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5, 개님 주무신다, 비켜가거라

by 지구지고


도로는 릭샤 때문에 차가 못 간다. 인도는 개 때문에 사람이 못 간다. 낮 시간 개들은 걷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 특별한 일이나 있어야 움직이는 듯하다. 더위를 아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누워 낮잠을 즐긴다. 한 번도 짖어보지 않은 것처럼 잠을 자거나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개들의 앉아 있는 모습은 뭔가에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양새다. 아마 어제저녁 전투에서 패한 원인을 생각하거나 오늘은 어떤 녀석들이 쳐들어올지 걱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듯 골똘한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사람들도 개들을 피해 갈 뿐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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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쌍둥이도 아닌 것이 쌍둥이처럼 자기도 하고, 베개를 밴 듯 머리를 높은 곳에 두고 자는 개들도 있다. 자는 얼굴에는 편안함이 배어있다. 내가 근무하는 TTC 문 앞 계단에도 개 두 마리가 잠을 잔다. 아침 출근길이면 꼭 만나는 이 개들은 자는 위치도 늘 같은 곳이다. 두 마리가 자리를 바꾸는 법이 없다. 구석 쪽에서 자는 녀석은 허리를 곧게 펴고 잔다. 꼬리도 등 쪽으로 올렸다. 웃지만 소리를 내지 않는 감성적인 얼굴로 잠을 청했다. 귀도 구부려 아무 소리도 들지 않으려는 듯 귓구멍을 막았다. 앞 두 다리는 겹치지 않게 아래로 쭉 뻗었다. 뒷다리는 바닥에 닿은 다리는 쭉 뻗고 다른 한 다리는 바닥에 닿은 다리게 겹쳐 올렸다가 무릎을 살짝 구부려 다리가 두 개임을 보여준다.


다른 한 마리는 몸뚱이를 활처럼 말았다. 앞 두 다리도 쭉 펴지 못하고 몸 쪽으로 굽혀 배에 닿았다. 뒷다리는 몸 안쪽에 넣었다. 자면서도 경계 근무를 서듯 귀를 쫑긋 세웠다. 덤덤한 얼굴로 잠자는 것인지 그냥 눈만 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출근길에 복잡한 가게 앞에서 자는 개도 두 마리다. 두 마리 모두 두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하게 잠을 잔다. 이 개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복잡한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곳이 자기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개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이 두 마리 개들은 다른 개들에서 보는 물린 상처도 덜 보인다. 아마도 이 동네에서 가장 센 녀석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개나 소나 도심에서 살아가기 위한 먹이통은 쓰레기장이나 쓰레기가 버려진 곳이다. 이곳에서 먹이활동을 한다. 개들은 대체로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뚱뚱한 개들도 자주 보게 된다. 큰 덩치가 싸움에 절대 유리한 것이라 생각하고 살 찌운 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를 활보하는 소들은 대체로 빈약하다. 뼈를 앙상하게 드러낸 소들도 자주 목격된다. 초식동물인 소가 시내에서 먹을 것이라곤 아직 썩지 않은 바나나 껍질 정도가 다일 테지만 잡식성인 개는 식물뿐만 아니라 물고기나 육고기 모두 먹을 수 있어 둘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는 것 같다. 먹는 것으로 크기를 결정한다면 아마 소보다 개가 더 커야 할 것이다.

개의 낮은 휴식이다. 낮에는 개 짖는 소리 한번 들을 수 없다. 순하다고, 짖는 것을 잊은 개라고 밤에도 그런 것은 아니다. 밤이면 같은 구역의 개들의 회합이 시작된다. 불량배 같은 모습으로 패싸움을 하기도 한다. 이 구역은 내 구역이니 다른 곳에 가서 영업하라고 윽박지르는 불량배 폼과 같다.


“개들은 왜 이렇게 도로에서 잠을 자?”

“아파요.”


개들이 잠을 자는 이유는 아파서란다. 내 보기에도 아주 아픈 건 사실이다. 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한 몸뚱이가 없다. 울긋불긋한 반점이 드러나 보인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 개도 있다. 가끔은 다리를 절며 가는 개가 있는가 하면 아예 한 발을 들고 지나가는 개도 볼 수 있다.


그들의 삶은 처절하다. 낮 시간 잠을 자 둬야 밤 시간 적을 막을 수 있다. 일종의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 낮인 것이다. 밤이 되면 개들은 거리의 한쪽 구석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한 구역에 같이 거주하는 개들끼리의 모임이다. 그리고 우두머리 격인 개를 따라 어슬렁거린다. 그러다 구역을 침범한 다른 개라도 나타나면 으르렁으르렁 소리를 내쫓아 버린다. 이 과정에서 수적으로 열세인 침입자는 슬쩍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구역을 빼앗아 보겠다고 덤비는 놈들이 있게 마련이다. 바로 사생결단의 전투가 벌어진다. 죽고 죽이는 전투는 아니어도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것이 이 전투다. 얼마 전 ‘스쿨 게이트 전투’를 목격했다.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기술학교가 있는데 학교 용지가 상당히 넓고 기숙사도 있다. 그 넓은 곳을 구역으로 둔 ‘학교파’ 개들과 침입자 간의 싸움인 듯했다. 학교 정문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서 지키려는 자가 으르렁대며 침입한 개 한 마리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침입한 개는 여유만만이었다. 으르렁대는 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 학교 개가 달려 나오자 슬쩍 몸을 피하는 날렵함을 보였다.


개들의 전투가 시작되는 날은 동네가 다 시끄럽다. 한 번 싸움이 나면 온 동네가 다 개 짖는 소리고 가득 찬다. 밤이니 누가 쳐들어오는 것을 미리 경계하려는 소리처럼 그냥 밤이니까 짖는다.


사람들이 낮에 조용히 자는 개들을 모른 체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밤에 패싸움을 하는 개들에게도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리고 으르렁대는 개를 보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초등학교 때 개에게 물린 적이 있는 나는 나를 쳐다보는 개 앞에선 얌전한 고양이가 된다. 조금 돌아가거나 아예 가지 않는다.


정유정의 소설 <28>이 생각났다. ‘개에 물리면 3일 안에 사망하는 괴질에 의해 파괴되는 도시, 화양시를 봉쇄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괴질이 개에 의해 전염되는 것이다. 전염병이 발생하고 사람들 변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던 소설이고 긴박감이 있었다.’ 소설 28의 주인공이 방글라데시의 개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방글라데시의 개들은 사람들의 틈에서 서로를 상관하지 않고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시내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중소도시에서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지만, 다카에서는 소가 자취를 감춘 것같이 말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소에 이어 개도 신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