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휴식

Bangladesh

by 지구지고

방글라데시는 나에게 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엇 하나 걱정할 것 없는 휴식 그 자체였습니다. 지난 33년 동안 수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낮에는 업무에, 민원에 시달렸습니다. 저녁이면 낮 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식당에 들러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술자리는 늘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만든 자리는 없었습니다. 상사의 자리에 참석하기도 하고 후배들이 넋두리를 듣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상사와 함께하는 자리는 늘 어려웠습니다. 특히, 큰 행사를 끝내고 지친 몸이 되었을 때 일찍 집에 들어가 쉬는 것이 최상이었지만, 오늘 고생했으니 회식하자고 했습니다. 이 말은 피곤하니 술 한 잔으로 풀라는 의미지만 실제로 저녁 자리를 같이하는 것은 피로를 더 보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자리에는 언제나 참석해 술을 마시며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갔습니다. 조직에서의 위치가 올라갔을 때는 많은 단체와 일을 협업해서 하면서 단체와 자리를 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역시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었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빼기라도 할 량이면 ‘아! 과장님 술 좋아하신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한잔하시죠.’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말하지만, 난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말은 옳지 않은 말입니다. 다만 술이 매개가 된 자리를 좋아할 뿐입니다. 누군 그게 그 말이 아니냐고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좋아한다고, 같이 만나는 것이 좋다고, 그래서 술을 마시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나에겐 더 옳은 말입니다.


직장에서의 33년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를 위한 시간은 없었던 거였습니다. 그러다 방글라데시에서 1년을 살게 됐습니다. 한국어 교원으로 살면서 많은 방글라데시 사람을 만났습니다. 거기엔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보장돼 있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온전히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녁이면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고 나 자신을 위한 공부를 했습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그날 가르칠 곳은 물론 전에 가르친 과정이나 앞으로 가르쳐야 할 과정까지 훑어보고 포스트잇에 꼼꼼히 적어 놓기도 했습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일이었지만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렵다기보다는 재미가 쏠쏠했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어쩌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아잔이 울리기도 했습니다.

아잔이 울리는 시간은 오전 4시 정도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모스크의 스피커가 내가 사는 건물 5층을 향해 정면으로 있어 그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소리는 녹음된 소리가 아닌 듯, 마이크를 테스트하는 아! 아! 소리 가 들리기도 하고 쉬는 곳이 매일매일 다르게 들렸습니다. 1분 정도의 아잔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눈을 비비고 거실로 이동해 노트북 컴퓨터로 유튜브를 켜는 시간은 대략 4시 반경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일찍 일어나 노트북을 켜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기 피곤함에 찌든 것처럼 일어나 출근하는데도 버거웠기 때문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제일 먼저 듣는 노래는 ‘비와 당신’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 오롯이 책상 의자에 앉아 ‘이젠 당진이 그립지 않죠’로 시작되는 노래를 듣는 것은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더 즐기기 위해 성능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기도 했습니다. 누구는 그 시간이 무슨 휴식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경이로운 휴식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눈을 뜨기 위한 알람의 수단으로써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닌 새로운 날의 시작을 위해 듣는 아침 노래는 보약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지쳐 살아온 나를, 뒤 한번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나에게 온전한 삶을 살아보라고, 온전한 휴식을 가져보라고 초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삶에 새로움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휴식입니다.


정여울은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쉼이 있습니다. 에라스무스의 말처럼 진짜 경이로운 휴식인지도 모릅니다. “이 휴식은 너무도 경이로워, 인간의 입으로는 감히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 봉사를 위해 갔지만 정말 봉사보다는 경이로운 휴식을 하고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제 학급의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인 내가 지치는 것보다 하루하루에 쉼표를 찍고 새로운 날을 시작해서 학생들에게 더 좋은 선물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의 1년은 저에게 굉장한 시간이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살던 삶을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필요했던 반성의 시간을 많이 가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했던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조금은 아는 기회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남들과 다투었던 일, 못 되게 했던 것들을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문화에 스며들면서도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귀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방글라데시에서 1년을 살면서 느끼고 배운 것을 한국의 생활에서 나눌 기회로 만드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타국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하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사람으로 살지 못했지만 그땐 더 좋은 사람이 돼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섭니다. 뭐라 하지 않고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전 28화이제 혼자서도 잘 다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