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기계공학과 박사자격시험 (Qual) 후기 (2)
이번 포스트에서는 내가 퀄을 준비하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고 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루도록 하겠다.
자, 그래서 나는 퀄을 통과했을까? 다행히도 통과했다! 웬만하면 다들 통과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통과를 위해선 나름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입학하고나서부터 나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퀄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지도교수님께 듣고 나니 확실히 심적인 부담이 많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특히 퀄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시험이 되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한국에서 12년 동안 대학입시를 위해서 치렀던 수많은 시험들, 그리고 대학교 4년과 석박사 3년 동안 학점을 위해서 봤던 시험들의 종지부를 찍는 기분이라 기분이 짜릿했다. MIT까지 와서 이런 말 하면 좀 웃길 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 시험을 싫어한다.
시험은 정형화된 지식을 쌓아가는 단계에선 효과적인 학습도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원에 와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는 단계에서 시험은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험은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오히려 방해된다고 생각한다. 연구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Hands-On Experience를 통해서 지식을 터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좀 더 유식하게 말하자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랄까.
연구자는 학생이 아니기에 정형화되고 정리된 지식을 배우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접적으로 논문 또는 데이터의 형태로 분산된 형태의 지식을 흡수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시험은 이런 과정을 겪는 시간을 빼앗고, 주체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려는 마인드를 형성하는 데 장애가 되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럼 퀄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배웠을까? 솔직히 말하면 직접적으로 배운 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의 연구분야는 AI와 로보틱스인데 전통적인 기계공학분야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퀄에서 습득한 지식이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또, AI와 로보틱스 분야는 거의 한 달 단위로 트렌드가 변화하다 보니 민첩하게 지식을 습득하고 결과를 생산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안타깝게도 퀄을 준비하는 시간이 좀 아까웠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생각이 좀 다를 수도 있다. 단지 나의 의견일 뿐이니 독자 여러분들은 유념해 주시길 바란다.
그래도 마냥 허송세월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연구할 때와 비교해서 여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 보니 내 연구에 생각할 시간이 많았고 평소에 읽고 싶었던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완독 할 수 있어 좋았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선 나중에 브런치에 글을 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여튼 사색과 독서를 통해 내 연구관을 재정립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이제 퀄이 끝났으니 Ph.D. Candidate으로서 연구만 잘하면 된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