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샘!
건강하시죠. 후배들과 방글라데시 이야기하다가 샘이 했던 “우리는 왜 방글라데시를 선택했을까요?”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방글라데시를 떠나니 방글라 향기가 그립기도 하고요. 같이 땀 흘리며 방글라를 헤매던 때, 방글라데시에 처음 도착했던 순간도 생각나고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봉사활동 국가라며 겁을 주던 교육을 받으면서 걱정이 먼저였죠. ‘모기를 조심해야 한다. 치안이 불안하니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 특히,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해 불안한 마음으로 방글라데시에 들어갔었죠. 방글라데시에 처음 도착했을 땐 교육 때 들은 내용이 정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긴장됐죠. 혼돈의 도시 같았으니까요. 차도, 인도 할 것 없이 걸어 다니는 사람들, 자동차와 릭샤(자전거 뒤에 사람을 태워 운행하는 인력에 의한 교통수단), CNG(가스를 연료로 하여 동력을 전달받아 승객을 태워 이동하는 교통수단)가 뒤섞여 꼼짝 못 하는 도로 상황에 놀랐어요.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외국인인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불안 그 자체였죠. 낮엔 없던 사람들이 밤이면 시내로 모여드는 것도 신기했고요.
하지만 그곳엔 사람 사는 향기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냄새가 있고 방글라데시엔 방글라데시 향기가 있잖아요. 정말 방글라데시에 가면 방글라데시 냄새가 납니다. 실컷 뛰어다닌 아이들의 옷에서 나는 신 냄새 같기도 합니다. 신나게 뛰어논 개구쟁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나는 땀 냄새라는 생각도 듭니다. 생명을 키워낸 흙냄새 같기도 합니다. 비가 오면 비가 가져온 생명의 향기가 나고, 한바탕 바람이 포효하고 나면 바람에 쫓겨 온 인도 냄새가 납니다. 어떤 때는 헌책방의 오래된 책 냄새 같기도 하고 슬쩍 스쳐 지나간 멋쟁이의 머리에서 나는 샴푸 냄새가 그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움직임에 섞인 먼지 냄새가 나는 곳도 있고 풀과 나무가 뿜어내는 자연의 향기를 발산하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땀 냄새가 가득 섞인 공기는 분명 사람 냄새였습니다. 방글라데시가 움직이는 냄새였습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몇 년 후 방글라데시의 발걸음은 아마 거인의 보폭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방글라데시엔 특별한 향기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많은 방글라데시의 향기를 느끼면서 방글라데시에는 또 다른 방글라데시가 들어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느림이라는 방글라데시가 있지만, 배려라는 방글라데시도 있었습니다. 여유와 기다림의 방글라데시가 있습니다. 가난이라는 방글라데시가 있으면서도 그 안에 베풂이라는 방글라데시도 같이 존재합니다. 손을 내미는 사람(남에게 빌어먹는 사람)을 투명 인간으로 취급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윤 샘!
제가 전에 얘기했었나요? 교실에서 화를 냈던 내가 미웠다고요. 방글라데시엔 오른손을 다른 사람들을 향해 들고 천천히 다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몇 푼이라도 얻어 보려는 사람들 말이에요. 내가 사는 건물 구멍가게에도 서너 명이 번갈아 가며 오곤 했습니다. 가게에서 물건 값을 계산하는 사람들 옆에 서 있다가 잔돈을 받을라치면 손을 내밀곤 하죠. 차가 막히는 곳에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넓은 차도를 자기 길인 양 헤치고 돌아다니며 차창 유리를 두드리기도 하잖아요. 처음엔 왜 그러는지 몰라 의아해하기만 했었죠. 처음 다카(방글라데시 수도)에서 창문을 노크하길래 문을 열었어요. 그러자 3번은 접힌 꼬깃꼬깃한 10따카(Taka, 방글라데시 화폐 단위) 짜리를 내밀더군요. 순간 의아해했지만, 돈을 달라는 것이란 걸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냥 그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지요. 그러자 운전사에게 가서 손을 내미는 거예요. 운전사는 10따카를 그의 손에 얹어주었어요. 돈을 준 것을 알았는지 주변에 있는 몇몇이 또 와서 노크했고, 운전사는 50따카 쯤 준 것 같았어요. “한 번 주면 계속 와요.”라고 말하던 운전사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인가 수업 중에 히잡을 쓴 여인이 교실에 찾아왔어요. 그날은 전기가 나가서 선풍기도 돌아가지 않는 찜통더위 속에서 수업하고 있었죠. 노크 소리에 현지 선생님이 문을 여니 아주머니 한 분이 뭐라 이야기했어요. 현지 선생님과 문을 반쯤 열고 대화를 하는 데 5분이 지나도 대화가 끝나지 않는 거예요. 수업은 중단됐고요. 그래도 학생들은 아무 말 없이 밖을 응시하기만 하더라고요. 상황을 모르는 저는 선생님을 불러서 나가서 말씀하시라고 했어요.
“선생님 수업 중이니 나가서 말씀하시는 게 좋겠네요.”
그러자 현지 선생님은 “네, 알겠습니다. 이 사람은…….”하고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더라고요. 제가 말했어요.
“저는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설명하지 마시고 나가서 천천히 이야기하고 오세요.”
현지 선생님은 당황한 듯 버벅거리며 나가는 듯했으나 계속 그 모양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가서 선생님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아 버렸지요. 수업에 방해되는 것은 안 되다는 생각으로 한 거예요. 그러고는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좀 이상했어요. 제 행동에 당황한 눈치였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학생들이 대답했어요.
“어려운 사람(Beggar)인데 돈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학교 안, 수업하는 교실까지 들어와 손을 벌리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생각했지요. 그러고는 호주머니에서 10따카 짜리 5장을 꺼내 학생에게 주며 전해주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제 돈을 받은 학생이 10따카를 보태 60따카가 문밖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현지 선생님은 바로 교실로 들어왔어요.
“선생님 죄송합니다.”라며 미안해하는 현지 선생님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수업을 방해하는 건 좀 그래서요. 저도 미안해요.”
그날 퇴근길에 TTC 정문에 손을 벌리고 앉은 사람을 보았어요. 마침, 가게에 들러 물건을 사려고 집에 있던 동전을 모두 가져왔는데 그 사람 손에 한 움큼의 동전을 올려놓았어요. 그랬더니 같이 가던 학생들이 놀라며 너무 많이 줬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아까는 내가 방글라데시 문화를 몰라서 그랬다며 ‘아까는 미안하더라’라고 말했네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그것을 흉보거나 따돌리지 않았어요. 어려운 사람들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고요.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에 제물로 바치는 소를 잡으면 3분의 1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고 해 이 기간에 어려운 이웃들이 너무 많은 고기를 먹어 탈이 나는 경우도 많다는 말을 들었어요. 냉장고가 없으니 배 속에 보관하는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이겠죠. 이 말을 생각하며 교실에서 화낸 내가 미워졌어요.
방글라데시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접해 본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려 했어요. 협동적이면서도 사교적이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누구에게 의존하지도 의지하지도 않는 개인 개인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었고요. 방글라데시엔 그들의 향기를 세계로 발산하는 힘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방글라데시의 MBTI는 ENFP일 겁니다. ENFP 성향은 외향적인 사고를 가진 동시에 직관적인 감정이나 가치판단, 인간관계에 의해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계획이나 절차보다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시도하는 유형이죠. 물론 다 맞는 건 아니지만요.
방글라데시에 1년을 살면서 만났던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남자: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 예쁘게 다듬어 가꾼 턱수염, 깨끗하고 맑은 눈빛, 짧은 머리카락, 적당한 키에 적당히 나온 배. 친절한 마음, 다가옴, 무채색, 셀피, 호기심, 쑥스러움, 다른 피부색, 놀라운 행동
여자: 아담한 키, 바람에 날리는 샤리, 반짝이는 눈빛, 미소 지은 입매, 쑥스러움, 검은 또는 화려한, 뭐라 말 못 하고 지켜보는, 원색, 소탈함, 활달함, 다소곳한, 흰 피부, 착한 마음
아이: 활달한, 재잘대는, 과묵한, 신난, 낯선 웃음, 쑥스러움, 과감한, 쫓아오는, 사진, 잘생김, 사교적인
그렇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화사한 봄바람 같기도 하다가 차분한 아침 빛깔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그림처럼 현실의 멋을 뽐내기도 합니다. 직접 물어보기보다 살짝 에두르는 쑥스러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얼굴엔 진지함이 묻어납니다. 호기심을 밖으로 뱉지 못하기도 하지만 솔직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라는 나라의 냄새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향기는 다릅니다. 저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향기를 좋아합니다. 외향적인 것이 좋고 무계획적인 것이 좋습니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좋고 ‘아차!’(OK의 뱅골어)하며 멋쩍어하는 모습도 좋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방글라데시 사람 그 자체가 좋습니다. 그래서 방글라데시에 한 번 더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다카에서 한국 교민 모임에 갔을 때 어느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방글라데시에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와 본 사람은 없다’라고요.
생각해 보면 처음 방글라데시에 도착해서 놀랐던 것은 교육에 의한 힘이 아닌가 합니다. 그땐 최빈국이니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으니까요. 릭샤를 타고 다니면서 핸드폰을 쓰면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한다. 지갑에서 돈을 꺼낼 때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조심해서 꺼내야 한다. 지갑까지 빼앗아 달아난다. 집에서 문을 잠그지 않으면 도둑이 들어 싹쓸이해 간다. 혼자 다니면 물건을 빼앗길 수 있으니, 혼자는 절대 다니지 말아라. 만약 위협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진 것 다 주고 빠져나와야 한다. 봉사하기 어려운 나라다. 사전 교육에서 배운 것들이 대부분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1년을 살다 보니 그런 것들에 대한 교육은 왜 생긴 것인지, 언제 방글라데시에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교육하는 사람은 방글라데시에 가 보긴 한 건지 의심이 생깁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라는 전제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만약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예요. 교육받을 때 머리에 박힌 편견을 없애는 데 서너 달은 걸린 것 같아요. 그때까진 늘 경계하고 다녔으니까요. 그런데 겁나는 사람, 위험한 방글라데시는 아무 곳에도 없었거든요.
윤 샘!
저는 방글라데시를 ‘가장 어렵게 사는 나라, 위험한 나라, 봉사 활동하기 제일 어려운 나라’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1년을 아주 안전하게 정말 재미있게 봉사활동을 했거든요. 교통의 지옥이라고는 하지만 길을 건널 땐 나름 건널 기회를 주었고요. 혼자 다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 물어보면 친절하게 안내해 주기도 했어요. 서툰 방글라데시어로 말해도 웃지 않고 진지하게 들으려는 그들이 고마웠습니다.
전 방글라데시엔 방글라데시만의 특별한 향기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향기를 발산하며 그들의 문화대로 살고 있잖아요. 나쁜 문화는 없습니다. 우리와 다른 문화가 있을 뿐이죠. 방글라데시 문화를 알면 방글라데시가 보여요. 방글라데시 사람을 알면 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알 수 있어요. 편견을 버리면 방글라데시만의 특별한 향기를 맡을 수 있으니까요.
윤 샘!
행복한 사람은 왜 행복한지 생각할 필요가 없대요. 방글라데시에서의 1년은 제 인생의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 번쯤 가보라고 권하고 있네요. 편지를 쓰면서 “우리는 왜 방글라데시를 선택했을까요?”라는 말을 되새겨 봤어요. 저는 학생들과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하고 그들과 한국에서 만날 수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방글라데시의 특별한 향기를 계속 간직할 수 있잖아요. 윤 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언제 만나 그 특별한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재미난 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