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ism isn't friendly banter
영국의 크리켓 선수 아짐 라픽(Azeem Rafiq)의 인터뷰를 보며 감정이입이 돼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요크셔 크리켓 구단 소속인 그는 영국 의회 청문회에 나와 지난 10년간 인종차별과 이슬람 혐오주의로 고통을 받았다고 증언했는데, 그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구단 동료들로부터 "Paki"로 불리고, 다른 아시아계 동료들과 함께 "너희는 화장실 근처로 가서 앉아", "Elephant washer들아" 따위의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런 피해사실을 구단에 알렸음에도 구단은 "동료로서 주고 받는 친근한 농담(Banter)" 정도로 치부하고 오히려 그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세웠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혐오를 조장하는 단어는 묵음처리 되고 P-word라는 단어가 나와서 찾아보니 P-word는 Paki(남아시아인 주로 파키스탄인), Prostitute(창녀), Pussy(여성 성기) 등을 완곡하게 부르는 단어였다. P-word나 인종차별 모두 농담이 될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라픽을 보니 나도 마음이 아팠다.
평소 인종차별을 자주 당한 경험으로 인해 웬만한 언동에는 별로 반응도 안하는 내가 라픽의 인터뷰에 놀란 점은 그가 영국 국적을 가진, 자기 커리어가 확실한 영국인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인종차별이란 자신들 삶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지, 자신들 삶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칭총, 차이나 소리를 듣는 뜨내기인 나와 달리 정주자이자, 잘 알려진 스포츠 스타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겪은 인종차별 중 가장 황당한 일화 역시 "농담"으로 치부돼 어안이 벙벙했던 적이 있었다. 피가 나는 손가락을 휴지로 감싸 쥔 나를 본 우간다인 직원이 "어? 네 피도 빨간색이야? 나는 네 피가 녹색일 거라 생각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상대가 웃으면서 말하는데도 화가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 어깨를 토닥이며, "I'm just joking"이라 말하고 지나가는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인종차별 피해를 그저 농담 정도로 치부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세웠다고 말하는 라픽에게 감정이입이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아랍권에서 유명한 어느 한국계 코미디언의 쇼를 본 적이 있는데, 유창한 아랍어로 "아시아인들은 잘 깎아 놓은 오이야"라고 말하자 객석이 폭소로 떠들썩했다. 자기도 아시아의 얼굴을 했으면서 그런 걸로 사람을 웃기려고 하나 생각이 들어 지금은 아예 찾아보지 않는다. "(곤란한 표정으로) Excuse me, Ma'am"이라고 입은 삐쭉 내밀고 머리는 벅벅 긁는 필리핀인 점원 시늉을 할 때는 진짜 오만상이 찌뿌려졌다. 그런 웃음은 아마도 외면은 다르지만 내면은 나와 동기화 된 어떤 타자가 다른 타자를, 나와 같은 시각으로 묘사할 때 오는 공감과 같은 것이라고 할까.
파키스탄 카라치 출신인 라픽은 어린시절 영국으로 건너와 크리켓 선수로 활동하며 팀 문화에 적응하고 성공하기 위해 종교적 믿음에 반하는 행위도 했음을 털어놓았다. 무슬림임에도 목구멍으로 와인을 부어 넣는 동료들의 괴롭힘을 견뎠다고 했다. 구단을 떠난 뒤 식당 사업을 하고 있어서, 이 일로 유명세를 타려고 한다는 비판도 은근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라픽 또한 구단 내 짐바브웨 출신 동료들을 피부색으로 불렀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쨌든 인종차별이 만연한 분위기 내에서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 포함되고 싶은 자가 거기에 동조했을 거라 짐작해본다. 기껏 폭로했더니 "너도 그랬잖아, 너도 똑같아"라고 하는 대신,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뚜렷한 변화를 함께 만들어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