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는 나를 많이 바꿨다. 처음 읽었던 책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 까지 모든 책들이 나를 많이 바꾸었다. 책이 전하려는 바에 대해 생각하고, 나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비교해가면서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더하여 “나만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하루에도 우리는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있다. 오늘 저녁메뉴같은 간단한 생각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무엇을 해 먹고 살지같은 진취적인 생각까지. 물론 이런저런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하루하루에 집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다수 있다. 물론 맞고 틀린 것은 없다. 각자의 스타일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 뿐이다. 과거의 책을 읽기전에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감정만을 갖은 체 무언가 바꾸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즉 현재의 나는 그대로인데 미래의 나만 바뀌기를 바랬다. 게으른 생각이었다. 때문에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늘 하루에 나를 소모하는데 지쳤고, 에너지의 총량은 늘지 못했다. 취미로 했던 음악에 있어서도 소홀히 대했고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고민하지 않았다. 꿈은 없고 그냥 놀고 싶은 생각만을 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본능에 충실하게 하루를 보낼 수록 에너지는 점점 말라갔다. 형이하학적인 충족은 정신적으로는 나를 더 지치게 했다. 더하여 수능이 끝나고 몰려오는 허탈감까지 더하여 정신은 피폐해져갔다. 그때 나를 일깨운 것이 독서였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처음 읽었던 책을 통해서 나는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에 생각을 훔쳐보고, 과거의 일이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통해서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덕분에 나는 삶의 커다란 목표와 작은 목표, 어떠한 행복을 추구할지와 왜 그러한 행복을 추구해야하는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또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말의 힘, 인간의 대한 심리 등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많이 길렀다.
그리고 그 눈은 누군가의 눈이 아닌 나의 눈이 되었다. “나의 철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 철학을 더 높게 세우기도 하고 조금은 무너뜨리기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정답에 다다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나의 철학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왜” 가 있다. 나는 “왜”를 중시한다. 사람들을 대하거나 일을 할 때 “왜”에 대해서 고민한다. 과거에 나는 “왜”에 신경쓰지않았다.
그냥 하기 싫었고, 그냥 하고 싶었다. 때문에 늘 흥미를 빨리 잃었고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쉽상이었다. 이유와 근거가 없으니 뒤돌았을 때 남아있는게 없었다. 그저 그 순간 속에 나를 가두었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영향받지 못했다. 순간순간을 모면하기 바빴고, 그런 나를 보면 더 자책했다. 하지만 독서는 늘 “왜”에 집착했다.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이 있으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그런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설명해줬다. 때문에 나도 그 물음에 집착하게 되었다. 소소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스스로 그 질문을 던졌고 답을 찾을 때도 못찾을 때도 있었다. 결과가 어떻든 나는 그 생각을 할 수록 성장했다. 답을 찾았다면 나에 대한 믿음이 커진 것이고, 못찾았다면 그 이해관계에 더욱 생각해보면서 나의 잘못된 생각을 고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나만의 암묵지를 기능지로 바꿀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내 머릿속에 있는 암묵지(말로 할 수 없지만 내가 일상생활속에서 느끼는 생각과 이해관계)를 기능지(말이나 글로 할 수 있는 생각과 이해관계)로 바꾸듯이 말이다.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다름아닌 요즈음 내가 느끼는 내 또래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좋은 대학에는 가지 못했다. 대학에 집착했던 때가 있었고 대학에 대한 막연한 욕심이 컸다. 부끄럽지만 누군가에 대학과 나의 대학을 비교하기도 하였고,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열등감을 키우기도 하였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 나도 알고 있었다. 다만 인생의 전부도 안되는 그것하나 제대로 못해서야 어떡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나도 나의 또래 친구들처럼 좋은학교에 가면 좋은 삶이 나를 맞이 할 줄 았다. 결국 재수를 했고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 들어갔지만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다. 학교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고 내가 가진 문제점을 이곳저곳으로 탓했다. 나는 문제가 없다고,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작년 5월쯔음 진지하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적어도 더 이상 수능은 안보기로 했다. 누가 채워준 것도 아닌 내가 스스로 나에게 걸어놓은 그 단단한 족쇄를 풀어주기로 했다. 풀려난 뒤에도 20년 가까이 묵여있어서 그런지 자국이 심하게 남았고 아직도 지워지고 있다. 지금은 많이 지워졌지만 한동안은 심란했다. 아직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데 내 적성에 맞지도 않는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드리는게 쉽지 않았다. 그때 독서와 글쓰기가 나에게 힘이 많이 되었다.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 또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들”은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다. “좋아하는것을 해야할지 잘 하는것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구요? 좋아하는 것을 잘 하세요!” 약간은 무책임한 말일지 몰라도 그 의미만큼은 나에게 힘이 되었다. 난 행복해지고 싶다. 크든 작든 나의 삶과 내 바운더리에서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 행복이 돈이 되었든, 순간순간에 짜릿한 경험이 되었든, 그 장면이 그저 오래 기억되기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좋아해야 할 수밖에 없다. 싫으면 좋게 만들고 좋으면 더 좋게 . 이건 당연히 어려운 문제겠지만 행복이라는 것이 그저 쉽게 올거라는 기대도 안한다. 때문에 내 주변에서 자기 자신의 현재 위치와 미래에 대한 불안한 걱정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등을 밀어주고 싶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서 “나의 철학”이 만들어졌듯이, 내 주변 사람들도 그저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소모하면서 살기 보다는 변해가는 사회속에서 큰 에너지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삶에 크게 만족했으면 좋겠다. 내가 뭐 하염없이 착한 사람이라도 된 듯이 이야기한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진심이다. 열심히, 잘, 행복하게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 많지않다. 내 주변에도 그런사람이 아주 소수 있다. 그렇지만 그 소수들을 보면서 나 또한 엄청난 에너지를 받는다. 그 노고와 열정에 감동하고, 그 감동이 나를 성장시킨다. 인간은 밥도 나눠먹지만 에너지도 나눠먹는다. 사람한테 상처받고 사람한테 치유받듯 우리는 알게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이왕이면 너와 내가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렇게 될 것이다. 더 행복하게 더 즐겁게
ps. 늘 서평만 쓰다가 수필을 써봅니다. 이제 내 생각을 말해보기도 싶고, 내가 느낀 사회와 우리를 말해보기도 싶거든요. 내 주변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그들의 무기력이 느껴지고, 나 또한 그 무기력에 안타까움을 느끼거든요.
얽매여있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