?


이모는 부랴부랴 가게 안으로 들어가 내 것과는 다른 새로운 플래시를 보여주었다. 에반보다는 덜하지만 꽤 멋지게 생긴 것이었다.


화물차아저씨는 몇 번이고 직접 조작해보더니 다시 이모에게 건네주었다.


-좋기는 한데… 불빛 색깔이 마음에 안 드네요.


거짓말을 했을 때처럼 나는 불안하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볼일이 급한 척 도망갈까 하다가, 어른들이 있는데 먼저 자리를 비우는 건 실례라는 엄마의 말이 뒤늦게 생각나 그러지 않았다.


내 손안에 얌전히 있는 에반을 꼬옥 쥐며 나는 한시라도 빨리 아저씨가 돌아가길 바랐다.


가게에 전시된 플래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덕진이 이모는 무척 상심한 듯 보였다.


따뜻한 호두과자는 다 팔리고 식은 호두과자만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얼굴 같았다.


그런 이모의 속마음을 알 리가 없는 화물차아저씨는 다시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얘, 꼬마야. 그 후레쉬, 이 아저씨한테 팔면 안 될까? 좀 유별나 보일 수도 있는데,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래. 아저씨가 비싸게 살 테니까, 그 돈으로 다른 장난감 사서 놀면 되잖아. 안 그래? 여기 보니까 재밌는 것들도 많은 거 같던데? 어때?


아저씨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오만 원짜리 두 장을 건네주었다.


나는 눈앞에서 펄럭이는 지폐를 차마 받을 수 없었다.


에반은 덕진이 이모가 선물로 준 것이었고, 무엇보다 팔아넘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내 파트너였다.


-이 돈이면 훨씬 더 멋진 걸로 두 개는 살 수 있을 텐데~ 아저씨한테 팔아. 아저씨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게 갖고 싶거든. 안 될까?


-안 되는 건 아닌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안 되는 게 아니면 아저씨한테 팔아도 되는 거네? 그치?


-그런데… 그렇다고 이게 또 되는 건 아니고… 사실 얘는……


그때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덕진 이모가 에반을 가로채고는 버럭 화를 냈다.


-얘는! 이게 뭐 그리 대단한 물건이라고 꽁꽁 싸매. 이리 내 얼른! 자, 여기 있어요. 아마 배터리 갈아 끼운 지 얼마 안 돼서 오래 갈 거예요. 됐죠?


-예? 예, 여기요.


화물차아저씨가 건네는 돈을 빼앗듯이 받아든 이모는 그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 꼬마야. 어쨌든 고맙다. 아저씬 이만 갈게?


그렇게 화물차아저씨는 파랗게 빛나는 에반을 데리고 가버렸다.


나는 아까와 같은 자세로 앉아 아저씨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이제 에반과 같이 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오긴 했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엄마가 우는 건 나쁜 거라고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잘 가, 에반.


덩치 큰 화물차아저씨 손에 들린 에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에반이 들려있던 손이 허전했다.


반면 덕진이 이모는 가게 안쪽에서 뭔가를 분주히 찾고 있었다.


-이모~ 제가 도와드릴까요?


-어? 어, 아니야 아니야. 여기 없나 보다.


이모는 평소와는 다르게 무척 어색하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화장실에 자리가 없다고 엄마에게 말할 때 내 목소리와 비슷했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방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기섭아~ 이거 봐라~ 엄마가 기섭이 좋아하는 거 가져왔다~


플래시였다. 푸른색이었던 에반과는 달리 짙은 주황빛이었지만 훨씬 환하게 빛났다. 검정 몸체에 빨간색 물결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이 아주 멋졌다.


-덕진 이모 알지? 덕진 이모가 기섭이 주라고 하시던데?


-우와! 진짜? 근데 왜?


-아들도 몰라? 아들이 다 알 거라고 이모가 그러셨는데? 그나저나 아들, 손전등 좋아했어? 엄만 몰랐네. 우리 아들은 손전등을 왜 좋아하려나~?


-번쩍번쩍하잖아!


나는 내 새로운 파트너를 꼭 쥐고 엄마와 나란히 누웠다.


번쩍번쩍.


파트너는 열심히 빛을 뽐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하나 사줄 걸 그랬나? 왜 사달라고 안 했어, 응? 손전등 그거 얼마나 한다고.


순간 낮에 화물차아저씨가 내보인 오만 원 지폐 두 장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두 장을 손에 넣기 위해 엄마가 팔아야 할 떡볶이와 통감자가… 맥반석 오징어와 쥐포가 생각났다.


떡볶이 삼천 원, 통감자는… 사천 원, 맥반석 오징어는!!! 사천…오백 원, 아무래도 쥐포는 사천 원.


-아들, 자? 엄마랑 얘기 좀 더 하면 안 될까?


-돼. 무슨 얘기할까?


-아무거나. 기섭이가 한번 아무 얘기나 해봐.


그래서 나는 정말 아무 얘기나 생각나는 대로 했다.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엄마가 듣고 싶어 할 거라 생각되는 이야기였다.


도희 누나에게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좋고 엄마처럼 길쭉한 손가락이 참 부드러웠다.


반면, 누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팀장 아저씨는 나만 보면 안 그래도 못난 얼굴이 더 못나 보이게 변하면서 온갖 트집을 다 잡는다.


점심시간 직전에 오랜만에 재호 형을 보러 돈까스 코너에 갔는데, 형이 반갑다면서 몰래 돈까스를 튀겨줬다.


기름 온도가 맞지 않아 살짝 덜 익은 것이었지만 엄청나게 맛있었다.


돈까스를 배불리 먹고 나서는 건물 뒤편을 어슬렁거렸는데 마침 미선 이모가 창고에서 재료를 나르고 있길래 냉큼 달려가 도왔다.


이모가 아이구 내 새끼, 하면서 다음에 맛있는 냄비우동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착한 일을 하고 기분이 좋아져서는 방방거리며 공원에 갔는데, 거기서 웬 토끼를 봤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밉게 생겨서 실망했다.


토끼를 쫓아다니며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소변을 보려 화장실에 갔는데, 아니 글쎄 어떤 또래 남자아이가 으어엉엉어엉 울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니 혼자 화장실에서 볼일 보기가 무섭다며 엄마한테 같이 들어가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말하는 중간중간에 아하~ 그래? 우와, 정말? 진짜? 하며 내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너무 신이 나서 하늘로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엄마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엄마는 피곤했다. 피곤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걸 잘 알았다.


나는 일부러 하품을 쩌-억 크게 하며 졸린 티를 냈다.


잠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잊어먹었는지 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니면, 잠은 졸리지가 않아서 휴게소에 올 일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나는 잠에게 부탁했다. 나는 잊어먹어도 되는데 엄마한테만큼은 꼭 잊지 말고 찾아가 달라고.


-기섭이는 나중에 크면 뭘 제일 하고 싶어?


엄마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여전한 피곤이 잔뜩 묻어있었다.


-나중에? 음…… 아! 난 운전할 거야.


-운전? 뭘 운전하고 싶은데?


-상관없어! 커다란 화물차나 트럭도 좋고, 버스도 좋아. 그럼 엄마는? 엄마는 나중에 커서 뭐 할 건데?


-엄마? 엄마는… 으음~ 엄마는 크면~ 그래! 그게 좋겠다. 운전하는 기섭이 옆자리에 앉아있을래. 엄마 그래도 되지?





'소떡소떡'이라는 간식이 큰 인기를 끌었다.


예능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방송이 방영된 직후로 휴게소를 방문하는 이용객들 모두 소떡소떡을 부르짖었다.


휴게소만의 별미라 칭송받았던 통감자는 삽시간에 1등 자리를 내주었다.


거기에 발맞춰 휴게소는 다른 간식을 조리하는 인원을 줄이고 그만큼 소떡소떡 코너 담당인원을 늘렸다.


엄마를 포함해 총 세 명의 이모들이 소떡소떡 판매를 담당하게 되었다.


명절도 아닌 때에 이렇게나 많은 이용객들이 방문한 건 유례없는 일이라고 이모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모두들 불만이 한가득 섞인 말투였다. 급기야 재료가 소진되어 팔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소떡소떡은, 사천 원이다.


주말이 되니 사람들은 더욱이 불어나 거의 명절에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어딘가로 가는 도중에 잠깐의 휴식이나 허기를 달래기 위해 휴게소에 들르는 것이 아니라, 휴게소의 소떡소떡이 목적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바글바글바글바글 했다.


그런 와중에도 내 간식은 언제나 식어빠진 통감자와 팔리지 않은 핫도그였다.


엄마가 다급히 가져다준 간식거리를 챙겨 야외벤치에 앉았다. 도무지 식욕이라고는 생기지 않았다.


이참에 미선 이모한테 일전에 해준다고 했던 냄비우동이나 얻어먹으러 갈까 생각하던 찰나에 익숙한 냄새와 옷차림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꼬마야. 또 만나네? 아저씨 기억해? 그……


화물차아저씨는 외투주머니에서 무척이나 그리운 물건을 꺼내보였다. 예전 파트너였던 에반이었다.


-이거, 그 후레쉬. 기억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또 만날 수가 있지?


아저씨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엄마가 이곳에서 일을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역시 몇 살이냐는 아저씨의 질문에 엄마의 당부대로 여섯 살이라고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저씨가 아니라 형에 가까워보였다. 지난번과는 달리 덥수룩한 수염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여섯 살? 여섯 살치고는 꽤 큰 거지? 아홉 살, 열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뭘 먹고 그렇게 키가 컸어? 하루 종일 이렇게 휴게소에만 있으면 살찌는 음식들만 먹는 거 아니야? 맛은 있어도 몸에는 안 좋을 텐데.


-다른 것도 많이 먹어서 괜찮아요. 근데 아저씨는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나? 난 저~~어기 ○○이라고 알아?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인데.


모른다고, 나는 대답했다.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몰라? 어쨌든, 오늘 밤까지 도착해야 돼. 그래서 잠깐 쉬러 왔지. 여기 휴게소 밥이 제일 맛있는 거 너도 아니? 여기 식당 이모님들이 솜씨가 좋아.


-전 다른 휴게소는 안 가봤어요.


-그래? 저, 그나저나 그때는 아저씨가 미안했다. 강제로 빼앗은 거 같기도 해서, 마음이 안 좋더라.


-아니에요. 그리고……


주머니에 항상 넣어놓고 다니는 새로운 파트너를 꺼내어 내보였다.


-저도 새로운 거 하나 받았어요. 얘도 멋있게 생겼죠?


의외로 화물차아저씨는 무척 재미있는 어른이었다.


나는 아저씨한테 나중에 운전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고, 아저씨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깊은 만족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당분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곳에 들를 거라면서 자주 보면 좋겠다며 사나이 대 사나이로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아저씨의 손은 몹시 크고 단단했다.


-꼬마야, 그럼 그 뭐야, 소떡소떡? 그거 많이 먹어봤겠네? 엄마가 많이 주시지 않아?


아저씨는 커피 자판기에서 오백 원짜리 커피를 호호 불어 마셨다. 내게는 율무차를 사줬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 뜨거운 율무차를 호호 식히며 답했다.


-저도 아직 한 번도 안 먹어봤어요. 그건 인기가 많아서 따로 못 먹게 해요. 부족해서 못 팔 때도 많거든요. 나중에 사람들 관심이 시들해지면 그때 먹어봐야죠.


-그렇구나. 사실, 아저씨도 엄청 궁금했거든. 요즘 난리잖아. 아저씨는 운전하면서 항상 라디오를 듣는데, 라디오에서도 주구장창 그 얘기만 하더라고.


대뜸 아저씨가 부러웠다.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휴게소가 존재했다.


아저씨는 마치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사람처럼 소곤댔다.


-아저씨가 돈 줄 테니까 소떡소떡, 그거 하나 사다 줄래? 네 것도 하나 사줄게. 어때? 우리 하나씩 먹어보자.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네! 좋아요! 제가 당장 가서 사 올게요.


아저씨가 건네는 만 원짜리 지폐를 들고 나는 곧장 소떡소떡을 파는 곳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사람이 넘쳐났다. 줄 끝에 서서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바로 앞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빠 손을 잡은 채 서있었다.


-아빠! 소떡, 몇 개 살 거야?


여자아이는 말똥말똥한 눈을 하고 말했다.


-글쎄~ 오빠랑 먹을 테니까 두 개면 되지 않을까? 왜? 희수는 더 많이 먹고 싶어?


그렇게 아빠! 아빠! 소리를 열 번쯤 더 듣고서야 내 차례가 왔다. 평소 가깝게 지내왔던 춘자 이모가 카운터 일을 보고 있었다.


-이모! 저, 소떡……


맛있게 드세요~ 하며 밝은 얼굴로 인사하던 이모는 돌연 얼굴을 확 찡그렸다.


-기섭이? ……아이고, 얘 기섭아… 이렇게 바쁜데 오면 어쩌니 글쎄! 아이구, 내가 못살아. 지금 이모들 바쁜 거 안 보여? 얼른 절로 가! 얼른! 나중에 와, 나중에. 간식은 나중에 줄게.


내 이름에 반응했는지 펄펄 끓는 기름 앞에서 일하던 엄마가 뒤돌아 나를 봤다. 나는 조금의 억울함과 반가움을 담아,


-어? 엄마! 나 돈 가져……


그다음 말은 뱉을 수 없었다. 엄마의 눈은 평소와는 달리 정말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가 준 만 원을 등 뒤로 숨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