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우주와 고집 센 인간, 그 유희(遊戱)

- '부조리와 반항의 철학자' 카뮈(A. Camus)의 사유

by 나그네


우주는 무심하다.

생명은 의미도 목적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보잘것없는' 이성으로 이를 거부한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여기서 부조리는 시작된다.


부조리는 '~에' 있지 않다.

'~사이에' 있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과 무의미한 우주 '사이의' 긴장,

질서와 의미를 추구하는 이성과 혼란스럽고 무의미한 비이성적 욕망 '사이의' 갈등.

부조리는 그 틈, 그 충돌, 그 불화의 순간에 드러난다.


그 불화는 멀리 있지 않다.

사라진 조각으로 맞출 수 없게 된 퍼즐을 보는 아쉬움,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어린아이의 슬픔,

미닫이문을 여닫이문으로 착각하여 끝없이 밀고 당기는 황당함,

리오넬 메시가 나이 들어 더 이상 그의 절묘한 발재간을 보지 못하게 되는 허무함,

- 부조리의 일상적 얼굴들이다.


우리는 의미를 짓고 세상에 표정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의미가 무너질 때, 우리는 부조리를 마주한다.


매일 아침 태양이 뜨는 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

인간을 위로하거나 축복하려 한 게 아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건 자연의 현상일 뿐,

인간을 위하거나 괴롭히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따뜻한 햇볕'이라니, '거센 비바람'이니 하면서 의미를 부여한다.


과학이 발전하고 더 많은 진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세상이 평화롭고 아름다워지기는커녕,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다.

온 땅이 피에 젖고, 수천만 명의 목숨이 스러지고, 삶의 터전은 잿더미가 된다.

이를 보고 우리는 분노하고 상실한다.

다시 부조리를 느낀다.


뿐만 아니다.

착한 이는 힘들게 살고, 악한 자는 누리며 산다.

선한 의도로 한 일이 악몽으로 다가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뜻하지 않은 우연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일들이

매일매일 끊임없이 벌어지는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것이 우리 삶이자 부조리의 구체적 형상이다.


우리는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비극만은 아니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과 무작위성은 답답하고 무섭지만,

그것은 경이로움과 흥분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카뮈는 말한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삶의 여정은 터무니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 굴복하지 말고, 내세나 미래로 도망치지 말고,

'명철한 의식'과 '반항의 열정'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아침, 무심한 태양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카뮈는 다시 말한다.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시지프는 행복하다고."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