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시지프는 행복하다고.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by 나그네
image.png 1977년 쏘아진 우주탐사선 보이저 1,2호에 실려 우주로 보내진 축음기 레코드의 표지. 이 레코드에는 지구의 생명과 문화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소리와 데이터가 담겼다.




세이건이 우주 저 멀리서 망원경 렌즈 너머로 본 우주는 거대하고 매혹적이지만,

인간의 운명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는 과학의 언어로 우리가 우주의 변방에 떠 있는 '한 점의 티끌'에 불과함을 보여주었다.

그 깨달음은 인간에게 경외와 동시에 공허를 남겼다.

카뮈가 말한 '세계의 합리적이지 않은 침묵',

즉 부조리(Absurdité)의 가장 완벽한 시각적 증거가 바로 저 '창백한 푸른 점'이다.


우주가 우리에게 어떠한 절대적 목적이나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이 텅 빈 암흑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가.


세이건은 우주의 스케일 앞에서 인간이 그어놓은 국경선과 배타적 민족주의가

얼마나 덧없고 파괴적인 집착인지 일깨웠다.


아무리 금빛 갑판 위에 서 있을지라도

파도가 휘몰아쳐 배가 부서지면,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배에 탄 동등한 '지구인'일뿐이다.

신도, 외계의 구원자도 오지 않는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류뿐이다.


세계는 무관심하다.

우주는 어떤 의미도 전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은 서로의 손을 붙잡는다.


허무에 빠지지 않고, 타인과 연대하며 기꺼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존재,

그것이 카뮈가 역설한 '반항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별의 물질로 만들어진 시지프다.

암흑 속에서 태어나 잠시 빛을 품고 다시 어둠으로 돌아갈 존재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오늘도 다시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린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충분히 행복하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미국 NASA가 발사한 보이저 1호(태양계 무인 성간 탐사선)가 지구로부터 61억 km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크기 0.12화소의 지구 사진이다. 칼 세이건이 여러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이저호의 방향을 지구쪽으로 돌려 찍기를 주장했다고 한다. 촬영일은 1990년 2월 14일이다.




저 점을 다시 보라. 저것이 여기다. 저것이 우리의 집이다. 저것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일찍이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저곳에서 살다 갔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의 총합, 수천 개의 확신에 찬 종교, 이데올로기와 경제 교리,

모든 사냥꾼과 채집꾼,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스승들, 모든 부패한 정치가,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곳에서 살았다 - 햇빛 속에 떠 있는 한 점의 먼지 위에서.


Look again at that dot. That's here. That's home. That's us. On it everyone you love, everyone you know, everyone you ever heard of, every human being who ever was, lived out their lives. The aggregate of our joy and suffering, thousands of confident religions, ideologies, and economic doctrines, every hunter and forager, every hero and coward, every creator and destroyer of civilization, every king and peasant, every young couple in love, every mother and father, hopeful child, inventor and explorer, every teacher of morals, every corrupt politician, every 'superstar', every 'supreme leader', every saint and sinner in the history of our species lived there - on a mote of dust suspended in a sunbeam.

지구는 광활한 우주라는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하다.

생각해 보라, 지금껏 수많은 황제와 장군들이, 승리와 영광 속에서,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분을 잠시나마 차지하기 위해 흘린 피의 강물을.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쪽 구석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있는,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얼마나 끝없는 잔혹 행위를 저질렀는지.

그들의 오해는 얼마나 잦았고, 서로를 죽이려는 욕망은 얼마나 컸으며, 그 증오는 얼마나 맹렬했던가.


우리의 허세,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착각,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이 창백한 빛의 한 점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

우리 행성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 외로운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미미하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줄 도움이 어디에선가 올 것이라는 기미는 전혀 없다.


The Earth is a very small stage in a vast cosmic arena. Think of the rivers of blood spilled by all those generals and emperors so that, in glory and triumph, they could become the momentary masters of a fraction of a dot. Think of the endless cruelties visited by the inhabitants of one corner of this pixel on the scarcely distinguishable inhabitants of some other corner, how frequent their misunderstandings, how eager they are to kill one another, how fervent their hatreds. Our posturings, our imagined self-importance, the delusion that we have some privileged position in the Universe, are challenged by this point of pale light. Our planet is a lonely speck in the great enveloping cosmic dark. In our obscurity, in all this vastness, there is no hint that help will come from elsewhere to save us from ourselves.

-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199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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