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혼자서도 잘 다녀요

by 지구지고

피라미드에 다녀온 다음 날은 방글라데시에서 실시되는 한국어 토픽(TOPIK) 시험의 감독으로 오전을 보냈다. 비행기로 가는 동료들의 항공 시간에 여유가 있어 ‘조무나 퓨처 파크’에서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공항에서 마이멘싱행 버스를 탔다. 모하카리에서 버스를 타라는 슈보(KIDC 현지 요원)의 말을 뒤로하고 공항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공항까지는 항공으로 이동하는 정 샘, 장 샘, 이 샘과 같이 이동했다. 이 샘이 먼저 출발하고 장 샘이 출발했다. 정 샘 비행기가 취소돼 잠깐 소동이 있었으나 문제없이 해결돼 늦게 출발했다. 모두 탑승장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공항에서 처음 버스를 타보는 것이기에 어둡기 전에 승차해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데 도대체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버스는 지나가지 않았다. 다카에 올 때마다 타고 지나가던 길인데 차가 안 온다니. 이게 웬일인가 하고 생각하며 경찰에게 물어보려 할 찰나에 사달이 벌어졌다.


내 바로 앞에서 오토에 탑승하려던 남자가 바지 뒤 주머니를 쓱 만지더니 내려서 몇 발짝 뛰어 한 남자의 뒤통수를 날라 패기로 가격했다. 격투기 선수가 온 힘을 다해 가격해 상대가 쓰러지듯 맞은 남자가 내동댕이쳐졌다. 깡마른 체격에 유난히 얼굴이 검어 보이는 남자의 수염에 피가 묻어났다. 때린 남자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쓰러진 남자의 얼굴을 연속으로 가격하며 뭐라 소리를 질렀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슬쩍 한 발짝 물러났다. 쓰러진 남자는 한마디 말없이 맞기만 했다. 몸을 웅크려보지만 맞을 곳은 많았다. 두 팔로 얼굴을 가려 보지만 다 쓰러져 가는 복싱 선수를 몰아붙이듯 달려드는 상대에겐 속수무책이었다. 지나가는 버스는 대수롭지 않은 듯 빵빵거리며 비키라는 신호를 했다. 5, 6분의 패대기는 경찰의 개입으로 끝났다. 남자는 쓰러진 남자에게서 뭔가를 잡아채서 가지고 CNG로 돌아왔다. 근처에 경찰은 두 명이었다. 경찰의 덩치는 산 만 했다. 이를 지켜보기만 하던 경찰은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가 들고 있는 나무 몽둥이를 흔들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했다. 남자는 CNG를 타고 사라졌다. 때린 남자는 그렇게 가버렸다. 경찰은 이유가 뭔지 묻지 않았다. 당연히 잘 못했기 때문에 맞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 듯 누워 있는 남자를 구둣발로 뚝뚝 찼다. 그래도 일어서지 않자 몽둥이로 쿡쿡 쑤셨다. 그러고는 바지허리춤에 손을 넣어 질질 끌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옷이 스치는 소리가 쓰~쓱 들렸다. 맨살이 바닥에 끌리면서 아픈 듯 자세를 바꿨다.


날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조금 장소를 옮기니 야광 조끼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 물어봤다. “나는 마이멘싱에 갈 것이다.” 그 사람은 한쪽을 가리키며 뭐라 말했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 저 길 가운데로 가서 타라는 말인 듯했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답답한지 나를 보며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길 가운데로 나가니 금방 차가 한 대 왔다. ‘마이멘싱’ 한 마디에 차장이 ‘타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그 차의 승객이 되었다.


버스에 올라타자 음식물 쓰레기장 같은 꿉꿉한 냄새가 코에 확 들어왔다 땀과 섞인 이 냄새는 내 몸의 냄새와 버스 의자 위에 씌워둔 시트의 그것과 섞인 복합적인 냄새였다. 자리에 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등을 대고 머리를 대자마자 떼어야 했다. 땀이 흥건한 내 목, 그리고 좀 전에 앉았을 낯선 이의 땀으로 젖었을 시트, 땀으로 젖고 마르고 또 젖기를 반복했을 시트에서 기름에 찌든 듯한 찐득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차피 기대지 않고는 갈 수 없을 터였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찐득함을 잊고 기댔다. 마이멘싱으로 가는 버스는 모하칼리에서 가는 직행보다 여러 군데에 섰다. 완행이다. 승객을 태우고 내려주기를 반복하면서 앞으로 갔다. 방글라데시에서 버스의 문이 닫힌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 문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문은 다른 나라의 버스처럼 그 자리에 달려있다. 닫지 않을 뿐이었다. 길이 막히는 도로에서 버스의 차장은 지나가는 릭샤에게 비키라고 호통을 쳤다. CNG 왈라는 소리치는 차장에게 뭐라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래도 그것으로 이 사람들의 만남은 끝이었다. 버스는 선풍기 버스였다. 모든 창문은 열려있었다. 차가 갈 때는 자연풍, 차가 정차하면 인공의 바람이다. 정차 시에만 선풍기가 돌아갔다. 앞, 뒤, 그리고 중간에 3대의 선풍기가 고개를 빙빙 돌리며 달달달 소리 내며 돌았다. 버스가 작으니 세 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버스 안. 36도의 다카 기온에 37.5도의 사람은 만 차. 합치면 몇 도일지 감도 안 잡히는 더위에 과열된 선풍기는 더운 바람만 일으키고 있었다. 앞쪽 선풍기는 붙을 게 다 붙은 온전한 선풍기다. 중앙의 것은 앞 커버가 없다. 뒤쪽은 더 덜컹거려서 그런지 앞뒤 커버가 다 떨어져 나갔고 한쪽으로 치우쳐 돌았다. 기계의 과열된 바람보다는 자연의 바람이 더 좋을 듯하지만 자연의 바람을 맞으려면 모래 먼지를 감수해야 했다. 눈을 감지 않으면 바람을 맞을 수 없었다. 신선함보다는 선풍기 바람을 피하는 수단의 하나가 되었다. 차는 번화가인 듯한 곳에서 정차했다. 저녁 6시 20분. 아잔을 맞았다. 버스는 승객이 지키고 차장과 운전사를 내려 가까이 보이는 기도처로 갔다. 10여 분이 지난 후 돌아온 운전사는 갈 길을 재촉하듯 승객이 제대로 탔는지 묻지도 않고 출발했다. 한 명의 승객이 뛰어오면서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다.


밤에 보는 마이멘싱 가는 길은 낯설었다.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몇 차례 다니면서 눈여겨보면서 다닌다고 했는데 ‘저런 건물이 있었던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거 제대로 가는 거야.’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는 건물이 나왔다. 코카콜라 공장이다. 영문자 코카콜라와 뱅골어의 코카콜라는 비슷하다. 비슷하다는 말은 같다는 것이 아니다. 영어 알파벳과 뱅골어 알파벳은 굉장히 많은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영문자 코카콜라라고 읽을 듯 유사하게 휘갈겨 써 놓았다.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 놓고 밖을 보았다. 낮에 볼 땐 폐허 같던 건물에 불빛이 생겼다. 밤에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나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표시를 불빛으로 했다. 멀어서 희미하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이 희미하지는 않다. 오늘 하루 종일 밥벌이에 수고했을 육신이 휴식할 수 있는 곳. 집은 웃음의 터전이다. 낮에만 보아왔던 방글라데시가 밤이 되면서 생명력 넘치는 곳으로 변했다. 웃음소리에 불빛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처음 해 보는 대중교통과 친해지기, 버스로 여행하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저녁 8시 40분. 집에 도착했다. 캄캄한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힘내자 이제 몇 발짝만 가면 된다. 어제 가볍게 들고 잠갔던 자물통이 오늘은 묵직함을 느끼게 했다. 이틀 동안 자물통도 컸나 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 안에 후끈함이 배었다. 창문을 열고 팬을 돌렸다. 배낭을 열어 시험장에서 간식으로 줬던 빵을 꺼냈다. 그 아래 어젯밤 호텔에서 비닐에 물을 담아 살려두었던 파가 있었다. 꺼내 보니 죽음의 길을 가고 있었다. 검은 배낭 속의 어둠과 40도가 넘는 다카의 더위에 견뎌야 했던 파들이 축 처진 상태로 스스로 살길을 찾고 있었다. 제 스스로 변화해 보겠다고 더 발전해 보겠다고 배낭 속에서 파김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싱크대에서 물을 받아 긴급하게 소생술을 했다. 파김치의 파로 살지 말고, 젊음을 유지한 채로 살라고 시원하게 씻기고 칼질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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