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일으키는 법
나는 대학생이다. 그리고 지금은 2월이 막 시작된 참이다. 즉, 개강까지 약 한 달을 앞두고 있다. 여느때처럼 시간을 허비하다가 문득 이제는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다만 행동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방학의 3분의 2 가량이 지났고, 이제는 드디어 움직이기로 했다.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다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장대한 계획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도전이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까닭은, 내가 처해있는 상황의 특수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현재는 어떠한가? 내가 가진 문제는 무엇인가?
1. 정신 질환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정신 질환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정신과를 처음 다니기 시작한 것은 2019년도이니 2023년 현재까지 약 4년을 다녔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진단명이 바뀌기도 하고 추가되기도 하였지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정신 질환은 크게 두 가지이다. 양극성 장애 2형과 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
먼저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는 흔히 조울증이라고 불리는 질병이다. '정신이 상쾌하고 흥분된 상태와 우울하고 억제된 상태가 교대로 나타나거나 둘 가운데 한쪽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병. 분열병과 함께 2대 정신병의 하나이다.' 라고 네이버 국어 사전에 등재되어있다. 양극성 장애는 1형과 2형, 그리고 기타 유형으로 나뉘는데 1형과 2형의 차이는 조증의 정도의 차이이다. 양극성 장애 1형은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반면 양극성 장애 2형은 경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며 2형에 비해 조증의 정도가 약하고(경조증) 우울증의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쉽게 말하면 우울증에 가까운 조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양극성 장애 2형이며 현재는 우울증 삽화 기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다음,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흔히 ADHD라고 불리는 질병이다.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DHD)는 아동기에 많이 나타나는 장애로,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여 산만하고 과다활동, 충동성을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라고 네이버 지식백과에 기술되어있다. ADHD라 하면 흔히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교실을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이 또한 ADHD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사실 ADHD의 본질은 집중력 결핍보다도 '집행 기능의 결여'에 가깝다.
ADHD는 전전두엽의 도파민 회로에 결함이 발생한 것인데, 도파민은 집중력, 충동 조절, 계획 수립과 같은 여러 가지 능력과 연관이 있다. 이러한 도파민이 감소되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ADHD 증상을 유발하게 된다. 즉, ADHD 환자는 충동성을 억누르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마의 시간동안 버텨내는 능력이 결여되어있다. 이 때문에 많은 ADHD 환자들이 학업과 직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ADHD의 양상은 환자마다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에 ADHD를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른바 '갓생'을 사는 환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못한다. 이외에도 ADHD의 특성은 다양한데, 이에 대해서는 차차 다루게 될 것이다.
2. 우울 / 무기력
사실 사람이 가진 특성은 서로 연관되어있거나 따로 떼어내 설명하기가 까다로운 부분이 많다. 나의 경우도 마찬 가지인데, 앞으로 기술할 내 문제들의 대다수는 앞서 얘기했던 정신질환으로 인한 것이다. 먼저 우울과 무기력은 조울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양극성 장애 2형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우울 증상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이 오랫동안 우울에 노출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에 파묻히게 되고 삶에 대한 의지를 서서히 잃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우울증 환자는 스스로에 대한 이러한 의무들을 저버리고 만다. 그 결과, 사회에서 '낙오된다'. 당연한 이치이다.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달려나갈 때 혼자만 주저앉아있으니.
나 또한 같은 일을 겪고 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살고 싶지 않았다. 미래에도 내가 살아있을 거란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재수에 성공해 대학을 다니고 있다. 대학생이라는 것. '학교'라는, 일상을 지탱해주는 장소가 있다는 것. 이 사실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나쁘게 말하자면 대학에 입학한 것 외에 내가 이룬 사회적 업적은 전무하다. 흔히 '스펙'이라고 얘기하는 자격증, 대외활동 경력, 수상 경력, 직무 경력, 전부 제로다. 반면 학자금 대출은 가득 쌓여있고 그야말로 빈털터리다. 심지어 졸업할 나이를 한참 넘겼지만 학점이 모자라 추가 학기를 다녀야 하는 형편이다. 내 주변과 비교하자면 암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3. 충동성
조울증과 ADHD는 겹치는 증상이 많아 종종 오진되곤한다. 그중 하나는 '충동성'이다. 많은 조울증, 그리고 ADHD 환자는 특유의 충동성으로 인해 돈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분이 좋아서, 혹은 홧김에 이것저것 지르다 보면 어느새 지갑은 텅텅 비어있다. 게다가 ADHD의 또다른 특징은 중독에 취약하다는 것인데, 도박에 잘못 빠지면 이러한 취약성이 충동성과 결합하여 끔찍한 경제적 재앙을 초래한다. 슬프게도, 내가 그렇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가챠 중독'이다. 가챠는 확률성 아이템 뽑기를 말한다. 보통 게임 내에서 유료 결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나는 오랫동안 이것에 중독되어 많은 돈을 낭비해왔고, 심지어는 사금융에까지 손대고 말았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지만, 한국장학재단의 생활비 대출을 풀로 땡겨쓴 덕에 그 빚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4. 생활 습관
게으름은 충동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내 생활 습관이 엉망인 것은 조울증(그 중에서도 우울증)의 무기력과 ADHD의 충동성 모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혼자 자취를 하기 때문에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우선 사진과 같이 집이 항상 난장판이다. 온갖 쓰레기와 설거지거리가 언제나 MAX로 쌓여있다. 집만큼이나 몸도 잘 씻지 않고, 매일 먹는 것은 편의점 음식뿐이다. 집밥을 마지막으로 해먹은 지가 세 달은 된 것 같다. 잠도 늘 새벽 내지 아침에 잠들어 대낮 내지 저녁에 깬다. 하루 종일 하는 것은 이불 속에 틀어박혀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는 것밖에 없다.
특히 스크린 중독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위 사진은 핸드폰과 태블릿을 합친 1월 마지막주의 평균 스크린 타임이다. 참고로 내 평균 수면 시간은 10~12시간이다. 저 통계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사실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핸드폰과 태블릿을 사용하는 데 쓴다고 보면 된다. 또한 안 좋은 자세로 너무 오랫동안 핸드폰을 사용한 탓에 거북목이 심해서 한때 통증 때문에 정형외과를 다닌 적도 있다. 사실 지금도 오랫동안 앉아있는 게 힘들어서 주기적으로 누워야 한다.
5. 회피성 성격 장애 / 협소한 인간 관계
다음은 나의 가장 오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그다지 화목하지 않았다. 부모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제대로 된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덕분에 애정결핍과 회피성 성격 장애를 얻었다. '회피성 성격장애는 거절에 대해 매우 예민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인격장애이다.'라고 서울대학병원 의학 정보에 기재되어있다. 나는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 나를 가장 끔찍하게 망가뜨리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람으로부터 상처받는 까닭은 역설적으로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만,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나에겐 속마음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구구절절 창피한 이야기뿐이다. 벌써부터 독자들이 질려 달아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낱낱이 나의 문제들을 고백하는 까닭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용기를 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는 레파토리는 흔하디 흔하다. '나도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자칫하면 기만이 되기 쉽다.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거기에는 사회적으로 낙오되어있던 주인공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나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도 '그래도 얘는 친구라도 있잖아', '그래도 얘는 근성이라도 있잖아'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주인공과 나의 처지를 비교했고 나의 한계를 단정지었다. 그런 드라마틱한 성장은 남의 운좋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나의 독자들에게 그런 절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조울증과 ADHD가 없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하루에 핸드폰을 14시간보다 적게 쓰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친구가 3명 이상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물론 사람의 처지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라서 이런 노력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비관에는 밑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글 전체가 기만이자 배부른 헛소리가 된다. 실제로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를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단 한 순간이라도 잘 살고 싶었던 적이 없나요? 바뀌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나요? 만약 그렇다면, 내가 먼저 바뀌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당신과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