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뮈(A. Camus)의 부조리한 축구 사랑
부조리는 의미에 대한 우리의 욕구와 침묵하는 우주 사이의 긴장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질서, 정의, 목적을 갈망하지만 세계는 우리에게 그 어느 것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세계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 욕망과 침묵, 질문과 무응답의 세계가 맞부딪히는 지점에서 부조리는 태어난다.
우리는 그 충돌 속에서 살아간다.
카뮈는 축구 선수였고,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했다.
하지만 축구 또한 부조리하다.
명확한 규칙이 존재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순간적인 굴절, 심판의 잘못, 뜻밖의 날씨가 승패를 뒤바꾼다.
공정함에 대한 기대는 번번이 배신당하고, 그 이유는 좀처럼 설명되지 않는다.
팀은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지만 경기는 계속된다.
시즌이 바뀌면 모든 것은 새롭게 시작된다.
환희와 좌절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지만, 우리는 또다시 희망을 품는다.
시지프스가 떨어지는 바위를 언덕 위로 끝없이 굴려 올리도록 저주받은 것처럼.
축구는 혼자의 게임이 아니다.
선수와 팬이 함께 만드는 집단적 경험이다.
우리는 경기장에서, 온라인에서, 펍에서 함께 환호하고 함께 절망한다.
부조리를 함께 마주한다는 점에서, 축구는 '반항'을 사회적 연대로 승화시킨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카뮈의 말처럼.
축구를 사랑하려면 그 무의미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강등의 아픔 속에서도 끝까지 싸우고, 승패와 무관하게 아름다운 플레이에 환호한다.
존엄성은 승리가 아니라 계속 나아가는 행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름다운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
이야말로 허무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거부다.
패배의 쓰라림을 견디며 다시 축구장으로 돌아오는 팬들,
이야말로 부조리(무의미함)에 대한 가장 순수한 반항이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시지프는 행복하다고.
축구에서든 인생에서든, 공은 언제나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경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지프처럼 행복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