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보는 나의 마음
며칠전 친구와 우간다 이야기를 해서인지 이틀 연속 우간다 꿈을 꾸었다. 하나는 하루만 살아보는 꿈이었고 하나는 일정 기간 살아야 되는 꿈이었다.
#1. 내가 캄팔라에서 지냈던 아캄웨시 호스텔에 갔다. 4층까지 걸어 올라가는데 뚫려 있는 벽면 사이로 오고 가는 바람까지 예전과 똑같았다. 침대, 냉장고 모두 예전과 같은 위치에 있었고 바닥도 내가 매일 비눗물 풀어서 닦았던 것 그대로 깨끗했다. 방문 여닫는 소리며 바닥 타일 촉감, 복도의 냄새를 뇌가 다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꿈에서 본 그곳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하룻밤만 지내보기로 하고 호스텔 직원과 협상한 후 하루치 요금을 냈다.
꿈에서 깨어나니 아캄웨시에서 하루만 지내보기로 한 건 꽤 현실과 타협한 조치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조차 그 공간에서 다시 1년, 2년을 보낼 자신이 없었던 걸까. 단 하루, 라는 조건이어야 그곳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던 걸까.
#2. 캄팔라에서 일하게 된 나는 그곳의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예전 나의 위치에서 그대로 그들을 만나게 됐다. 무척 반가웠지만 너무 익숙한 모습, 태도에 반가움이 곧 사라졌다. 혼자서 캄팔라 로드를 걷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다. 꼭 대통령 선거날처럼 거리에 인적이 드물었다. 상점의 사람들이 나를 아는 척했지만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가려 했지만 집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니 고양이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너와 함께라면 난 어디든 행복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하루가 아닌 6개월, 1년, 2년을 예전 그곳에서, 다시 같은 조건에서 지내야 한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겪어보고야 말았던 것들을 다 아는 지금, 그것들을 다시 겪었을 때 또 어떤 의미들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치왕갈라로 가서 그때의 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던 건, 과거의 나는 꼭 치왕갈라로 돌아가 몇년 간 살아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에게 누군가는 “야 그럼 히로키랑 나중에 같이 살면 되겠네”라고 하여 욕설이 오가기도 했었다. 나도 꿈이 있다고.
20대 초반 호기심 많던 그 시절 뭐든지 경험해보고 흡수하던 때처럼, 내가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내 자신으로서 사고하고 살아낼 수 있을까. 그 시절 봉사자에게 주어진 방 한칸과 열명 남짓 포개 앉아 언제 출발할 지 모르는 택시 같은 건 이제 내 나이에는 그저 빈곤의 증거로만 보이지는 않을까.
혹시 그 고생을 가능하게 했던 건 역시 나와 같은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혼자가 좋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사람을 그리워했고 또 항상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게 나였다. 어쨌든 그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 혼자 오롯이 겪어 낸 고생이 아니었기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는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기를 꿈속에서조차 머뭇거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