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철학은 배제의 논리를 품고 있었다.

'자유주의의 아버지' 로크(John Locke)의 이율배반

by 나그네

'자유주의의 아버지' 그리고 '제국주의의 설계자'.

서로 모순되는 이 두 호칭은 한 사람, 존 로크를 가리킨다.

자연권과 저항권을 주창하여 근대 자유주의의 기초를 놓은 그가,

식민 통치와 노예 무역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689년, 로크는 《통치론》에서 선언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다.

권력은 피지배자의 동의에서 나오며, 부당한 권력에는 저항할 권리가 있다.


로크가 던진 '자유'의 불씨는 세상을 뒤흔들었다.

절대왕정의 그늘을 걷어내고, 시민 사회의 막을 열었다.

자유주의, 입헌주의, 권력분립 -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근대 정치의 언어는 그의 사유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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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경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항구인 찰스턴에서 노예들이 매매되는 모습을 묘사한 삽화.


그러나 자유의 철학은 식민의 논리를 품고 있었다.

로크는 식민지 캐롤라이나의 노예제를 공식화하는 기본 헌법 작성에 참여했다.

노예 무역에 투자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자유를 말하는 철학과 자유를 박탈하는 식민주의는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


로크의 '재산권' 개념은 이 모순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자연이 준 것에 노동을 섞으면 그의 것이 된다.

이 명제는 봉건 귀족의 특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경작하지 않는 토지는 '버려진 땅'이라는 그의 논리는,

식민지 원주민의 소유를 부정하고, 제국이 식민지의 숲과 강, 들판을 빼앗는 데 사용되었다.


자유와 저항을 외치던 철학자가 식민의 설계자였다는 사실,

혁명의 불씨를 던져 역사를 바꾼 사상가가 노예 무역의 수혜자였다는 사실,

이 이율배반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서게 된다.


이 모순은 한 사람의 도덕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유를 말하면서 자유를 빼앗는 위선이었던 것일까?


실마리는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개념에 담겨 있다.

로크가 상정한 자유의 주체는 재산을 가진 유럽의 백인 남성,

즉 토지와 재산을 갖고 독립적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바깥의 사람들 - 원주민, 노예, 여성, 그리고 가난한 자들 - 은 이름 없는 존재들에 불과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역설'이다.

자유주의 사상이 가진 태생적 한계다.


자유의 문은 처음부터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았다.

그 문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얻었지만, 누군가는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빼앗겼다.

해방의 언어이자 억압의 도구, 그것이 자유의 다른 이름이었다.


오늘의 현실도 로크의 시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방식이 더 정교해지고, 더 은밀하게 변했을 뿐이다.


안정된 소득, 일정 수준의 교육, 위험으로부터 보호된 환경,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

이 모든 것이 갖춰질 때 비로소 자유는 현실이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자유는 교과서에 적힌 그럴듯한 단어일 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단지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조건과 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그는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유'가 아니라 '더 넓은 자유'다.

자유의 문을 넓히고, 그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유를 특권이 아닌 권리로 되돌려야 한다.


로크의 이율배반은, 오늘의 우리에게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자유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는가?


혁명의 사상가 루소(J. J. Rousseau)는 선언한다.

"모든 자유는 누군가의 속박 위에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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