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간'에 '여성'은 없었다.

- 카뮈 문학의 음영 : "보편성의 가면을 벗기다." ①

by 나그네


겨울의 한가운데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불굴의 여름이 있음을 깨달았다.

- 카뮈의 에세이 〈티파사로의 귀환(Retour à Tipasa)〉(1954) 중에서


카뮈의 이 말은 절망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려는 인간 의지의 정수로 꼽힌다.

그는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는 인간의 위엄을 노래했다.

그의 언어는 태양처럼 찬란했고, 그가 외친 반항과 연대는 휴머니즘의 표준처럼 읽혀왔다.

티파사에서의 카뮈(1959)

그가 호명한 '인간'은 반쪽이었다.

그 '인간'은 유럽의 백인 남자였고, 교육받은 지식인이었다.

그 속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카뮈의 세계에서 여성은 사유도, 해석도, 판단도 하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육체와 감각, 사랑과 돌봄, 위안과 귀환의 영역에서 머무를 뿐이다.

'부조리'를 말하고 '반항'을 외친 카뮈, 그러나 사유의 주체로서의 여성은 상상하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삭제된 여성들


《이방인》의 마리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영혼 없는 몸'일 뿐 세계와 윤리에 대한 사유의 주체가 아니다.

모친의 죽음도, 살인도, 재판도 그녀에게는 문제 되지 않는다.


"나와 결혼할 생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뫼르소가 '원하면 하자'라고 무심하게 답하는 장면은

그녀의 내면이 서사에서 삭제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그녀는 단지 남성적 무관심을 반사하는 거울로 기능한다.


《페스트》에서는 더욱 극단적이다.

의사, 기자, 성직자, 판사, 밀수업자까지 수백 명이 등장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가진 여성은 거의 없다.


여성은 남성의 아내, 어머니, 연인이라는 기호로만 존재한다.

도시에서 역병에 맞서는 의사도, 허위와 싸우는 기자도, 신과 논쟁하는 신부 - 모두 남성이다.

여성은 기다리고, 떠나고, 병들고, 슬퍼할 뿐이다.


《추락》에서 여성은 노골적으로 도구화된다.

센 강에서 몸을 던진 여성은 클라망스의 자기 고백을 촉발하는 계기로서만 기능한다.

이름도, 서사도, 동기도 부여되지 않는다.

그저 '2등 생물' 중의 하나일뿐.


이처럼, 그의 문학과 사유의 무대에서 여성은 이름 없는 그림자였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카뮈 소설의 실존적 드라마를 구성하는 구조적 설정이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운명에 맞서는 주체는 남성이고,

여성은 그 남성을 감싸는 감각적 포장지에 머문다.


알베르 카뮈와 마리아 카사레스(María Casares). 일생의 연인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의관계는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불륜 중 하나다.


'청교도적 쾌락주의자'


카뮈의 삶 역시 그의 소설과 닮아 있다.

그는 스스로를 '청교도적 쾌락주의자(Un puritain hédoniste)'라고 불렀다.

육체와 감각을 찬미하면서도 도덕적 결벽을 지키려는 모순적 태도였다.

그는 자신의 방탕함과 도덕적 결벽 사이의 갈등을 철학적 고뇌로 포장했다.


그는 두 번 결혼했지만 충실하지 않았다.

열정은 불륜과 다중 관계로 이어졌다.

진실한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기만적인 시간표를 짰다.

아침에 리용 역에서 애인을 배웅하고 저녁에 같은 플랫폼에서 다른 여성을 맞이하곤 했다.


그는 세상의 역병을 진단했으나, 자신의 집안에서 흐르는 눈물에는 눈을 감았다.

쌍둥이 아이의 어머니 프랑신은 끊임없는 외도에 상처받고,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발코니에서 뛰어내리까지 했다.


카뮈는 일기장에 "나는 왜 더 선해질 수 없는가"라고 자책했지만,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아내의 곁에서 간호를 하면서도

다른 방에서는 '작은 소녀들'에게 열정 가득한 편지를 쓰고, 만남을 약속했다.


《시지프 신화》에서 그는 돈 후안을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으로 읽었다.

단지 방탕한 난봉꾼이 아니라

의미 없는 세계에서 삶을 긍정하며 매 순간을 열정적으로 사는 '자유인'으로 해석한 것이다.

카뮈는 묻는다, 어째서 깊이 사랑하려면 드물게 사랑해야 하는가?

아름다운 사랑을 찬양하는 '통속적 도덕관'을 향한 일종의 철퇴였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돈 후안에게 철학적 품격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여성 편력을 미학적으로 정당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철학의 언어를 방패 삼아 자신의 욕망을 연소시킨 이 세련됨은

어쩌면 사상가만이 누릴 수 있는 고단수의 지적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돈 조반니〉의 한 장면. 돈 조반니는 돈 후안의 이탈리아어다.


'보편성의 가면(mask of universality)' 뒤에 감춰진 얼굴들


서구의 문학과 철학의 전통은 오랫동안 유럽의 백인 남성의 경험을 '인간 일반의 것'인 양 포장해왔다.

그러나 그 '보편성'은 사실상 삶의 특수성을 은폐하는 가면이었다.

카뮈의 '인간' 역시 보편성을 표방했으나,

여성의 주체성을 체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남성적 경험의 보편화에 머물렀다.


더구나 카뮈는 아내 프랑신이 흘리는 눈물을 '실존적 고독'이나 '사랑의 부조리'라는 철학적 언어로 희석했다.

'보편성'의 개념 위에서 개인의 윤리적 과오를 미학적으로 승화시켰다.

카뮈의 철학이 외친 '인간의 존엄'은 찬란했으나,

그것은 인류의 절반을 소외시킨 채 쓰인 '보편성의 가면'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카뮈의 '인간'은 그 뒤에 숨겨진 여성들의 구체적인 삶과 고통을 지워버렸다.

그의 절제는 자기 완결적이었고, 관계는 비대칭적이었다.


'시대적 맥락'이나 '인간적 한계'라는 논리로 카뮈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 시대에 여성의 실존적 주체성을 소설 중심에 놓는 작가는 드물었으며,

카뮈는 여성 혐오적 언사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을 긍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 혐오는 멸시나 비하의 언어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사유의 무대에서 아예 지워버린 것,

그 침묵과 비가시성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심한 '혐오'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동시대를 살았던 보부아르를 떠올리면 상황은 단숨에 달라진다.

카뮈와 보부아르는 같은 카페에 앉아 담배를 피웠지만,

한 사람은 여성을 배경으로 남겨두었고, 다른 한 사람은 여성을 무대 중앙에 세웠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실존적 조건을 탐구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사유하는 주체임을 증명했고,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통찰로 실존의 지평을 확장했다.

같은 시대에도 여성의 실존을 정면으로 응시한 사람이 그와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은

'시대의 산물'이라는 변호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게 만든다.


골루아즈 담배 연기가 자욱한 파리의 카페에서

부조리와 반항을 이야기하는 인본주의자, 정의와 명료함의 목소리였던 남자.

'부조리와 반항의 철학자'로 불리고, '시대의 양심'이라고 칭송받는 카뮈.

그러나 그는 '여성의 희생 위에서 자유를 누린 나르시시스트'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우리는 카뮈를 읽는다.


카뮈는 위대하다.

부조리, 반항, 연대, 중용의 사유는 여전히 우리의 심연을 흔든다.

지칠 줄 모르며 삶을 긍정하는 그의 노래는 태양처럼 눈부시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진지하게 탐구했고, 죽음과 정의를 향한 불굴의 사유를 펼쳤다.


그러나 카뮈는 인간의 부조리와 존재의 의미를 찾는 데는 비범했지만,

인류의 절반인 여성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했다.

그는 '인간'이라고 썼지만, 그것은 사실상 '남성'이라고 읽혔다.


카뮈의 빛은 찬란했으나 그 빛은 고르게 비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카뮈를 읽는다.

위대한 작가를 읽는 일은 찬양이 아니라,

그가 쓴 보편성의 가면을 들춰내고, 그가 남겨 놓은 공백을 응시하는 일이다.

그 공백이야말로 시대의 무의식이고, 문학의 음영이며,

오늘의 독자가 감당해야 할 질문이기 때문이다.


카뮈의 진정한 매력은 완벽함이 아니라,

자신의 추함과 위선을 직시하고 그것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려 한 처절함에 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찬란한 '태양'뿐만 아니라 그 뒤에 가려진 '침묵의 어둠'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


카뮈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그 한계를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카뮈는 살아 있는 고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다시, 책장을 넘겨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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