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간'에 '알제리인'은 없었다.

- 카뮈 문학의 음영 : "보편성의 가면을 벗기다." ②

by 나그네


나는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세상의 아침만큼은 늘 나에게 찬란했다.


카뮈의 이 고백은 그가 평생 붙들었던 '태양의 철학'을 상징한다.

그는 가난이라는 사회적 부조리 속에서도 지중해의 눈부신 자연을 통해 삶을 긍정했고,

그 생명력을 바탕으로 휴머니즘의 표준을 세웠다.


그러나 카뮈의 '인간'은 모두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인간'은 프랑스어를 말하고 유럽적 윤리를 공유하는 백인이었다.

윤리의 주체로서의 알제리인 상상하지 않았다.

그의 보편성은 중립적인 진공 상태가 아니라, 특정한 위치에서 발화된 윤리였다.


이것이 바로 '보편성의 가면(mask of universality)'이다.

특정한 인간의 경험을 인류 전체의 경험으로 제시하면서, 그 바깥에 있는 이들을 침묵시키는 방식.


소설 속에서 삭제된 알제리인

이방인 영국판(1946). 누워 있는 아랍인 모습이 이색적이다.


20세기 문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 사건은

알제 근처의 한적한 해변에서 한낮에 일어났다.

그러나 죽인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쏜 총에 맞아 죽은 이는

그저 '아랍인(l'Arabe)'일뿐이다.

이름도, 목소리도, 가족도, 사연도 없다.

그가 누구인지, 왜 거기서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가 없다.

태양 아래서 칼날이 번쩍였고,

방아쇠가 당겨졌을 뿐이다.


소설 속에서 죽음은

윤리적 질문을 열기 위한 서사적 계기일 뿐,

그 자체로 질문이 되지 않는다.

《이방인》에서 죽은 것은 한 인간이 아니라,

한 존재의 '익명성'이었다.


《페스트》는 더 노골적이다.

오랑(Oran)의 주민 다수는 아랍인이었지만,

소설 속에서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병들고, 죽고, 숫자로 집계될 뿐, 역병에 맞서는 연대와 저항의 주체는 유럽인이다.


역병 앞에서 인간의 존엄과 연대를 말하면서, 정작 그 땅의 다수는 그 인간에서 배제되었다.

반항과 연대는 숭고했지만, 그 경계는 명확했다.


그곳에는 알제리도, 알제리인도 없었다.


카뮈에게 알제리인은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알제리는 배경이 아니라 풍경이었다.

햇살과 바다, 도시와 유적만 존재할 뿐, 그 땅에서 수없이 벌어졌던 차별, 억압, 폭력, 수탈

그리고 그로 인한 원주민들의 고통과 분노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문학적 장치로서는 효과적이었다.

독자는 낯섦과 거리감을 느끼고, 부조리의 감각은 극에 이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식민지 주민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삭제된다.


이 삭제는 단순한 인종적 무지나 무관심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성의 가면'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특정한 인간의 경험이 아무 설명 없이 '인간 일반'의 경험으로 제시될 때,

그 바깥에 있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카뮈의 부조리, 반항, 연대는 '보편성'을 전제했다.

하지만 그 보편성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특정한 위치에서 시작된 윤리였고, 그 위치는 유럽이었다.


《이방인》에서 총에 맞은 아랍인은 이름조차 갖지 못하고,

《페스트》에서 알제리인은 병들지만 연대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카뮈의 세계에서 알제리인은 인간의 조건이 아니라 장면일 뿐이었다.


"나는 정의보다 어머니를 택하겠다."


1957년 12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카뮈는 스톡홀름 대학의 강연대에 섰다.

한 학생이 프랑스의 알제리 통치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테러를 비난해왔다.

나는 알제 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테러도 비난한다.

지금 알제의 전차에 폭탄이 설치되고 있고, 내 어머니가 그 전차를 타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이 정의라면, 나는 어머니를 택하겠다.


인간적으로는 감동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윤리가 멈춰 선 지점을 드러낸다.


여기서 '어머니'는 개인적 감정이자 프랑스계 정착민의 삶을 의미한다.

'정의'는 식민 지배의 종식을 뜻한다.

그러나 개인의 감상으로 구조적 폭력을 덮어버리는 순간, 억압의 질서는 정당화된다.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지배는 130년 넘게 지속된 구조적 폭력이었다.

토지 약탈, 강제 노동, 문화 말살은 일상이었다.

10%도 안 되는 유럽-기독교 정착민들이 90%의 아랍-무슬림 원주민들 위에 군림했다.


억압받는 자의 관점에서 세계를 본 탈식민주의 사상가 파농(Frantz Fanon)은 말했다.

식민지인은 인간이 되기 위해 먼저 괴물이 되어야 한다.

끔찍한 말이지만, 식민지 현실의 폭력성을 정확히 짚었다.

파농의 사유는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진정한 보편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침묵이라는 이름의 가해


피에 누아르(Pied-Noir), 즉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인 카뮈는 '착한 정착민'이었다.

그는 알제리인들의 고통에 다가가 함께 가슴 아파했다.

프랑스의 폭압적 통치를 강하게 비판했고, 알제리인들의 권리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나 카뮈는 '선의의 식민주의자(colonizer of goodwill)'일뿐이었다.

도덕적으로는 식민주의의 폭력을 지지할 수 없었지만, 프랑스가 알제리를 잃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알제리인의 고통과 염원을 외면했다.

'프랑스령 알제리'의 자치권 확대와 평화로운 공존이 최선의 해법이었다.


카뮈는 선택할 수 있었지만, 알제리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반항하거나 굴종하는 것 말고는.

그들에게 폭력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카뮈는 프랑스와 알제리 양쪽의 폭력을 뭉뚱그려 똑같이 비난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지배자의 언어였다.

양쪽의 폭력을 대칭적으로 보는 순간, 제국의 폭력은 합법적인 질서 유지가 되고,

피지배자의 목숨 건 저항은 진압해야 할 무차별적 테러가 된다.


폭력의 원인은 제거하지 않은 채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달은 보지 않고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것과 같다.

강도가 들어와 재물을 빼앗는데 그에 맞서면 폭력이니 그만두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카뮈의 휴머니즘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했지만, 그 고통의 원천을 제거하는 데는 무력했다.

‘식민'은 말하지 않고 '평화'만을 외치는 것은 식민주의의 변종일 뿐이었다.


카뮈에게 알제리는 고향이자 안식처였다.

알제리를 부정하는 것은 자기 존재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알제리가 '알제리인의 것'이 되려고 했을 때, 그는 침묵했다.


그러나 카뮈가 세상을 떠난 지 2년도 되지 않아 알제리는 독립했다.

그와 같은 처지였던 피에 누아르들은 알제리를 떠나거나 살해당했다.

프랑스어는 버려졌고, 아랍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보편성의 가면을 쓴 휴머니즘


카뮈는 〈티파사에서의 결혼식(Noces à Tipasa)〉에서 태양처럼 눈부시게 알제리를 그렸다.

봄이 되면 티파사는 신들의 거처가 된다.

햇살과 압생트 향기, 은빛 갑옷을 두른 바다, 옅은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무더기 사이에서 거품처럼 솟아오르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을 건넨다.


카뮈는 알제리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내 영혼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그는 알제리의 자연과 풍경을 찬미했고, 그 속에서 '생명'과 '허무'를 읽어냈다.

눈부신 햇살, 지중해의 푸른 심연, 돌무더기 유적 속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의 현실은 외면했다.

그의 시선 속에 그 땅에서 살아가는 '알제리인'은 없었다.

알제리의 풍경을 사랑했지만, 알제리인들의 시간을 살지 않았다.


카뮈의 휴머니즘은 보편적이지 않았다.

제국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윤리였고, 안전한 반항의 최대치였다.

피 흘리는 손을 붙잡아 주되, 그 손을 묶은 쇠사슬은 풀지 않는 휴머니즘이었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카뮈의 윤리는 침묵한다.


선의만으로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고뇌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카뮈를 읽는다


카뮈는 인간이 세계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사유했다.

그의 문장은 여전히 아름답고, 부조리와 반항에 대한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카뮈의 태양은 찬란했지만 고르게 비추지 않았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찬양이 아니라 갱신이다.

위대한 작가의 빛뿐 아니라, 그 빛이 닿지 못한 어둠을 함께 읽는 일이다.

카뮈의 휴머니즘은 보편성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 가면을 벗겨내고, 침묵했던 얼굴들까지 함께 바라봐야 한다.


카뮈는 인간을 사랑했지만, 모든 인간을 같은 거리에서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 한계를 인식할 때, 그는 비로소 신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고전이 된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러가곤 했던 알제리의 티파사(Tipasa)는 카뮈에게 '감수성의 원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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